홈 > 자료실 > 신요칼럼
신요칼럼
 

러시아신화 맛보기

鄭宇東 0 2903
러시아신화 맛보기
 
 
일반적으로 러시아 신화(Russian Mythology)는 동슬라브신화를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는 동슬라브인을 러시아인, 백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으로 구분하고 있
지만, 이와 같은 구분은 14세기 경에 가서야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러시아인, 백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들의 갈래가 나뉘기 전의 모태인
공통분모를 동슬라브 신화 속에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슬라브 신화(Slavic Mythology)란 슬라브 족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이전부터
전승해온 신화의 총체입니다. 그러나 슬라브족들이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신화
도 분리되어 조금씩 변화하였고 그 결과 서슬라브 신화(:발트, 폴란드, 체코 등),
남슬라브 신화(: 불가리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등), 동슬라브 신화
(: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로 각기의 특성을 가진 세 가지의 신화가 나타
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된 모체에서 나온 신화이기 때문에 확연히
구분되는 신화가 아닙니다. 그 나름대로의 특성이 가미된, 공통점을 많이 가진
신화입니다.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슬라브인들은 자연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비바람, 폭풍우, 천둥 등의 자연현상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그들은
그것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어떤 존재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슬라브
신화의 시작이자 모든 종족의 신화의 시작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화는 자신
을 자연 재해로부터 지켜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연,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인식체계였습니다. 동슬라브인들은 초월적인 존재가 인간의 길흉화복과
자연 현상에 힘을 미친다고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초월적인 존재와 그
들의 힘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방식을 찾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또한
세계의 시작과 인간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났을 것입니다. 신화는 바로 이
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신화는 하나의 세계관 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신화는 세계관이자 우주관이었습니다.

광명의 신 벨로보그, 어둠의 신 체르노보그, 지고신(至高神)으로서의 태양(다주
보그)과 불(스바로그)이라는 두 아들을 가진 천공(天空)의 신 스비에로그를 비
롯하여 가정의 신 다마보이, 뜰의 신 도보로보이, 곳간의 신 오베니크, 숲의 신
레쉬이, 밭의 신 폴레비크, 물의 신 보자노이, 루살카, 구파라, 봄의 신 야리로등
외에 이민족(異民族)과의 접촉으로 갖가지 신화가 발달하였습니다.
10∼11세기에는 키예프·러시아의 블라디미르 1세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식적
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교(異敎)의 신화는 표면상 거부되었으나, 그 밑바탕에서
는 반대로 슬라브의 그리스도교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먼 훗날까지 민속이나
행사 속에 살아 남았습니다.

* 창세 신화와 주신들 *
슬라브 신화는 일단 원시적인 이원론으로 시작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그것으로,
다른 여타 신화들에서도 대개 그렇듯이 빛은 생명을 주는 존재이며 선한 것, 어
둠은 파괴력을 나타내는 악한 것을 의미합니다. 빛을 의미하는 신은 벨로보그
(Bielobog)로 '희다' 라는 의미의 형용사 '벨리' 와 신을 뜻하는 명사 '보그'를 합
성한 말입니다. 어두움을 의미하는 신은 체르노보그(Tchernobog)로 검다는 의
미의 형용사 '초르니'를 이용한 위와 같은 합성어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위의 두 신 이후에야, 본격적인 신화라는 것이 탄생합니다. 위의 두 신은 신이라
기보다는 차라리 생과 죽음에 대한 막연한 숭상에서 나온 이미지가 아닐까 싶습
니다. 위의 두 신은 신화 자체에서 등장이 극히 적기 때문입니다. 슬라브의 신화
는 크리스트교에 의해 산산히 부서졌긴 했지만, 남아있는 것들 사이에서도 슬라
브 최초의 신들인 이 둘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습니다. 생과 죽음을 인
식하고 시야가 넓어진 인간이 다음에는 무엇으로 눈을 돌릴 것인가? 그것은 자연
현상입니다. 많은 신화들이 그렇게 시작하듯이 인간들이 자연현상을 인격화하고
숭배하면서 신화는 인간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존재가 됩니다.

가장 최초로 나타난 지고(至高)신은 하늘이었습니다. 그는 스바로그(Svarog)라
는 이름으로, 다지보그(Dajbog)라는 '태양'과, 스바로기치(Svarogitch)라는 '불',
두 자식을 낳았습니다. 이중 스바로기치는 '스바로그의 자식'이라는 의미로, 사
람들은 불을 신이 내린 선물로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은 어딘가 그리스 신화에
서의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선물하는 이야기와 닮았습니다. 스바로그
는 우주를 지배하고 만물을 창조하는 힘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 뒤,
강력한 숭배를 받는 신은 태양신인 다지보그가 됩니다.

어둠과 추위와 가난의 정복자인 태양신 다지보그는 여타 신화에서 태양신들이 많
이 그러하듯이, 재판관의 역할도 맡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쁜 자에게는 벌을 주며
선한 자에게는 상을 주기도 하고, 그는 또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이기도 했
습니다. 다지보그의 부인은 달로, '메시아츠' 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메시아츠는
본디 남자의 이름이지만, 많은 전설에서 메시아츠를 젊은 아가씨로 묘사됩니다.
태양의 디지보그와 달의 메시아츠 부부는 별들을 낳았습니다. 이들 부부가 사이가
나빠져 서로 화를 낼 때 지진이 일어난다고 믿어졌습니다.

태양신 다지보그의 옆에는 오로라의 신격화인 조리아 - 슬라브어로 오로라, 또는
자리아 라고 발음되기도 한다 - 들이 있습니다. 새벽의 오로라인 '조리아 우트렌니
아이아' 와 석양의 오로라인 '조리아 베체르니아이아' 가 그들인데, 이들은 태양신
이 아침에 나설 때 하늘의 궁전 문을 열고 닫는 일을 했습니다. 다른 신화에서 이
들은 둘이 아니라 세자매로, '석양의 조리아', '한밤의 조리아', '새벽의 조리아' 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세자매는 우주와 별자리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습다.
이 외에 중요한 신으로는 대지를 신격화한 '마티-시라젬리아' 가 있습니다.
'축축한 어머니 대지' 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이 여신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만일 인간이 그녀의 말을 이해할수 있다면, 그는 어머니 대지로부터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들을수 있었습니다. 러시아 민족의 영웅 서사시인 '빌리니'에
는 축축한 어머니 대지와 한 용사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비아토고르라는 용사는 너무나도 강력한 힘을 가진 나머지 자신의 힘을 무거운
짐처럼 지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자신의 힘에 자만하게 된 그는 대지의 무게를 한
곳에 모을수 있는 장소가 발견된다면 '대지' 조차도 들어올려 보이겠다고 공언합
니다. 어느날 그는 대초원에서 작은 주머니를 발견하고 지팡이로 건드려보지만
주머니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손가락으로 건드려보아도 역시 주머니는 조금도 움
직이지 않습니다. 말에서 내리지 않은채 용사 스비아토고르는 주머니를 잡아보지
만 들어올릴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말에서 내려 주머니를 두손으로 움켜잡은채
무릎 위까지 들어올린다. 그러나 주머니는 움직이지 않고, 대신 무릎까지 땅에 파
묻힙니다. 그때 그의 얼굴에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피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묻힌 곳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합니다.

슬라브의 큰 신들은 위와 같습니다. 그러나 위의 신들에 대해서는 실제로 많이 알
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유는, 크리스트 교가 슬라브의 신들을 이교로 간주하였던
탓입니다. 크리스트 교의 승리로 인해 슬라브의 주요 신들은 역사에서 지워지고
파괴되고 사라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디이 미노레스' 라 불리우는 작은 신들은 살
아남을수 있었습니다. 신과 정령의 중간쯤 되는 입장인 디이 미노레스들은 슬라브
인들이 크리스트 교도가 된 이후로도 그들의 생활 속에 건재하게 남아있었습니다.

* 인가의 작은 신들 *
요정이나 정령의 이야기로 가장 유명한 나라는 아마도 영국일 것입니다. 영국의
요정들은 자신들만의 사회를 가지고 숲 등지에서 살아가며, 민가에서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일은 드뭅니다. 브라우니 등의 요정은 분명히 집안에서 살아가
기는 하지만, 그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 하인과 같은 역할로, 인간들과 대등하지
못한 입장에 처해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에 비해, 슬라브의 작은 신들은 상당
수가 인간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으며, 인간의 집에 기생하는 입장인데도
수호신처럼 떠받들여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집에 하나가 아니라 여러 정령이 붙
어있음에도 그들은 다 나름대로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디이 미노레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최고신이 세계를 창조할 때, 정령들중 일부가 반란을 일으켜 최고신은 그 정령
들을 지상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중 숲이나 물 속에 떨어진 정령들은 반란
을 일으켰던 때의 사악한 마음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만, 인가에 떨어진 정령들
은 인간에게 호의를 품고 선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정령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도모보이'입니다. 
슬라브의 정령중 가장 유명한 존재인 도모보이는 집이라는 의미의 '돔' 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이름을 가졌습니다. 이미 짐작 했겠지만, 도모보이는 집의 신, 혹
은 정령입니다. 도모보이는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손바닥을 포함한 전신에
하얗고 부드러운 털이 나 있습니다. 그의 양 손은 털로 뒤덮인 점만 제외하면
인간의 손과 꼭 닮았습니다. 뿔이 있거나, 꼬리가 달려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설화도 있습니다.

도모보이는 자신이 사는 집에 애착을 가지게 되면 떠나지 않고 그 집을 계속 수
호해줍니다. 그래서 슬라브 농부가 새 통나무집을 지었을 때, 농부의 아내는 새
집에 들어가 살기 전에 빵 한 조각을 떼어 난로 밑에 두고 도모보이가 빵에 꾀여
새 집에 들어와주기를 바랍니다. 일단 새 집으로 들어온 도모보이는 난로 곁이나
입구 문턱 밑에 살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도마니아' 혹은 '도모비하' 라고 불리
우는 그의 아내는 지하실에 살며 절대로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거나, 소리를 내
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집을 나서서 뜰로 나가면, '드보로보이' 가 살고 있다.
뜰이라는 의미를 가진 도보르라는 단어에서 나온 이름을 가진 그는 뜰의 정령입
니다. 그는 가축들을 돌보아주는 일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축 우리 안에 암
양의 털 약간과, 무언가 반짝이는 작은 물건, 한조각의 빵을 놓아두며 드보르보
이의 비위를 맞춰줍니다. 드보르보이는 하얀 털을 가진 동물들을 몹시 싫어해서
괴롭힙니다. 그러나 하얀 암탉은 전혀 드보르보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 이유
는 암탉들을 수호해주는 신이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제 욕실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여기서의 욕실은 요즘같이 집안에 붙어있는 하얀 타일의 깨끗반짝한 욕실이 아
닙니다. 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지방에는 여러명이 동시에 들어가 사용할수 있는
사우나실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 사우나실을 지키는 것이 '반니크' 라는 정령
입니다. 세 패의 사람들이 욕실을 사용하고 난 뒤, 네 번째로 욕실에 들어가는
것이 반니크입니다. 그는 악마나 다른 정령들을 초대해 욕실에 함께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 욕실의 정령에게는 미래를 예견하는 힘이 있어, 그에게 미래를 물어
볼수 있다고 합니다. 미래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욕실 문을 열고서 등을 욕실쪽
으로 돌리고 참을성있게 기다리려 반니크가 그의 등에 손바닥을 살짝 대면 그에
게는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손톱으로 등을 찌르거나 할퀸다
면 불길한 조짐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입니다.
곡식창고는 '오빈니크'의 구역입니다. 그는 곡식창고의 한 구석에서 살면서 거두
어들인 곡물을 지켜주는 정령으로 서 있는 오빈니크는 털이 마구 헐크러진 커다
란 검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모습은 고양이지만, 그는 개처럼 짖으
며 큰 입을 벌리고 사람처럼 웃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상은 집 근처에 사는 유명한 정령들입니다.

이외에 여성의 모습을 한 '키키모라' 라는 정령이 있습니다.
지방에 따라 도모보이의 아내로 불리우기도 하는 키키모라는 수많은 설화에 등장
하지만, 정확한 모습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중 많이 묘사되는 것이 까마귀와
쥐를 합친 것 같은 외모에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린 모습입니다. 보통은 닭을 돌보
는 일을 하지만, 간혹 근면하고 마음에 드는 주부를 만났을 때는 가사 일체를 거들
어 주기도 합니다. 주부가 게으르면, 키키모라는 밤에 아이들을 부추겨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대장장이의 수호신인 크루기스, 마굿간을 돌보는 라타이니차, 가축을
수호하는 페세이아스, 도마뱀의 모습을 한 기보이티스, 집안을 관리하며 오븐에서
꺼낸 첫 빵을 받는 마테르가비아, 빵 반죽이 상하지 않도록 지키는 두그나이 등,
슬라브 설화에서의 정령들은 온 집안 구석구석을 지키고 있습니다.

* 숲과 들판의 작은 신들 *
마을을 벗어나 들판으로 나가 봅니다.
어느 들판이나 각기 하나씩의 '폴레보이' 혹은 '폴레비크' 에게 지배되고 있습니다.
들이라는 의미의 폴레에서 나온 이 이름들은 이들이 들판의 정령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지방에 따라 흰 옷을 입은 사람 형태에서 새카만 육체에 양쪽 색이 다른
눈동자를 가진 모습이나, 머리카락 대신 푸른 풀이 나있는 머리를 가졌거나, 기형
적인 난쟁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알려져 있는 폴레비크는 몹
시 장난이 심해, 밤길을 가는 나그네를 이리저리 헤메게 만들곤 합니다.

이미 말했듯이, 슬라브에서의 정령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일종의 천사와 같은 존재
들이입니다. 타락한 천사랄까. 특이한 것은 하늘에서 추방된 이들 정령들은, 인간
과 가까이 살수록 온화하고 착한 존재가 되며, 인가에서 멀어질수록 사악한 존재가
됩니다. 즉, 집안을 지키는 도모보이는 가장 온순하며, 정원과 곳간들을 지키는 정
령들은 온순하지만 간간히 심술을 부리고, 마을을 벗어나 만나는 숲과 들판과 물의
정령들은 몹시 사악하고 위험한 존재입니다.

바로 이 사악하고 위험한 존재에 속하는 폴레비크는 이유없이 사람들을 괴롭히길
즐기며, 술주정꾼의 목숨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위험하기 짝이없는 정령
에게 잘보여 그의 호의를 사기 위해서는 땅에 구멍을 파고 달걀 두 개와 울지 못하
게 된 늙은 수탉을 그 안에 넣어두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희생물을 바치는 것은
폴레비크의 힘을 빌어 미운 녀석을 괴롭히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보
게 되지만, 대체로 밭을 수호해달라는 부탁으로 닭을 바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제 좀더 걸어나가 숲으로 가봅니다.
숲이라는 단어 레스에서 온 이름을 가진 레시가 숲 속에 숨어있습니다. 레시는 인
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푸른 피를 가진 탓으로 그 피부는 푸른기가 돕니다. 뿐
만 아니라 툭 튀어나온 눈과 눈썹, 수염, 머리칼 또한 모두 선명한 녹색입니다. 외
모와 이름에서 보이듯이 숲을 인격화 한 신인 레시는 그림자도 발자국도 없으며,
숲속을 걷던 사람이 누군가 따라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아도 순식간에 모습
을 감추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레시는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여자와 악마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그
는 불사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는 숲을 인격화한 존재이므로 겨울이 다가오면
일시적으로 죽거나 혹은 모습을 감추어야 합니다. 가을 무렵이 되면 차츰 다가오
는 소멸을 생각하며 레시들은 신경이 곤두서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숲속을 뛰
어다닙니다. 몇몇 전설에서는 레시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레시의
아내는 '레샤치하', 아이들은 '레셴키' 라고 불리우며, 그들은 숲 깊숙한 곳에서
거주하며 공동으로 나쁜 장난을 친다고 합니다.

이들 외에도 숲과 들판에서 사는 정령은 많습니다.
경작을 담당하는 라브카파팀, 과일을 생장시키는 마르잔나, 들판과 과일을 수호
하는 크리코, 체리를 익게하는 키르니스, 꿀벌의 수호신 조심, 무엇으로나 변신
하는 숲의 정령 시크사 등이 그들입니다.

* 물의 작은 신들 *
물에서 사는 정령들은 이미 설명한 신들보다 매우 잔인하고 심술궂습니다.
물의 정령은 어느나라에서나 사람을 물속으로 끌어들여 죽게 하는 존재라는 이미
지가 강합니다. 여기서 소개할 두 신도 역시 그러한 존재입니다.

이전까지 이미 보아왔듯이, 슬라브에는 자연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정령의
이름이 많습니다. '보디아노이' 역시 그런 존재로, 그의 이름은 물이라는 의미의
보다 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입니다. 보디아노이의 모습은 다양하게 묘사됩니다.
지방에 따른 차이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이 물의 정령이 큰 변신능력을 가졌다는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한 설화에서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손발 대신 동물의 다리를 가진채 긴
뿔과 꼬리, 불타는 눈을 가진 존재 - 마치 악마같은! - 로 나타나는가 하면,
다른 이야기에서는 온몸이 풀과 이끼로 뒤덮인 거인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보디아노이는 커다란 붉은 눈과 굵고 긴 코를 가진 새카만 형체나, 녹색
머리칼과 수염을 기른 노인의 모습, 온몸에 이끼가 낀 흉한 모습의 큰 물고기, 작
은 날개를 가지고 물 위를 스치듯 날아가는 나무줄기 등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보디아노이는 폴레니크나 레쉬보다 더 사악하다. 그는 인간을 몹시 싫어하여 방심
한 사람을 물로 끌어들입니다. 그의 포로가 된 인간은 먹히거나 또는 그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이 물의 정령은 인공적으
로 물을 막아놓은 물레방아나 수문에서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고 그저 갇히게 되
어버린 것입니다. 기실, 보디아노이는 물레방아나 제방을 인간을 싫어하는 만큼이
나 미워해서 곧잘 부수곤 합니다. 그런 그를 달래어 물레방아를 지키는 방법은 제
물을 바치는 것으로, 큰 동물이나 인간을 물에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시
골에서는 수십년 전까지 밀가루를 빻는 사람들이 보디아노이의 환심을 사기위해
어두워진 후 혼자 길을 걷는 사람을 물속에 밀어 던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민간설화가 아직까지도 뿌리깊게 사람들에게 믿어진다는 것은 감탄할 만하지만,
이건 생각해보면 상당히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남성형인 보디아노이 외에 <루살카>라는 이름의 여성형 물의 정령이 있습니다.
자살이든 사고든간에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아가씨는 루살카가 됩니다. 보디아노이
와 마찬가지로 루살카 역시 사악하며, 인간에게 해를 끼칩니다. 보디아노이가 물밖
으로까지 나와 - 그래봐야 거주하고 있는 하천 주위에 지나지 않지만 - 사람을 잡아
먹는 능동적인 행동을 하는데 비해서, 루살카는 인간을 유혹하거나 밀어 떨어뜨리
는 정도의 덜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루살카는 인간을 죽일 뿐으로, 그 시체
를 먹거나 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슬라브 전설에서 루살카들은 이중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녀들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까지는 물속에서 살지만, 여름의 일정 기간 동안은
숲속 나무 위에서의 생활을 합니다. 슬라브 인들은 녹색 나무는 죽은 이들의 거주
지라고 믿었습니다. 여름이 오기 전, 물이 아직 어둡고 차가울 때에 루살카들은 물
속에 머물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두움과 죽음의 정복자인 태양빛이 스며들어 물이
따뜻해지는 시기가 오면, 본디 죽은 아가씨들의 넋인 루살카들은 푸른 나무들에게
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숲 속에서의 루살카들은 밤이 되면 나무에서 내려와, 달빛
을 받으며 숲속의 빈터에서 춤을 추거나 소리를 지릅니다. 그녀들이 머물며 춤을
춘 자리는 풀이나 곡식이 잘 자란다고 하는, 영국의 페어리 링 이야기을 연상케 하
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루살카들은 사람을 해치는 것 이외에도, 물레방아를 망가뜨
리거나 밀을 빻는 절구를 쪼개어 놓거나 어부의 그물을 찢는 장난을 합니다. 뭍으
로 올라올수 있는 시기에는 바늘 따위의 소소한 것들을 훔쳐가기도 합니다. 루살카
들은 향쑥을 싫어하는데, 향쑥 잎을 손안에 쥐고 있으면 그녀들의 장난이나 위협을
막을수 있다고 합니다.

* 맺 는 말 *
슬라브의 신화와 전설은 크리스트교의 전파로 인해 한번 무너져 소실되었고, 그
후 남은 이야기들도 게르만 등의 민족들과 접촉하면서 조금씩 변질되었습니다.
농민이나 사냥꾼 등의 민중들이 주가 되어 믿던 작은 신들의 이야기는 제법 남아
있지만, 도시나 성채에 살던 시민들은 그들이 믿던 신을 거의 대부분 잃어버렸습
니다. 슬라브 신화는 두 계층에 의해 서로 나뉘어서 믿어졌습니다. 지배계층의 신
앙과 민중의 신앙, 두가지였습니다. 지배계층들이 믿는 신은 큰 신으로 전쟁이나
명예, 사냥의 신 등이었습니다. 그보다 작은 신들, 위에서 이야기해온 디이 미노레
스들은 민중들의 것이었습니다. 둘로 나뉘어진 이 신들을 살펴보면 확실히 차이가
보입니다. 주위에서 흔히 접할수 있는 환경이나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신격화 한
것이 작은 신들인데 비해, 큰 신들은 좀더 관장하고 있는 분야가 넓으며 포괄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큰 신들에 대한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지배자 계층이 하나둘씩 개종하기 시작하면서 믿어지고 있던 신들의 우상은 파괴
되고 신들의 이야기는 잊혀져갔습니다.
지배계층과 민중의 신앙이 워낙에 구분되어 있던 탓으로, 지배계층이 자신들의
신화를 포기했을 때 더 이상 그 신화는 지켜질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슬라
브의 농민들이 크리스트교를 믿으면서도 자신들의 토속신앙을 지켜, 작은 신들의
이야기를 물려 내려왔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