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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칼럼
 

성왕 폭군

鄭宇東 0 1436
聖王 暴君 

 * 단군임금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민족의 시조(始祖)이며 고조선(古朝鮮:단군조선)의 첫 임금으로
천제(天帝) 환인(桓因)의 손자이고, 환웅(桓雄)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웅녀
(熊女)입니다. 우리나라 국조신화(國祖神話)인 <단군신화>의 주인공입니다.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BC 2333년에 고조선의
아사달에서 개국하였습니다.

 * 건국 제왕
나라의 패망기에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새로운 왕국을 연 시조왕들
을 존경하고 기릴만 합니다.
신라의 박혁거세, 고구려의 고주몽, 백제의 온조, 가야의 김수로, 발해의
대조영, 태봉국의 궁예, 고려의 왕건, 조선의 이성계를 들수 있습니다.

 * 세종대왕
우리 국민은 한양조선의 세종왕을 성군이나 대왕으로 존경합니다.
그리고 간혹씩은 고구려의 광개토왕도 대왕으로 부르는 일이 있습니다.
세종(世宗, 1397~1450)은 조선의 제4대 왕으로 1418~1450 재위했습니다.
세종은 그 이름이 도(  ). 자는 원정(元正). 태종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이며 비(妃)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
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입니다.
재위기간 동안 유교정치의 기틀을 확립하고, 공법(貢法)을 시행하는 등 각
종 제도를 정비해 조선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했습니다. 또한 한글의 창제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문화의 융성에 이바지하고 과학기술을 크게 발전시키는
한편,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토를 넓혔습니다.

 * 연산군과 광해군
연산군과 광해군은 패덕한 왕으로 신하들에 의해서 쫒겨난 왕입니다.
연산군은 백성에게는 결코 폭군이 아니었으며 조선 최고의 음란한 임금도
아니었습니다. 반면 ‘리더는 시대적 소명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높은 지적 능력이 요구됩니다. 연산군에게는 세조의 쿠데타로 형성된 훈구
세력을 약화시키라는 시대적 소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를 인지할 만
한 지적 능력이 부족했던 연산군은 거꾸로 훈구의 정적이자 자신의 우군인
사람을 억압했다’며 그의 정치적 한계를 꼬집기도 한다. 세력 관계가 기본인
정치에서, ‘고립된 권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 시대를 앞서갔으나 신하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통합에 실패해 외롭게 몰
락한 것은 광해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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