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심거와 육필거
鄭宇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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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6
2014.06.24 01:28
육심거와 육필거
학자들은 기업의 생명은 대략 18년 정도라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100년 이상 살아남은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
도입니다. 그런데 중국에는 500년 동안 명성을 떨치며, 오늘도 계속 성장하
는 기업이 있습니다. “리우삐쥐(六必居)"라는 기업입니다.
“육필거” 육 六자, 반드시 必자, 집 居자를 쓰는 이 기업은 명나라 가정황제
(嘉靖皇帝)때인 1530년에 창건되어 공산치하에서도 계속 발전하였습니다.
내가 요즘 시청한 중국 드라마
大明王朝 1566年 중 이야기의 하나는 대략 이렇게 전개됩니다.
가게의 현판을 육심거(六心居)에서
명나라 嘉靖 황제의 훈수에 따라 육필거(六必居)로 바꾸는 이야기입니다.
가정황제의 최고위 신하중 간신편에 드는 엄숭은 해마다 신년이면 황제가
좋아하는 장아찌를 사서 진상하였습니다. 이 장아찌를 만들어 파는 가게의
상호가 여섯 형제가 힘을 모아 운영한다 해서 六心居입니다. 가게주인이
상호의 글씨를 써받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다가 비리로 엄숭이 탄핵되어
불려 왔을때 황제는 그가 써놓은 心자에 정의구현의 뜻으로 칼같은 ㅡ劃을
더하여 必자로 고쳐서 신상필벌의 속뜻을 밝힙니다.
명나라의 정도전이라 할 해서(海瑞, 1514~1587)는
송나라의 포청천처럼 청백리의 전형으로 왕중의 왕 지존의 가정 황제의
뜻에 거슬러 다른 해석을 감히 갖다 붙입니다. 일개 지방관리로 조정관리
로 왕도에 부임하던 그는 당시의 흉흉해진 민심을 위무하고 국가의 안녕
과 발전을 도모한다는 포부로 감히 지존황제의 권위에 맞선 우국충정에
황제도 감동하여 편액의 아래에 황금으로 쓰서 부착하도록 윤허하였습니다.
육필거(六必居, liu bi ju, 류비쥐)는
산서성 임분(山西 臨汾) 사람인 조씨 삼형제가 명나라 가정 9년(1530년)에
설립한 상점입니다. 조씨 형제가 경영을 잘한 데다가 육필거가 영업을 시작
했을 때 지리적 위치 또한 좋아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영업을 시작했을 때
의 두칸 짜리 매장에서 네칸 짜리 매장으로 점포면적을 확대하였으며, 상가
뒷면에는 가공전문 수공업 공장을 증설하여 장사가 점점 번창해졌습니다.
원래 六必居는 주점으로 시작하였다가
현재는 중국 전통 음식을 만드는 기업으로 업종을 바꾸어 번창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고,
우리나라 유명한 부자 경주 최씨 가문도 300년으로 끝을 맺었는데,
수많은 왕조와 대동아 전쟁, 공산 혁명 등, 격동의 태풍 가운데서도
500년의 장구한 세월을 버티며, 더욱 발전해 가는 이 기업의 비결은
바로 그 기업의 이름에 담겨져 있다는 중평입니다.
‘여섯 개의 규정이 반드시 살아있는 집’이라는 의미의
六必居는 중국에서 가장 잘 지은 기업의 이름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 여섯 개의 규정과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양곡은 반드시 최상품으로 골라야 한다.
(2) 누룩은 반드시 최상품을 사용해야 한다.
(3) 그릇은 반드시 깨끗해야 한다.
(4) 술병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
(5) 연료는 반드시 충분해야 한다.
(6) 물(水)은 반드시 깨끗한 최상의 것을 사용해야 한다.
이 회사는 그 규정을 잘 지킬 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을 최고로 돌보는데도 유명합니다.
타 회사에 비하여 높은 보수를 지급하고,
모든 직원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겨주며, 실적이 우수한 직원에게는
노새가 끄는 마차를 보너스로 지급하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규율을 어기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직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해고시켜버렸습니다.
리우삐쥐는 전통을 잘 지켜나가면서도, 과감하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끊임없이 품질의 이노베이션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모택동 공산정권
에서도, 문화혁명의 무자비한 탄압 아래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리우삐쥐의 성공 비결은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창립 규정 제2조인 ‘불용삼야’라는 조문이 있는데,
삼야란, 아들과 직계비속을 뜻하는 ‘소야’,
삼촌 고모와 같은 방계존속을 의미하는 ‘고야’,
외삼촌과 처남등, 외가와 처가를 의미하는 ‘구야’를 말하는데,
친척과 외척과 처족은 물론 친자식까지 회사 안에 들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는 것입니다. 후계자는 반드시 종업원 중에서 선발하여 오랫동안의 철저한
훈련을 시켜, 회사를 물려주었습니다.
그런 전통에서 종업원들은 회사를 자신의 집처럼 생각하며 소망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기업이나
원칙에 충실한 것만이 살아남습니다.
본질에 충실한 것만이 살아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게를 살리는 사사로운 작은 경영 비법으로부터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 내지 백성이 평화롭게
살아가게 하는 국태민안책(國泰民安策)의 국가경영의 토대가 됩니다.
이른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근간(根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필거라는 점포이름의 유래와 육필거의 편액 출처에 대해 사회적으로
몇가지 설명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육필거가 처음에는 주포(酒鋪: 술을 파는 집)로부터
시작한 것으로 술을 빚을 때 반드시 6가지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말하
고 있습니다. 즉 원료의 선별, 재료 사용, 제작방법, 설비, 시간, 순수한 물
등 술을 빚는 6가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하여 六必居라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육필거의 점포이름 유래와 관련해 그 경영 제품이 장작, 쌀,
기름, 소금, 장류, 식초등 6가지나 포함되었는데, 이 6가지는 백성들의 일상
생활 필수용품이라고 하여 六必居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여섯 파트너가 함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경영한 사업이라
고 하여 六必居라고 불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六心居=>六必居)
또 어떤 사람들은 육필거는 6명의 과부가 설립한 것으로 이 부녀들은 너무
부지런하여 무슨 일이나 주도면밀하게 처리하며,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반드시 여섯 사람이 함께 해야 한다고 하여 六必居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런 설명들은 대부분 민간에서 전해지고 있는데
장사 경영자들이 저들의 점포 이름을 짓기 위해 대부분 경우에는 길하고
순조롭게 된다는 의미에 신경을 쓰는데, 육육대순(六六大順 : 매우 순조롭
다는 뜻)은 중화민족의 전통상 민간에서 신앙하는 속담입니다.
그렇다면 3형제(든 6형제)가 상가를 세웠을 때 한마음 한뜻으로 순조롭게
경영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위해 기여하려 했다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학자들은 기업의 생명은 대략 18년 정도라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100년 이상 살아남은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
도입니다. 그런데 중국에는 500년 동안 명성을 떨치며, 오늘도 계속 성장하
는 기업이 있습니다. “리우삐쥐(六必居)"라는 기업입니다.
“육필거” 육 六자, 반드시 必자, 집 居자를 쓰는 이 기업은 명나라 가정황제
(嘉靖皇帝)때인 1530년에 창건되어 공산치하에서도 계속 발전하였습니다.
내가 요즘 시청한 중국 드라마
大明王朝 1566年 중 이야기의 하나는 대략 이렇게 전개됩니다.
가게의 현판을 육심거(六心居)에서
명나라 嘉靖 황제의 훈수에 따라 육필거(六必居)로 바꾸는 이야기입니다.
가정황제의 최고위 신하중 간신편에 드는 엄숭은 해마다 신년이면 황제가
좋아하는 장아찌를 사서 진상하였습니다. 이 장아찌를 만들어 파는 가게의
상호가 여섯 형제가 힘을 모아 운영한다 해서 六心居입니다. 가게주인이
상호의 글씨를 써받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다가 비리로 엄숭이 탄핵되어
불려 왔을때 황제는 그가 써놓은 心자에 정의구현의 뜻으로 칼같은 ㅡ劃을
더하여 必자로 고쳐서 신상필벌의 속뜻을 밝힙니다.
명나라의 정도전이라 할 해서(海瑞, 1514~1587)는
송나라의 포청천처럼 청백리의 전형으로 왕중의 왕 지존의 가정 황제의
뜻에 거슬러 다른 해석을 감히 갖다 붙입니다. 일개 지방관리로 조정관리
로 왕도에 부임하던 그는 당시의 흉흉해진 민심을 위무하고 국가의 안녕
과 발전을 도모한다는 포부로 감히 지존황제의 권위에 맞선 우국충정에
황제도 감동하여 편액의 아래에 황금으로 쓰서 부착하도록 윤허하였습니다.
육필거(六必居, liu bi ju, 류비쥐)는
산서성 임분(山西 臨汾) 사람인 조씨 삼형제가 명나라 가정 9년(1530년)에
설립한 상점입니다. 조씨 형제가 경영을 잘한 데다가 육필거가 영업을 시작
했을 때 지리적 위치 또한 좋아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영업을 시작했을 때
의 두칸 짜리 매장에서 네칸 짜리 매장으로 점포면적을 확대하였으며, 상가
뒷면에는 가공전문 수공업 공장을 증설하여 장사가 점점 번창해졌습니다.
원래 六必居는 주점으로 시작하였다가
현재는 중국 전통 음식을 만드는 기업으로 업종을 바꾸어 번창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고,
우리나라 유명한 부자 경주 최씨 가문도 300년으로 끝을 맺었는데,
수많은 왕조와 대동아 전쟁, 공산 혁명 등, 격동의 태풍 가운데서도
500년의 장구한 세월을 버티며, 더욱 발전해 가는 이 기업의 비결은
바로 그 기업의 이름에 담겨져 있다는 중평입니다.
‘여섯 개의 규정이 반드시 살아있는 집’이라는 의미의
六必居는 중국에서 가장 잘 지은 기업의 이름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 여섯 개의 규정과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양곡은 반드시 최상품으로 골라야 한다.
(2) 누룩은 반드시 최상품을 사용해야 한다.
(3) 그릇은 반드시 깨끗해야 한다.
(4) 술병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
(5) 연료는 반드시 충분해야 한다.
(6) 물(水)은 반드시 깨끗한 최상의 것을 사용해야 한다.
이 회사는 그 규정을 잘 지킬 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을 최고로 돌보는데도 유명합니다.
타 회사에 비하여 높은 보수를 지급하고,
모든 직원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겨주며, 실적이 우수한 직원에게는
노새가 끄는 마차를 보너스로 지급하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규율을 어기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직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해고시켜버렸습니다.
리우삐쥐는 전통을 잘 지켜나가면서도, 과감하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끊임없이 품질의 이노베이션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모택동 공산정권
에서도, 문화혁명의 무자비한 탄압 아래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리우삐쥐의 성공 비결은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창립 규정 제2조인 ‘불용삼야’라는 조문이 있는데,
삼야란, 아들과 직계비속을 뜻하는 ‘소야’,
삼촌 고모와 같은 방계존속을 의미하는 ‘고야’,
외삼촌과 처남등, 외가와 처가를 의미하는 ‘구야’를 말하는데,
친척과 외척과 처족은 물론 친자식까지 회사 안에 들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는 것입니다. 후계자는 반드시 종업원 중에서 선발하여 오랫동안의 철저한
훈련을 시켜, 회사를 물려주었습니다.
그런 전통에서 종업원들은 회사를 자신의 집처럼 생각하며 소망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기업이나
원칙에 충실한 것만이 살아남습니다.
본질에 충실한 것만이 살아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게를 살리는 사사로운 작은 경영 비법으로부터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 내지 백성이 평화롭게
살아가게 하는 국태민안책(國泰民安策)의 국가경영의 토대가 됩니다.
이른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근간(根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필거라는 점포이름의 유래와 육필거의 편액 출처에 대해 사회적으로
몇가지 설명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육필거가 처음에는 주포(酒鋪: 술을 파는 집)로부터
시작한 것으로 술을 빚을 때 반드시 6가지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말하
고 있습니다. 즉 원료의 선별, 재료 사용, 제작방법, 설비, 시간, 순수한 물
등 술을 빚는 6가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하여 六必居라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육필거의 점포이름 유래와 관련해 그 경영 제품이 장작, 쌀,
기름, 소금, 장류, 식초등 6가지나 포함되었는데, 이 6가지는 백성들의 일상
생활 필수용품이라고 하여 六必居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여섯 파트너가 함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경영한 사업이라
고 하여 六必居라고 불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六心居=>六必居)
또 어떤 사람들은 육필거는 6명의 과부가 설립한 것으로 이 부녀들은 너무
부지런하여 무슨 일이나 주도면밀하게 처리하며,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반드시 여섯 사람이 함께 해야 한다고 하여 六必居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런 설명들은 대부분 민간에서 전해지고 있는데
장사 경영자들이 저들의 점포 이름을 짓기 위해 대부분 경우에는 길하고
순조롭게 된다는 의미에 신경을 쓰는데, 육육대순(六六大順 : 매우 순조롭
다는 뜻)은 중화민족의 전통상 민간에서 신앙하는 속담입니다.
그렇다면 3형제(든 6형제)가 상가를 세웠을 때 한마음 한뜻으로 순조롭게
경영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위해 기여하려 했다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