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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 대하여

鄭宇東 0 1253
수필에 대하여

우리들은 흔히 동양적 에세이가 수필이고 서양적 수필이 에세이라 하지만
이 둘의 경계와 구별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문장의 장르로서의 에세이수필은 일반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진리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비교적 소규모적으로 글을 쓰는
에세이(essay;소평론)류와 인간정서의 진실에 대하여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글을 수필(隨筆, miscellany; 신변잡기)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수필(隨筆)은 인생과 자연등 생활에서 직접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붓 가는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쓴 산문을 말합니다.
수필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쓰인 예로 꼽히고 있는 것은
중국 남송 때의 학자 '홍매'의 <용재수필>이라는 저술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수필이라는 이 명칭은 박지원의 <일신수필>등 여러 가
지 글을 모아 놓은 책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수필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삼국 시대 신라의 한문학에
서부터 대단히 많았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이민구의 <독사수필>,
조성건의 <한거수필>에서 수필이란 명칭이 나타났습니다.

수필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영어의 'essai'란 말은 라틴어의 'exigere'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exigere는 '계량하다, 조사하다, 음미하다'라는 뜻이며,
'essai'는 '시험해 보다, 시도하다'라는 뜻의 동사입니다.
'수필'이라는 용어로 'essai'나 'essay'가 쓰이게 된 것도, 처음에는 책의 제
목에 그 이름이 붙여지면서부터였습니다.

그 최초의 작가는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입니다.
'몽테뉴'는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한가로이 자신의 체험이나 신념을 기
술한 글들을 모아, 책 이름을 <수상록>이라고 붙였습니다.
뒤이어, 영국에서 철학자 '베이컨'의 <수필집>이 간행되었습니다.
이로 부터 서양에서는 본격적으로 수필 문학이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도 수필 작품을 뜻하는 'essai'나 'essay'
란 말이 책의 제목으로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수필로 분류할 수 있는 글이
쓰여졌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테오프라스토스,
로마의 키케로, 세네카,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적인 저술들이 모두 그러한
수필 작품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이처럼 오랜 맥을 가지고 있는 수필은
현대에 와서 그 태도에 따라 크게 '경수필'과 '중수필'로 분류합니다.
경수필은 '미셀러니(miscellany)'라고 합니다. 개인의 취향, 체험, 느낌, 인상
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수필로, 가볍고 쉬운 느낌의 문장으로 구사되어 있
으며 흔히 '몽테뉴적 수필'이라고 합니다.
경수필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서술자인 '나'가 겉으로 직접 드러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개인적 정서와 감정에 의존하며, 시적 진술이 드러나
고 또한 신변잡기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중수필'을 '에세이(essay)'라고 합니다.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체계적인 논리 구조와 객관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진 수필로, 무겁고 깊이 있는 느낌의 문장으로 구사됩니다.
흔히 '베이컨적 수필'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객관적 관심을 표현하며,
서술자인 '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보편적 논리와 이성에 의존하며, 논리적이고 논증적인 진술이 드러나고,
지적이며 사색적인 수필이 '중수필'입니다.
나는 토마스 칼라일의 "의상철학"과 조지 기싱의 "봄의 隨想"이 좋습디다.

우리가 흔히 대하는 수필은 신변 잡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과 체험을 다
룬 가벼운 느낌의 수필, 즉 '미셀러니'입니다. 일반적으로 '수필=에세이'라
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엄격히 따지면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쉽게 읽는 수필은 에세이가 아닌, '미셀러니'가 대부분인 것입니다.
나는 이양하의 "페이터의 산문" 과 " 나무" 읽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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