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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道)에 대하여

鄭宇東 0 1165
길(道)에 대하여

우리는 컴퓨터 시대에 들어와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대상을 하드웨어의 질료적이고 기계적인 면으로 파악하는 방법과
소프트웨어의 운영적이고 기술적인 면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세상 누구나 문명의 이기를 다 만들 수는 없지만,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편하고 윤택하게 살아야 합니다.

길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잘 설계건설된 길은 편하고 쉽게 목적지로 인도합니다.
신작로가 끝나는 데서 오솔길이 시작되고 막달은 골목길의 육로가 끝나도
다시 넓은 수로가 시작되고 육지와 해수 위로 더 공활한 공로가 또 열립니다.
위의 경로와 역으로  진행시켜도 역시 나아가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디서 끝나는 것 같아도 어딘선가 또 시작되어 그 이음의 고리는 순환원을
그리며 끝이 없이 이어집니다. 길은 순환적으로 길길히 이어집니다.

나는 무엇하러 어디서 와서 어떤 일을 하고 어디로 가는가
어버이께 효도를 다하는 옳고 바른 길은 무엇인가
벗과 사귀는 일은 어떻게 어울려야 바르고 마땅한가
남과 이웃을 어떻게 도우고 보태고 협조하는 것이 바른가
국민이 나라에 충성하는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하는것이 바른가
우주의 한 구성분자로서 나는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전술한 두 마디의 말만 하고서도
익히 쓰던 옛말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인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동양의 문화-문명은 내면적인 윤리도덕이나 당위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으
므로 이타적 의무적 복종의 경향이 짙은데 반하여
서양의 문명-문화는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존재와 현상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이기적인 권리주장적 경향이 강하다 하겠습니다.
피상적인 견해이겠지만 현대문명의 경향으로 보아
서양세계는 물질적 문명이 발달하여 다분히 하드웨어적이라 하겠고
동양세계는 정신적 문화가 발달하여 소프트웨어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고난 자기의 천부의 자질을 발휘하여 아름답게 사는 길
타인과 타방의 어려움을 도와서 덕을 끼치며 사는 길
천체가 움직이어 운행하는 도정과 궤도는 어떻게 짜였으며
우주만물 삼라만상이 변화하는 법칙은 무엇인가
온 누리가 조화롭도록 유지시키는 최고선은 무엇인가를 묻게 됩니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노자 도덕경의 허두에는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 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邀
此兩者同  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道를 道라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본래부터 있는 항상 변함없는 참된 道가 아니오.
(어떤) 명칭으로 그 존재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본래부터 항상 변함없이 있는 내면의 참된 존재가 아니오. 
이름과 경계가 없으면, 내면속에 잠겨있는 천지의 시작이 되고,
명칭과 경계가 나타나면, 만물의 현상계가 생겨서 커져갑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는 "上善若水 " 라는 구절은
善을 => 道 로 바꾸어 "上道若水 " 라고 풀이함직합니다.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아지는 것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기를 좋아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자리하니, 고로 도에 가깝다.
사는 곳으로는, 낮은 곳인 땅을 좋아하고,
마음은 연못과 같이 깊은 것을 좋아하고,
사귐에 있어서 어진 것을 좋아하고,
말을 함에 있어서 믿음직함을 좋아하고,
다스림에 있어서 바른 것을 좋아하고,
일을 함에 있어서는 능률적인 것을 좋아하고,
움직임에 있어서는 때에 맞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만약 길이 된다면, 나는 어떤 길이기를 바라는가?
도회지의 녹아 허드러지는 아스팔트의 넓고 편안한 길은 결코 아닙니다.
다니던 사람들의 체중으로 다져진 빤질 빤질 질이 난 아집의 길도 아닙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내가 만들어 가야하는 개척의 길입니다.
동반자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혼자서 가는 외로움은 애시 감수할 요량이고
누구에게나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휴행-완급조절을
마음대로 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살아나가고 싶습니다.

또 아래와 같은 이런 길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고향 마산에는 무학산(舞鶴山)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신마산
의 당산 뒤쪽 부분에서 만든 고개 "만날고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감천으로 시집 간 딸과 그 어머니가 만날고개에서 상봉하던 옛일에서 따와서
마산시는 추석대목에 이 고개에서 "만날축제"를 열어 마산시민, 예곡두릉동네,
감천골짜기로 시집-장가간 사람들뿐만 아니라 명절에 고향에 모처럼 찾아 온
나그네들까지도 함께 만나 그리운 회포를 풀게 합니다. 이 고개길은 아리랑요
처럼 이별의 슬픈 고개길이기도 하지만 정든 님을 만날 수 있는 희망과 기쁨의
길이요 화사한 꽃을 피울 봄이 오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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