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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

鄭宇東 0 1512
백마 탄 왕자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느 나라나 민족을 불문하고 그 지역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전설이 전해오
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 천년 동안 전해져 온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속에는 그
민족의 가치관과 사상이 담겨 있기에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근원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는 등불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전설은 현실의 올가미에 매여 사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의
상상력이 제공하는 무한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서양의 전설과 동화에는
이른바 "백마를 탄 왕자(Prince Charming)"가 여러 작품에 등장합니다.
백설공주에서는 공주가 잠들어 있을 때 와서 키스를 하여 잠에서 깨우며
마술에 걸려 깊은 잠에 빠진 공주를 구해주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백조배를 타고와서 공주의 위기를 구해주는 로엔그린같은 백조의 기사
재를 뒤집어 쓴 부억데기 신델레라가 왕비가 되는 여인들의 꿈같은 로망과
아름다운 미녀로 변신한 요정과 이별해야 하는 슬픈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글자 그대로 백마를 탄 왕자는 아니지만
백조배를 따고 온 로엔그린은 엘자공주가 당시의 최고의 기사와 격투하여야
할 어려운 상황에서 정의를 위하여 대신 싸우고 이겨 공주를 구하고 결혼하
여 행복을 누려 사는데 결투에 진 기사 부인의 충동질에 휘말려 결혼시에 그
의 신분에 대하여 묻지 않는다는 약속을 어기고 엘자공주가 로엔그린의 신분
을 물어 성배의 기사인것을 알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성배기사단과의 맹세를
어긴 벌로 엘자곁을 떠나야 하였습니다. 떠나지만 그래도 사랑한다는 표시로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반지를 엘자에게 끼워 주고 때마침 도착한, 올때 타
고 온 백조가 끄는 그 배를 타고 안개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엘자는 울며 불며 후회하였지만 로엔그린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전설에서 주인공의 불행이나 고난은 대개 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는, 백설공주의 경우, 현대판의 동화에서는 번번히 속는 백설공주
의 어리석은 행동은 끔찍한 가난과 타락한 신분으로까지 백설공주를 전락시
켜서 그녀의 불행은 그래도 싸다고 하는 비난조로 혹독히 나무라고 있습니다.
요행이도 백마 탄 왕자를 공주가 만났다 하더라도 공주의 자질이나 탈렌트의
흠결로 주어진 행운을 행복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이카루스나 다이달로스처
럼 불행의 나락으로 안타깝게 추락하고 맙니다.

옛날 아이가 없던 부부에게 아이를 임신한 아내는 이웃에 사는 마녀가 키우는
라푼젤(독일 양배추)을 몹시 먹고 싶어하는 아내를 위하여 남편은 마녀의 밭
에서 몰래 훔치다가 마녀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마녀는 태어날 아기를 자신
에게 주면 용서해 주겠다고 제안하고 남편은 이를 승낙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내는 딸을 낳았고 마녀는 약속대로 아이를 데려갔습니다. '라푼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아이는 깊은 숲 속에 있는 높은 탑에 갇혀 자라게되었습니다.
그 탑에는 출입구가 없었고, 마녀는 라푼젤의 긴 황금색 머리를 사다리 삼아
탑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숲을 지나가던 왕자는 라푼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이끌려
탑을 찾아오게 되었고, 마녀처럼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타고 탑에 올라갔습니다.
라푼젤과 왕자는 곧 사랑에 빠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녀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화가 난 마녀는 라푼젤의 머리를 잘라 들판으로 내쫓고, 이 사실을 모른 채
탑에 찾아온 왕자는 마녀에 의해 가시덤불 위로 떨어져 시력을 잃었습니다.
7년 후, 여기저기를 떠돌던 왕자는 쌍둥이 아이를 낳아 살고 있던 라푼젤과 재회
하고, 라푼젤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왕자의 시력을 회복시켜 왕자와 라푼젤,
그리고 두 아이는 왕자의 나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전설의 주인공들은 신화나 민담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인간의 한계에서 비롯된
불행을 겪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과 동화들의 세계가 제공하는
교훈과 메시지는 오늘날 연극 영화등의 매체를 통하여 현대적 재해석과
바리아씨옹으로 나타나 우리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우리는 좀 더 지혜스럽게
생각하고 또 성숙하게 처신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 주는 교훈의 형태를 취하
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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