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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상식의 비정(批正)

鄭宇東 0 1905
역사 상식의 비정(批正)


우리가 아니 내가 알고 있는 역사상식중 오도되고 그릇 알고 있는 역사지식이 더러
있으니 바로잡아 반만년을 자랑하는 조상에 누를 끼치는 못난 후손을 면탈하렵니다.
이와 같은 오류의 원인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수 있습니다.
첫째로, 일본제국주의가 뿌려 놓은 식민사학의 의도된 날조와 그 오류의 미청산
둘째로, 해방후 새로운 나라만들기 과정에서 생성된 다소 부풀려진 오류
셋째로, 거슬러 올라 조선 후기 집권세력의 성리학적 질서강화에 맞물려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성 오류
넷째로, 새로운 사료의 발견등으로 학계에서 용도가 폐기된 지식이 일반인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여전히 진실로 믿어지는 오류
다섯째, 일반인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단순오류 등이 있습니다. 

1. 고조선은 이씨(왕조)조선과 구별 하기위한 국명이 아닙니다.
    이성계가 이씨왕조를 개국하기 전에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를 지었는데
    위만조선을 기록하면서 고조선-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을 지칭하여 고조선이라
    하였습니다. 일연과 거의 동시대인 이승휴는 제왕운기에서 고대 3조선의 역사
    를 단군조선을 전조선, 기자조선을 후조선이라하며 위만조선과 구별하였습니다.
    이씨조선시대에는 숭유정책과 사대사상에 의하여 중국에서 동래하였다는
    기자조선에 역사의 정통성을 찾은 것이 우리역사의 두가지 큰 오류중의 하나
    였습니다. 일본의 역사 침탈과 왜곡의 마수를 벗어난 지금도 역사의 혼미와
    역사교육의 방황으로 역사의 혼란을 정리하고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정이 자못 안타깝습니다. 마땅히 우리는 일연선사의 고조선
    즉 단군왕검조선의 역사주역과 정통성을 찾기를 바랍니다.
 
위와 같은 말의 유래(語源)와 관련된 오류에
 * 백정은 이조때 도살업의 천직이지만 고려때는 농사꾼으로 양민이었고
 * 내시는 이조에서는 거세남성이 맞지만 고려에서는 측근관료를 말하고
 * 고려장은 고려의 장례풍속이라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래장례의 하나이고
 * 함흥차사는 모두 죽었는가 ?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 행주치마는 행주대첩의 부산물이란 따위의 오류가 있습니다.

2. 바보온달은 평강공주와 결혼한 덕에 출세 했다는 속설에 대하여 
    우리는 삼국사기 열전의 설화로서 흔히 그렇게 들어서 그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은 평강공주가 상부고씨와 결혼하라는 아버지 평원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궁밖으로 쫒겨난 후 온달과 결혼하고 이후 온달이 무예경기에서 두각을 나타
    내다가 침략군을 격퇴하고 왕의 부마가 되어 혁혁한 공훈을 세웠습니다.
    바보 온달과 울보 평강의 설화는 그들을 영웅적 전설로 격상시켜 영원한 생명
    력을 가지는 신화의 세계로 편입시키는 작업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인물의 영웅화와 신화화의 예로서
 * 원효대사는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과연 얻었으며
 * 최영장군은 황금을 돌과 같이 여겨서 아버지의 유언을 잘 지킨 명장이었고
 * 최익현은 대마도에서 정말 굶어서 죽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3. 포석정은 왕의 놀이터였다?
    성군 세종이 "신라는 포석정에서 패하고 백제는 낙화암에서 멸망했다" 고 했을
    정도로 포석정은 멸망을 앞둔 천년왕국 신라의 나태와 해이를 상징하는 향락의
    놀이터로 각인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옛 왕릉이나 유적등 입지조건으로 보아
    제사와 관련된 곳으로 보며 이름도 포석사일 가능성이 높으며 경애왕이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한 상태에서 음력 11월 꽁꽁 언 엄동설한에 유상곡수의 놀이 잔치를
    벌였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무책임한 후인들의 책임지우기 놀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유물 유적에 관한 오류에는
 * 금관은 왕이 평소 머리에 썼던 것이다?
 * 경주의 첨성대는 천문대다?
 *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다? 따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4.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하였습니다 ?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요임금 50년 정사년 (==>기원전 2284년)
    서거정의 동국통감에는 요임금 25년 무진년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개국년인 기원전 2333년설은 동국통감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삼국유사에 근거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삼국유사가 단군에 관한
    기록을 싣고 있는 가장 오래된 책이기 때문에 생긴 오류일 것입니다.

위와 같이 사서나 문헌 도판-사진에 관한 오류때문에
 * 백제의 왕인박사에 의하여 일본에 천자문이 전해지고
 * 홍길동전은 허균이 쓴 최초의 한글 소설이고
 * 한국 최초의 서구 기행문은 유길준의 서유견문이다? 는 오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5.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가 발명했다 ?
    씨 없는 수박은 1943년 무렵 우장춘의 일본인 친구 기하라 도시(木原 均)가 발명
    하였고, 우장춘은 조국에 귀국한 1953년경부터 씨없는 수박을 우리나라에 널리
    알린 사람일 뿐입니다. 그의 아버지 우범선은 민비를 시해하고 일본으로 도망하여
    살다가 우국지사에게 살해당하였습니다. 우장춘은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크게
    고민하다 과학적 영달을 멀리하고 보국일념으로 민생에 직접 도움이 되는 채소의
    육종개량에 헌신하여 수입에 의존하던 씨앗독립을 이루웠고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하여 그 공으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고 조국이 자기를 인정해 주었다고 비로소
    안도하며 숨을 거두었다 합니다.

위와 같이 정치 사회 생활에 대한 오해와 오류로
 * 임진왜란때 경복궁을 불태운 것은 백성들이었고
 * 조선시대에도 담배는 어른들만 피웠고
 * 베트남 파병은 미국의 요구 때문이었다는 등등의 오해가 있었습니다.

==>more information
 *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박은봉 / 책과함께 / 2007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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