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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선생님을 찾아 뵙고

鄭宇東 0 1823
김동진선생님을 찾아 뵙고
 
삼년만 있으면 1세기 100년을 사시는 올해 아흔 일곱이신
가고파翁 김동진 선생님을 금호동 자택으로 찾아 뵙고 우리는 세배를 드렸
습니다. 지난 해 가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한복페스티벌에서
내마음의노래 우리가곡운동본부가 주관하여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하고 청
중들이 기립하여 환호성을 지르게 감동을 안겨준 "우리가곡 우리 옷을 입다"
에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흔쾌히 출연하여 주신데 대한 감사의 인사를 겸한
새해 세배였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책상에 수북히 쌓인 육필수기 진적악보를 보고 탄성을
지른 사람도 분명 있었지만 며칠전에 작곡을 탈고하고 미국으로 가고 있다
는 악보의 그 부본이 근래 지금 선생님의 창작활동을 잘 웅변하여 주고 있
었습니다. 귀를 좀 잡수셨기에 선생님은 보청기를 착용하고
사모님 李寶林여사께서 톤을 가다듬어 우리 일행을 소개해 주셨고
준비해 간 노트북으로 "우리가곡 우리 옷을 입다"의 오디오와 비디오를 들
으시지는 못해도 보시는 표정이 그날처럼 활기차고 밝으시고 맑으셨습니다.

흔히 예술가에게는 전설이나 신화가 더하여지기에 이야기가 더 윤택하여
지고 우리 보통인에게는 선망의 적이 되기도 합니다.
김동진 선생님께도 이런 신화가 따라다니는 것은 예외가 아닙니다.
가고파 후편 첫머리의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다름질 치고'의
거이를 설명하실때는 연륜이 누렇게 묻어난 '노산시조집'을 찾아 나오셔서
거이는 게라고 확실하게 또 아득한 회상에 잠긴듯 즐겁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김동진선생님은 1913년 평남 청천강변에 있는 안주에서
교회일을 맡아하는 김화식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교회음악을 통하여 자연스
레 음악에 입문하여 유성보통학교, 숭실중학교, 숭실전문학교를 나와 일본
고등음악학교에 유학했습니다. 부친은 해방직후 기독교자유당을 창당하려
한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감옥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 주모자로
몰려 처형당했습니다.

선생님은 숭실중학 5학년 시절에 처녀작품으로
평소에 애송하고 있던 파인 김동환선생의 시 <봄이 오면>에 곡을 붙여
중학교내에서 뿐만아니라 전문학교에서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 숭실
학교에서 은사 말스베리 선교사를 만나 바이올린 주법과 기초작곡이론을
배우고 그 영향으로 앞으로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불후의 명곡 <가고파>는 전문학교때 노산 이은상 시인의 친구인 자칭 한
국의 인간국보라 자부한 무애 양주동선생으로부터 노산 선생의 10장이나
되는 연시조시를 배운 다음 해인 1933년에 앞 넉장을 작곡한 후 또다시
40년을 지난후 1973년에 그 후편 여섯장이 마저 작곡되어 우리가곡의 금
자탑을 쌓았으며 후속하여 주옥같은 작품을 쏟아내 놓으셨습니다.
청천강변에서 자란 선생님에게 "가고파의 작곡"은 어린시절의 고향의 대타
요, 객지에서의 귀향의 꿈이어서 오랜 세월동안의 숙제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일찌기 젊은 시절부터 문명을 떨쳤는데 종교를 아편으로
보는 공산치하에서 목사인 부친이 목숨을 잃었고 또 예술혼에 불타던 선생
님은 6. 25 한국동란기중에 신앙과 자유를 찾아 남하 피난중 아군의 검문
에 신분증이 없어 국군에게 "가곡 가고파를 아느냐"고 묻고
그 가고파를 작곡한 사람이 내가 바로 그 김동진이라 답하여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합니다. 가고파전설의 명곡은 저렇게 태어나서 예술가에게 이렇게
생명으로 보답하니 예술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세월이 더 지나면 예술
은 길고 인생이 짧은 것을 우리는 또 한번 더 절감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배중에
선생님께 배운 제자 작곡가 정풍송님이 또 세배를 왔습니다.
허공 표정등 명곡을, 작곡에 작사까지도 하는 분인데(필명/정욱) 예사로 보
이지 않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스승이나 어르신을 찾아 세배드리는 이런 미
풍양속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 믿습니다.
건방진 소리지만, 음악계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 아니 나서면
우리 동호인끼리라도 나서서 원로음악인을 찾아 뵙고 인사드리는 쉬운 것
부터 시작하여 착실하게 준비하여 음악회등의 조촐한 자리라도 만들어 모
실수 있었으면 꼭 좋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또 하나 더 덧붙이면
노래하시는 정선생한테서 또 한가지 들어 아는 것을 자랑합니다.
김동진 선생님은 노래가 좋으면 되지 장르를 구분하지 않으셨기에
주옥같은 수많은 가고파 같은 명가곡을 작곡하셨지만
전통판소리를 현대화하여 보급하는 신창악운동에 필생을 보냈고
음악학계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재북시 하차투리안, 쇼스타코비치 등의
영화계의 활약상을 보아온 터라 영화음악에도 적극 참여하여

무명 작곡가의 생애를 그린 안정애 극본, 홍성기 감독의 최초의 음악영화
"길은 멀어도" 에서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을 작곡하여 선생님과 박옥련
님이 직접 불러 지금은 명실공히 명가곡의 반열에 올려 놓았는데, 이때에
소월의 시로 작곡한 진달래꽃, 못잊어, 초혼 등의 명곡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앞서 가요곡으로, 계용묵 원작, 이강천감독의 "백치아다다"
에서 여주인공 나애심님이 부른 주제가 "백치 아다다" 와
나에게 금시초문으로, 김래성 원작, 홍성기 감독의 청춘극장의 주제가를
남일해님과 송민도님이 부른 "축배의 노래"도 작곡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백수에 가까운 고령이셔도 귀가 좀 안 들릴뿐 눈은 안경을 안껴도 퇴색한
책의 잔 글씨마저 잘 읽으시고 요즘도 예술의 길에 정진하시며 작곡활동을
계속하실만큼 정신력이 말짱하시답니다.
2009년 올해로 100수를 사시는 김성태선생님을 이어
가고파翁 김동진선생님께서도 한 세기를 넘겨 장수하시리라 믿고 또 그러
시기를 간절히 축수합니다.


ㅡ 200901정초 ㅡ 정우동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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