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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칼럼
 

터널 다리 또 터널

鄭宇東 0 1598
터널 다리 또 터널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를 보려고 2박3일로
강원도 양양(襄陽)군 손양(巽陽)면 가평(柯坪)리에 다녀 왔습니다.
타관에는 가본 곳이 적어서 모든 여행이 나에게는 가벼운 흥분제가 됩니다.
군대생활때에 강원도 화천이북에서 복무한 적은 있으나 새로히 가보는
양양길도 그랬습니다. 연도의 지명도 금시 초문이고(철정 화양 등), 표고
높은 지대의 자연과 산하의 풍광이 전적으로 새롭게 다가 왔습니다.

차를 타고부터는 어디를 경유해서 어떻게 가느냐가 궁금했습니다.
승차한지 두어 시간 지나서 옆의 승객에게 물으니 곧 강릉에 도착하는데
지금 막 터널을 지나는데 대관령 아흔 아홉구비 고개를 터널로 관통하고
있는데도 대관령의 수려한 풍광을 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원체 높은 산에 길을 내다보니 터널과 다리 또 터널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차는 강릉에 닿았다가 주문진을 거쳐 양양에 약 4시간만에 도착하였습니다.
나중에 친구한테 들으니 미시령을 지나 속초를 거쳐 양양으로 오거나
안그러면 제일 가깝게 한계령쪽으로 바로 양양으로 오는 방법이 있다 하였
습니다. 내가 탄 버스는 제일 먼길을 제일 오래 걸려 온 셈이라 하였습니다.
또 이 지방에 있는 진부령은 알프스스키장으로 가는 길 어름에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밤을 밝히다가 
이곳의 현지에서 들어보는 특이한 언어생활 관습문제와
공기가 좋다는 이곳 시골에 호흡기관 질환의 원인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이곳에서는 비닐하우스 등에서 나오는 폐비닐등을 쓰레기봉투에 담으면
공적소각장에서 공해없이 처리함에도 불구하고 종량제 봉투값을 아껴
각 농가마다 드럼통을 반등분하여 여기에다 폐비닐을 자가소각하기 때문
에 다량의 다이옥신을 배출하는 관계로 호흡기질환에 노출되고 있답니다.
이점 행정지도나 보건당국의 계몽으로 시급히 시정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은 지방마다의 사투리가 있고 그 지방 특유의 뜻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들은 이 지방의 언어현상에는 우리말 학자들의 조사연구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의 혈족과 척족을 포함한 고모 이모 숙모 등 여자 아재비 뻘의 여성
호칭을 아재라 하고, 아재비 뻘의 남성호칭은 아저씨라 한다는 데는 어
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년상인) 누님의 남편을 매형이라 부
르는 데는 듣기가 거북하였습니다. 경상도에서는 이런 경우 자형(姉兄)
이라하고 (년하의) 누이의 남편은 매제(妹弟) 또는 매부(妹夫)라 합니다.
매(妹)에 형(兄)을 더하는 것은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친구의 집은 양양의 가평리에 있는데
집과 연하여 뚝방제방 너머로 연어가 회귀하는 남대천이 맑게 흐르고
밤이면 일곱 무지게 빛깔이 휘황한 낙산대교가 남대천 위에 걸려 있고
저 멀리 설악의 준봉 중에 울처럼 둘려있는 울산바위도 눈에 들어왔습
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울산바위의 유래와 전설을 재미있고 신기해
서 검색해 본 웹싸이트에서 인용합니다.

옛날 조물주가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전국의 잘 생긴 바위
는 모두 금강산으로 모이도록 불렀는데, 경상도 울산에 있었던 큰 바위
도 그 말을 듣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으나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
워 느림보 걸음걸이다 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모두 다
만들어진 후라서 이 바위는 금강산에 가보지도 못하고 현재의 위치에 그
대로 주저 앉았다는 얘기입니다.
한편 설악산 유람길에 나섰던 울산고을의 원님이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을
듣고 신흥사 스님에게 울산바위는 울산 고을의 소유인데 신흥사가 차지했
으니 그 대가로 세를 내라고 하여 해마다 세를 받아 갔는데 어느 해인가 신
흥사의 동자승이 이제부터는 세를 줄 수 없으니 울산바위를 울산으로 도로
가져 가라고 한 바,

이에 울산 고을 원님이 바위를 재로 꼰 끈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하
였더니, 동자승은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에 많이 자라고 있는 풀(草)로 끈
을 꼬아 울산 바위를 동여매 끈을 불로 태워 흡사히 재로 꼰 끈으로 바위
를 묶었지만, 울산고을의 원님은 이 바위를 가져갈 수 없었으려니와 더 이
상 울산바위에 대한 세를 내라는 말도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는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가 한자로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를 써서
속초(束草)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오늘날 속초의 지명 유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이며
한편으로는 계조암에서 보면 울산바위가 마치 울(울타리 즉 담)같아 보이
는데, 그래서 '울같은 산바위'란 뜻으로 '울산바위'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고 하는데 이것이 진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강원의 도명은 속초의 지명 유래가 울산바위에 관련있는 것처럼
강원도의 주도인 강릉(江陵)과 원주(原州)에서 한자씩을 따온 이름입니다.
강릉은 예족(濊族)의 고토였다가 고구려때는 하서량(河西良) 또는 아슬라
(阿瑟羅)로 불리다가 신라때 명주부, 고려때 강릉도호부, 조선시대에 와서
강릉현으로 개칭되어 현재의 강릉도농통합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주는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이었다가 백제가 마한을 병합하여
백제의 영토로 편입되었다가 고구려때는 평원군(平原郡), 신라때는 북원경
(北原京)이다가 고려 때부터 原州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또 춘천은 고대 맥국(貊國)의 땅이다가 신라때는 우두주(牛頭州)라 하였고
고려때에는 봄이 일찍 오는 곳이라 하여 춘주(春州)라고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춘천군이 되었으며 강원도의 도청소재지가 됩니다.

강원지방의 역사를 조금 더 알아보면
2000여년전에 우리나라의 동해안에는
경북 울진지역에 파조국(波朝國)이 있었고
강원 삼척지역에 실직국(悉直國)이 있었고
강원 강릉지역에는 예국(濊國), 하슬라 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상으로 이 삼소국을 창해삼국(滄海三國)이라고 합니다.
사학자 丹齋 신채호는 三陟의 지명 이두 풀이에서
悉直(國)을 세직이 => 쇠직이 => 쇠창고 로 풀이하였습니다.
이 풀이는 지금의 지명 삼척과 합치하는 풀이라고 생각합니다.

속담으로 읽는 강원의 인정과 풍물을 보면
척하면 삼척 => 답이나 해결책이 뻔한 것
강원도 안 가도 삼척 => 방이 냉구돌인 것 (삼척은 금군三廳의 잘못)
강원도 삼척 => 위와 같음
양간지풍에 => 봄철에 양양 간성간에 몹시 부는 센 바람
강원도 감자바위 => 강원도 출신의 사람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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