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자료실 > 신요칼럼
신요칼럼
 

조시마長老와 알료샤

鄭宇東 0 1471
조시마長老와 알료샤
까라마조프家의 형제들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옙스끼(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1821~
1881)의 대표작입니다. 그의 사망전해인 1880년에 발표된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神・종교, 삶[生]・죽음[死], 사랑・욕망 등 인간 내면의 본성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도스또옙스끼의 생애 만년 작품으로
그가 평생 고민하고 그리고자 했던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문학적・철학적 정수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게 전개됩니다.
19세기 러시아의 한 소도시의 벼락부자 지주인 표도르에게 20년 만에
아들들이 제각각 다른 목적으로 아버지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자존심이 강한 연애 지상주의자인 첫째 드미트리(미챠),
지성적이고 허무주의적 가치관의 소유자인 둘째 이반,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진 가장 이상적인 성격의 셋째 알료샤입니다.
그리고 사생아로서 하인으로 살고 있는 스메르자꼬프가 등장합니다.
드미트리는 아버지가 점 찍어둔 여자에게 반해 버리고, 여러 일들을 겪
으면서 집안의 갈등은 점점 깊어갑니다. 갈등 속에 표도르는 살해된 채
발견되고, 이반의 사주로 스메르가 살해했으나 미챠가 마음에 의도했다
는 누명을 쓰고 20년의 유형을 떠납니다. 이후 표도르 가문은 갈등과
부조리에서 벗어나 알렉세이에 의해 그리스도적인 사랑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외면적인 줄거리이고 작품의 내면적인 줄거리는
순진무구한 알료샤를 둘러 싸고 조시마의 사제와 이반 사이에 전개되는
사상의 대결, 그리스도교와 무신론의 불꽃티기는 대결이 벌어집니다.
조시마장로는 그의 형 마르켈을 연상하게 하는 알료샤를 사랑하고, 또
한편 알료샤는 장로를 이상의 푯대로 삼고 사제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로의 죽음은 젊은 정의의 사도에게 혼란과 회의를 불러왔습니다.
일부는 무슨 기적을 기다리고 한편에서는 비난할 흠집을 찾고 있었습니다.

"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소망해 왔던 그분이
응당 받아야 할 영광 대신에 느닷없이 수렁에 빠져 모욕을 받고 있다니!
무엇 때문에 그럴까? 도대체 누구의 심판이란 말인가?
누가 그 같은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그의 미숙하고 순수한
마음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의인 중의 의인인 그분이, 너무나 경솔하고
장로보다 훨씬 낮은 위치에 있는 무리들의 냉소적이고 악의적인 비웃음
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분노
와 모멸감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아도 좋고, 기적이 입증되지도 않고, 기대했던
일이 당장 실현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불명예를, 이런
모욕을 받아야 하며, 어째서 못된 수도사들이 말하듯이 <자연의 법칙
을 벗어난>빠른 부패가 일어난 것일까? 그들이 페라뽄뜨 신부와 함께
자신 만만하게 결론지었던 <계시>는 대체 무엇때문이며, 그런 결론을
내릴 수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처럼 확신에 차있는 것은 무슨 이유에
서일까? 하나님의 섭리와 그 분의 손길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러한 알료샤의 정의에 대한 공분과 회의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
지만 알료샤는 조시마 장로의 죽음을 계기로 우주에 대한 통찰에 의하여
이러한 고민들을 극복하고 이전에는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인물이었으나
지금은 달리 대담해 지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외향적인 인물로 변
모합니다. 그 한 예로 자기의 첫째 형 미챠를 구출하는 데 있어 불법적인
방법에 웃으며 동의합니다. 그리고 미챠를 공판하는 재판정에서도 거침
없이, 당당하게 증인으로서 진술하고 미챠를 변호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핵심적인 사상으로 읽히는
'대심문관 '장은 예수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가치관의 비판을 설명한 서사
적 구성의 시로서 무신론자인 이반의 신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는 이반의
사상 그 자체를 말합니다. 이반은 16세기 때 지상으로 내려와 기적을 행
하는 예수를 옥에 가둬놓고, 아흔 살의 수도승 대심문관이 예수를 심문하
는 장면을 설명해 주며 그리스도교 본질에 대해 묻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안 보이는 신을 사랑해야 하나, 헐벗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느냐? 고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의 희망이지만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모자란 불쌍한
어린이들을 멀리있는 예수의 사랑에만 맡겨두어도 좋은가고 묻습니다.

이 소설의 진짜 내면적인 줄거리를 이루는 것은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철학으로서, 이반과 알료샤의 스승인
조시마 장로 사이에서, 러시아의 미래를 상징하는 알료샤의 더럽혀지지
않은 영혼을 서로 빼앗으려는 형태로 전개되는 사상적 격투입니다.
이반이 지었다는 극시 <대심문관(大審問官)>은 도스또예프스끼 문학의
정수로서 현대에서의 권력과 자유의 문제를 조명하면서 예언적으로 울려
옵니다. 인간은 부활과 구원에서 오는 버거운 자유를 누리기보다 순종과
굴종에서 오는 노예상태와 안일을 더 추구한다는 인간성을 꿰뚫어 보고
있다 할 것입니다.

알료샤는 조시마 장로와의 마지막 담화에서
민중의 힘을 믿고 민중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같이 웃고 울어야 하며 세
상에 나가 결혼도 하고 견문을 넓히며 더 많은 경험을 쌓아서 자신과 가
족뿐만 아니라 나아가 더 많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설교를 듣습니다.
또한 절망에 빠진 루시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어떤 이데올로기나 과격
한 혁명의 과정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과 믿음으로 민중속으로 파고드는
그로인한 자연스런 민중의 교화와 깨달음에 있다고 감명깊게 듣습니다.
 
(작가는 이 장편의 속편에서) 수도원을 나온 알료샤가 13년 후 마침내
‘러시아 민중의 아버지’인 황제를 암살하고 십자가에 달리는 구상으로 추
측되는, 알료샤의 운명을 그릴 예정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작가의 공감은 조시마 장로 측에 기울지만 신이 창조한 세계의 불합리와
모순에 관하여 역설하고, 이 모순이 있는 한 미래에 다가 올 지상의 천국
도 인정할 수 없다는 이반의 대반론이 더 설득력있게 느껴집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천국의 열락보다 지상의 빵이 더 절실한게 사실입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