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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칼럼
 

고향의 흰점꽃

鄭宇東 0 2111
고향의 흰점꽃

우리의 가곡사중의 중요한 한 장면으로
충북 옥천출신의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고향"시에다
전남 보성출신의 채동선(蔡東鮮) 선생이 아름답게 가락을 붙혀서
고풍의상, 가고파, 바우고개, 무곡, 고독, 강이 풀리면, 죽림도 등
그 뒤를 줄잇는 우리 명가곡들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고        향
                                  ㅡ 정 지 용 ㅡ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불운한 지용시인의 납북으로 이 노래는 금지곡이 되고
여러 분의 개사로 이 가곡의 아름다움을 겨우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박화목의 망향이, 노산의 그리워가, 소프라노 이관옥의
그리운 고향이 같은 멜로디에 실려 노래불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배운 노래는 望鄕이었고
"꽃 피는 봄 사월 돌면오면, 이 마음은 푸른 산 저넘어"로 시작되어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정들 것일레라"로 애절히
끝맺는 이 노래는 내가 해마다 4월의 한달을 통과의례 치루듯이
무시로 자주 즐겨서 부르는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아직 꽃이 피는 4월도 아니고 한창 삼동인데
오늘 아침 자기의 닠네임을 흰점꽃으로 부르는 분의 답글을 대하니
이곡이 금지곡의 굴레를 벗어난 그 당시에 성악가들이 한점꽃이라 잘못
노래부르던 일이 생각나면서, 주제넘게도 우리 가곡의 가사에도 주의해
야 할점이 많은 것을 같이 생각해 보고 싶어서 입니다.

홍난파선생의 장안사(이은상 시)에
장하던 금전벽위 ==> 장하던 금전벽우(金殿碧宇)

이수인선생의 고향의 노래(최재호시)에서
북녘을 날아간다 ==> 붕녀글 ==> 붕여클로 발음해야

박판길선생의 산노을(유경환 시)에서
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 ? 내 눈썹에 얹혔던 목소린가 ?
그 모습 보듬네 ==> 그 모습 더듬네

최영섭선생의 그리운 금강산(한상억 시)의 가사는
남북회담을 개최에는  화해의 마당에서 대적하고 비방하는 투의 노랫말은
원작시자의 손으로 고쳐졌으므로 이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주제(主題)런가 ===> 누구의 주재(主宰)런가 가 원시였답니다.
짓밟힌 자리 =====> (그 봉우리) 예대로인가
더럽힌지 =======> 못 가본지 몇몇 해
맺힌 원한  ======> 맺힌 슬픔 풀릴때까지

정말로 주제넘은 의견을 하나 말합니다.
우리가 아카시아라 부르는 나무는 얕은 민둥산에서 조림수로 많이 심
어졌습니다. 요즘 이 나무는 아까시라고 이름표를 바꿔 달고 있으며
양봉업을 하고 있는 농부들도 고쳐 부르고 있는데 학교교육에서는 옛
이름 그대로 답습하고 잘못 부르고 있습니다.
특히 동요등 우리가곡에서 아까시아(꽃)으로 불려진 이 수종명을 앞으
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대해서도 연구해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까시(Robinia pseudoacacia)는 원산지가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현재
전세계에 고루 분포하고 있으며 온대에서 자라는 낙엽교목입니다.
아카시아(Acacia decurrence)는 오스트랄리아와 아프리카에 500여종
이 분포하는데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상록수로 분류되므로
이 둘은 수종이 다릅니다. 이러한 혼돈이 온것은 아까시의 학명이
Robinia pseudoacacia(類似아카시아)인데 있지않나 짐작해 봅니다.
그대로 답습 유지하는 것은 편하기는 하지만 진리나 참을 추구하는
구도자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우리 어른들의 추억의 꽃, 정열의 꽃 사루비아가 있습니다.
들깨의 몸체에 빨간 열정의 참깨꽃이 피므로 깨꽃이라고도 합니다.
식물도감 등에서는 샐비어(Salvia)로 고쳐져 있지만 현재 우리가곡
의 가사에서는 사루비아와 샐비어가 거의 반반의 비율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브라질이 원산지로 유럽어 Salvia 를 일본에서 번역하면서
사루비아(saruvia)로 부른 것이 유래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ㅡ 20131229 ㅡ 정우동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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