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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칼럼
 

음악의 고향

鄭宇東 0 1886
음악의 고향


우리 인류는 이르는 곳곳 마다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산에서는 알프스산록의 요들송들과 미국의 거치른 황야에서는 칸트리송이
물에서는 볼가강들의 뱃노래와 궁정에서 개최한 신나는 수상음악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곡에는 유난히도 산과 들, 강과 바다의 노래가 많은 것이 특징
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 산이고, 세계에서 제일 긴 강은 나일 강입니다.
산과 강은 자연상태의 규모로서의 최고 최장이라기 보다는 인간과의 관계맺기에 따
라서 그 문화의 크고 작은 꽃을 피운다 하겠습니다.

유럽에서 제일 긴 강은 볼가강입니다. 러시아의 서부에서 남쪽으로 관류하고 있는
이 강은 러시아인에게는 조국과 동일시 되는 강이고 젖줄이 된 어머니의 강입니다.
모스크바는 이 볼가강변에 건설 되었는데 러시아의 문학 예술은 짜르 치하의
상트 페쩨르부르크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머니강이라 부르는 이 볼가강과 모스크바
를 중심으로 펼쳐져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볼가강의 뱃노래, 끝없는 동토의 눈위
를 달리는 트로이카의 마부는 말이 없고, 전선의 애인을 그리는 카츄샤의  노래는
애절하고, 싸움터에서 전사한 병사는 백학이 되어 돌아와 부르는 노래가 슬픕니다.

또 체코의 몰다우강은 작곡가 스메타나가 6곡으로 된 교향시 "나의조국"중의
제2곡으로 체코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오스트리아의 도나우강은 이바노비치가 아름다운 다뉴브강의 물결로 넘치게 흘려
서 헝가리의 수도가 된 부다와 페스트를  8개의 다리로 연결시켜 위대한 작곡가
리스트의 헝가리광시곡과 더불어 기막힌 야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는 수많은 작곡가들이 활동한 음악의 도시입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봐그너, 슈트라우스 등이 거주하거나 거쳐 간 곳이
며 자연과 풍광이 좋아서 비엔나 숲속의 이야기, 다뉴브강의 물결 등과 같은 작품
을 낳기도 하였으며 그음악가들의 작품들이 연주된 잔향들이 어느 곳에나 서려
있고, 그들이 남긴 애환의 일화들로 가득찬 음악예술의 도시입니다. 특히 이곳에
서는 해마다 신년음악회를 열어서 세계의 음악활동을 개시하고 총괄합니다.

* 잘츠부르크는 W.A.모차르트의 출생지입니다.
원래는 주산물인 소금의 성이었으나  모짜르트의 도시라 불러도 좋습니다.
그를 기념하여 1920년부터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해마다 여름철에 개최됩니다.
악기·인쇄출판·석재·시멘트·양조 등의 공업이 활발합니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이 곳은 모차르트의 생가 외에도  중세의 바로크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잘츠부르크 성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으로 잘 알려진 미라벨 정원(Mirabell Garden) 등 볼 거리가 많습니다. 도시의 동쪽
에는 잘츠캄머구트(Salzkammergut)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호수지대가 있습니다.

* 바이로이트는 봐그너의 고향입니다.
오페라의 새로운 형식 악극을 창시한 봐그너의 사후에 그의 고향 바이로이트에서
는 매년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이 열리는데 사흘 낮 밤을 온통 봐그너의 작품만
을 무대에 올립니다. 음악과 공연이 함께하는 축제로 해마다 바이로이트(Bayreu
th)의 축제극장에서 열립니다. 樂劇으로 유명한 작곡가인 리하르트 봐그너
(Richard Wagner)에 의해 순수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장으로서 축제가 창설된
후 해마다 전세계의 바그네리안들에 의해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 미국의 내쉬빌은 컨트리송의 본고장입니다.
테네시주의 수도인 내쉬빌은 노래 만큼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입니다.
이곳의 중심 인물들은 대부분이 컨트리송 가수인 탓에 많은 이들이 꿈과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려주지만, 실제의 그들은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와는
달리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심리적 이방인’들이 많습니다.
음악의 치유효과는 일률적이지는 않고 음악성에 따라  달라지는가 봅니다.

* 전주에서는 전통판소리의 맥을 잇는 전주대사습제가 열립니다.
대사습이란 혼자 공부한 것을 발표하는 커다란 잔치라는 말입니다. 숙종말부터
영조때 대사습놀이가 열렸고 통인층이라는 관료들이 모이는 근무장소가 있어서
감영통인층과 부여통인층이 광대들을 불러 명창경연대회를 열었는데 이것을
대사습 놀이의 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기는 동지때인데 나중에는 변질되어
감영하고 전주 부와 경쟁적으로 놀이를 시작한 것이 1895년까지 하다가 감영이
1910년에 해산되었다가 1975년에 다시 부활한 것이 오늘날 대사습놀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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