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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칼럼
 

서재의 미학

鄭宇東 1 1576
서재의 미학

 
* 책읽는 바보들의 아름다움

옛날이라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18세기후반의 이야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형암 이덕무(李德懋) 어른이고
우리나라에서 책을 가장 많이 사고, 공부한 사람은 혜강 崔漢綺라는 분입니다.
형암 선생은 당시의 학자들과 시문집을 내어 문명을 떨쳤으나 서출이라 높이는
등용되지 못하였지만 사소절이라는 예절책으로 내게도 친근한 분입니다.
그는 별명이 책에 미쳐서 책만 읽은 바보천치(看書痴) 로 불릴만큼 세상물정을
모르는 순정파인(純情派人)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혜강 선생은 서울서 책만 사다가 집안 재산을 탕진하고 어려워서 도성 밖으로
이사를 하는데 한 친구가 아예 시골로 내려 가서 농사를 짓는게 어떻겠느냐고
핀잔을 주니 서울 만큼 책사는데 편한데가 어디 있겠느냐 하면서 책을 사는데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서울 근처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많이 사서 읽은 그 덕으로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으로 서구의 새학문을
수용하였고 경험주의 철학의 중요성을 설파하여 실학 사상의 기반을 확립하였
고 기철학의 대가로서 지금은 북한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 책을 읽는 방의 아름다움
 
저쪽 서양에서는 서재의 치장과 호화로움이 중요하였지만
우리 동양에서는 명창정궤(明窓淨几)가 옛 선비들의 문방 서재의 전부였습니다.
글자 그대로 밝은 창문과 정갈한 책상만 있으면 되었고 명대의 문인 고렴처럼 더
욕심을 부린다면 뜰에 붓씻는 연못을 하나 파는 것으로 호사를 다했다 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위에서 말한대로 서양의 영국에서 해군대신에 오른 피프스가 암호
와 속기체로 남긴 장서에 대한 일기에서 고서본을 새로운 호화장정으로 꾸미고
금박을 칠한 책장에 정리하는 등 호사와 사치를 다 부렸습니다.

이런 반면에 유럽 제일의 서재인으로 받들 만한 몽테뉴의 서재는 
ㅡ그가 막대한 유산을 상속 받은 부자이기에 귀족들처럼 호화로운 서재를 꾸밀
수 있었지만ㅡ 수도승의 방처럼 검소했고 그는 그속에서 등대지기 비슷한 집당
지기일 뿐일 정도로 서재인의 반듯한 자유와 고독한 놀이를 바랬다 할것입니다.


* 정돈과 질서의 아름다움

나는 되도록이면 책을 서가에 정리하여 꼽을려고 하지만 보거나 읽는 책은 편해
서 방바닥에 그냥 널어 놓고 봅니다. 공공도서관에서야 이용자가 편하도록 서가
에 가지런히 꼽아 정리 할 필요가 있겠지만 개인의 집에서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
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유방임주의자이기에 마누라에게서 막 어지러 놓는다고 안
좋은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이른바 미학의 정리정돈미를 잃었다는 지적입니다만
나는 이용의 편의-실용미도 미의 중요한 한 요소라고 생각하기에 널어 놓은 채로
나의 편의에 따르기는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사실로, 미학의 미(美)의 개념은 가치와 관련된 판단이기 때문에 다의적입니다. 
그리하여 균형미, 장엄미, 괴기미, 실용미, 인간미가 미의 범주에서 중요하지만
이 밖에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갖가지의 다른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의 한자의 원말 "아름다울 美" 자는 농사를 지어 양식을 마련하던
농경사회 이전의 수렵과 목축의 시대에는 사람의 머구리의 하나인 양등 짐승
이 큰 것이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우리말의 "아름답다"도  아름드리로 큰 것이
었을 것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전에 중국과 한국에서는, 요즘처럼
다이어트 웰빙의 표어 슬림스타일 보다는 다소 살이 올라야 미인으로 쳤습니다.
이와 같이 미의 개념은 개인적이고 다각다의적이기 때문에 나의 서재의 미학은
형태적-미술적 안목보다는 인간적-주정적 요소를 중시하는 입장입니다.


* 반듯한 서재인의 아름다움
 
책의 소장자들은 그 수의 많고 적고를 불문하고 장서표 등를 만들어 붙여 자기
것의 배타적인 소유권리를 주장합니다. 그런데 일부 독서가들은 장서표의 권리
자를 인정하지 않고 빌려가서는 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장서표에 가장
많이 쓰인 경구는 "악한 자는 책을 빌리면서 갚지 않는다"는 구약 시편에서 옮
긴 문구였습니다.  한 걸음 더 악질인 것은, 책의 진정한 소유자는 그 책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하므로 자기야말로 그 책의 권리자라고 주장하고 원소유
자를 무시하는 낯두꺼운 오만불손한 약탈자 이론가가 있는가 하면 그반대로
처음부터  "그롤리에와 그의 벗들의 것"이라는 아름다운 명구로 이웃과 동지
에게 공유를 선언하는 프랑스의 장 그롤리에 같은 고마운 장서가도 있으니
나는 이들을 가리켜 서재의 미학자라 부르고 싶습니다.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에서 로마의 계관시인의 명예를 누린 최대의 독서가이
며 애서가는 페트라르카(1304~1374)입니다. 그는 그는 고전본을 찾아 산간벽
지의 수도원을 돌아다녔고, 데카메론의 저자이며 막역한 친구인 보카치오
(1313~1375)가 생활고에 시달릴때 그의 장서를 매수하고 자기의 장서와 함께
공유재산으로 삼으며 자기 집에서 함께 살기를 제안하기도 한 인정 많은 사람이
었슴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책과 강아지는 훔쳐가도 도둑죄가 아니고 나라님도 챙겨넣기는 마찬가지란 말
이 있습니다. 역사상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합니다. 역대의 교황중에는 장서가가
많았는데 이중에서 이노켄티우스 X세에게는 (책)도벽이 있었습니다. 그가 주교
로 있을때 한 유명한 화가를 방문하고 귀한 책을 옷밑에 숨겼다가 발각되어 몽
둥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웃기는 것은 이 화가 또한 도벽이 있었다하니 못 말리
는 책세상입니다. 어쩌면 그 당시는 물론이려니와 요즈음도 장서가나 애서가에
게는 책도둑의 기술이 필요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존엄한 바티칸에서도
책도둑은 도둑의 축에 들지 않았다니 참으로 유쾌한 이야기의 한 토막입니다.
아무튼  어떤 책이든 읽고 싶은 사람이 주인이 되는 좀은 엉뚱한 서재의 공산주
의 미학이 널리 전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책으로 맺어진 인연의 아름다움

이 밖에 서재에서 일으난 아름다운 인간적 미담과 연애사고-사건도 많습니다.
왕년의 영화 LOVE STORY 가 그렇고 동문수학한 동문들의 벼슬자리 서로 추천
하기와 이권 나누어갖기가 다 그렇고 그런 류의 이야기 입니다.
공자님의 제자에 자공이 있는데 원래부터 부자였고 그리고 벼슬도 높아서 섬기
는 임금에게 자로를 추천하여 높은 벼슬자리를 살게 하였습니다.
또 관포지교의 한 주인공으로 포숙아는 관중의 뛰어남을 이해하고 벼슬을 자기
보다 높은 데로 추천하여 관중은 환공의 천하패권대업에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1 Comments
파천 2016.02.25 23:19  
5평짜리 제 서재의 한쪽 벽면에는 큰 책장 다섯 개가 도열했으며 맞은 편에는 컴퓨터 책상을 놓고 그 옆에는 컴퓨터와 연결된 디지털 피아노를 비치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더 많은 책을 구입하여 켜켜이 쌓아두고 싶으나 책 만큼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존재도 따로 없기에 주거공간을 확보키 위해 기천권의 장서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의 꿈이 독립된 서재와 그 서재에 가득찬 책이었는데 이제 그 꿈은 실현되었으나 책에 대한 갈증은 여전합니다. 글쎄요. 미학이라..... 묵은 종이냄새와 묵향이 감도는 서재 하나 쯤 지니는 것은 분명히 호사이며 미학이라면 미학에 들어가겠으나 그것에다 미적인 요소들을 더 첨부하고 꾸미는 일은 제 소관이 아닌 듯합니다. 차라리 미학이라는 언사를 수식할진데 매인 데 없고 걸기적거리는 데 없이 천하의 게으름뱅이가 된 제 일신에 찾아온 안식이 미학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