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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제자를 생각하는 날

鄭宇東 0 1655
스승이 제자를 생각하는 날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날을 생일로 기억하며 맛진 음식을 차려 놓고 축하
하며 기념합니다. 고등학생때 어느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어릴때에는 생일 잔칫상 때문에 생일이 기다려지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감
에 따라 많은 산고를 겪으며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감사
하는 날이 되어여 한다고 일러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버이-어머니 날이 따
로 있는 것이겠으나 자신의 생일날을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는 날로 삼아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일본의 유명한 하이꾸 시인 이시까와 다꾸보꾸는
    "장난 삼아 엄마를 업어 보니
    너무 가벼워 참을 수 없는 눈물
    세 걸음도 걷지 못해"
하였는데 이시까와의 눈물은 바로 나와 당신의 눈물이기도 한것을 압니다.

이렇게 천착해 보아야 할 날에 또 "스승의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육계에는 교수는 많으나 믿고 따를 스승이 없다는
젊은이들의 불평을 자주 듣습니다. 요즘의 대학교수들의 실력이 있느니 없
느니 하는 얘기가 아니라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그런 교사상으로서
의 교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당돌하게도 오늘의 대학가에
는 교수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고 기세가 등등합니다. 이러한 대학생들의
불평에 교수들은 궁색한 반격논리로 학생들은 많으나 진정으로 정을 줄만
한 제자들은 없다고 해보지만 대학생들이 무례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않
는 것도 어느정도 교수들의 책임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경우에는 대학에서의 스승과의 별난 인연은 없었지만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저술한 바스카글리아교수와 캇시러교수를 알
게 된것 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을 사숙하고 배웠습니다.
바스카글리어(Leo Buscaglia)교수는 방학을 지나 새학기가 되었는데 강의
에 나오지 않는 학생이 있어 물으니 방학중 인생을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큰 충격으로 듣고 왜 진작 그 학생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지 않았느냐고 자책하며 고민하고 후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뇌리에 오
랫동안 담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캇시러(Ernst Cassirer 1874-1945)의 교수는 당시에 이미 연로한
문화철학자였는데 귀가중 제자가 부르는 소리에 몸을 튼채로 그 자리에서
숨졌다 했습니다. 임종의 시간까지 교단에서 제자와 교통했다는 사실이 그
토록 나에게는 존경스러웠습니다.
 
스승의 날은 원래 제자가 스승께 감사하는 날인것이 본래적 의미입니다.
스승과 제자가 실종된 요즘의 세상에 성공한 제자의 전화 한통의 인사와
한 차례의 방문은 연로하신 스승께 더 없는 기쁨과 보람을 안겨 줍니다.
고급관료가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되어 비서와 참모진을 대동하여 기차
여행을 하다 검표하는 차장인 옛 은사를 만나 얼른 인사하고 언제 어디
서의 누구라고 소개하니 차관인 제자를 알아보고 손만 잡고 아무 말도
못하는데 눈자위에 이슬이 맺혔더라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
순간 그 선생은 자기가 검표원이라는 고달픔도 잊고 그저 제자 잘된 대
견함에 가슴이 뿌듯하고 큰 보람을 느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세태가 바뀌어 온것을 보면 이제 스승의 날은 제자가 스승을 생
각하기 보다는 아마 스승이 제자를 더 생각하는 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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