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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 통섭(統攝)인가?

鄭宇東 0 1565
왜 이제 통섭(統攝)인가?


정신분석학은 너무도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술로 많이 읽혀지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앞의 책과 대등할 정도로 중요한 아싸지올리의 정신통합학
은 저자가 알려지지 않아 거의 연구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쇼 라즈니쉬는 이런 반쪽씩만의 진실인 精神分析學과 精神統合學을 온전하게
살리고 통섭하여 정신정립학(精神正立學)을 수립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은 학문의 극단적인 분화가 세상복잡계의 문제해결에 힘을 못쓰는 단편적
인 지식인을 양산하고 있는데 대한 반성에서 학문의 종합과 통섭을 통하여 문제
해결에 유능하고 균형잡힌 지성인을 우리시대와 사회가 절실히 요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문에 종사하지 않는 생활인이 학문의 새로운 이론이나 학설을 모르고도 살아
갈수야 있지만 그래도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분야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면 부끄
러운 일입니다.
얼마전 새로운 우주기원설로 초끈이론이 한동안 화제였습니다만
찰스 다윈이 진화론으로 학계에 큰 충격을 남긴이래 금세기 최대의 충격적 화두
인 에드워드 윌슨이 지은 <知識의 統攝 /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도 모르고 지냈으니 스스로 21세기의 르네상스인이기를 자처해 온 내가 많이 실
없어졌습니다.

서양 개별학문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원에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납니다.
그는 기존의 천문학 기하학을 포함하고 또 새로운 논리학 생물학 정치학 미학
수사학 등의 학문 분화작업을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멀리 이들 학문간의 통합
이라는 거대한 밑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의 <형이상학>에서 서로 다른 대상들의 원인과 원리들도 어떻게 보면 즉 우리
가 보편적이거나 유비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모든것의 원인들과 원리들은 똑
같다는 통찰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러한 통합과 통섭의 개념은 일찌기
신라의 원효성사(元曉聖師)가 인도의 고승 마명(馬鳴)의 <大乘起信論>에 주석을
단 <대승기신론疏>와 <대승기신론別記>의 내용을 두루 통섭 내지 총섭(總攝)하
는 <대승기신론疏記會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들었습니다.

고대의 이러한 지적 유산은 근대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을 거쳐서
현대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의 개념으로 결실되어 본격적으
로 탐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윌슨이 주창하는 통섭의 여의주인
모든 생명현상을 생물학에 귀착시키고 나아가서는 물리법칙이나 화학법칙으로 대
치시키는 환원주의 방법은 결코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의 약은 아
닙니다. 학문분화의 명분이 되고 또 그 학문의 존재이유가 되는 그것 고유의 특성
이 있는데다 인류문화의 양대갈래인 물질주의와 정신주의의 어느 한쪽만으로의
환원은 불가하다는 비판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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