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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표상 조르바

鄭宇東 0 1429
자유인의 표상 조르바

그리스의 카잔차키스(Νiκοs Καζαντζaκηs, 1887~1953) 가 쓴
희랍인 조르바 (그리스어 원제 : Βiοs και Πολιτεiα του Αλeξη Ζορμπa,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는 그야말로 자유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는 석수장이에 광부에 행상에 옹기장이, 비정규 부대요원, 도붓장수, 
대장장이, 밀수꾼, 산투르 연주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삶을 살
아 왔습니다. 몸도 마음도 무엇에도 걸릴것 없는 자유롭고, 또 영혼마저
도 淨福을 지향하여 어디에도 구애되지 않는 거룩한 자유인이었습니다.

작품중 화자인 나(버질)은
우연히 교육을 받지 않은 늙은 노동자인 조르바를 고용하게 됩니다.
세상사 근심걱정을 혼자 짊어지고 본능이 부르는 소리마저 애써 억누르려
하는 전형적인 '먹물'인 나에게 조르바는 계획에 매이지 않고, 성공에 집착
하지도 않으며, 계속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질긴 생명력의 존재이자
술과 음악에 미쳐있고 여자만 보면 팔짝팔짝 뛰는 도무지 앞뒤를 재는 법도
없고 당장 숨쉬는 그 순간에만 몰두하는 거침없고도 자유로운 인물입니다.
도자기를 빚는 물레에 손가락이 걸리적거린다고 도끼로 손가락을 잘라버리
기도 하고, 모든 것을 투자했던 사업이 일 순간에 무너진 후에도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아무 것도 우릴 방해할 것이 없다"며 오히려 홀가분
해 하는 이 매력적인 사나이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야성을 지키고 있는 자연인입니다.
무당이기도 하고 진정한 의미의 승려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자기 손 안에 쥐고 사는 주인입니다.
그의 눈엔 매일 아침 뜨는 태양이 다르고 늘 보던 길마저 새롭습니다.
언덕을 구르는 돌멩이를 보면
"돌멩이조차 생명을 가지고 있구나"면서 아이처럼 탄성을 지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늘 신비롭고 즐겁습니다.
그가 술에 취해 추는 춤은 신들린 무당의 춤처럼 우주를 이야기합니다.
 
고인을 기념하기 위해 묘비에 명문이나 시문을 새긴 것이 墓碑銘(묘비명;
epitaph)입니다. 죽은 자는 침묵하지만 묘비명은 그 사람을 얘기해 줍니다.
이렇게 묘비명엔 고인의 삶과 가치관이 또렷하고 오롯하게 담겨 있습니다.
‘희랍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Den elpizo tipota(I hope for nothing.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Den forumai tipota(I fear nothing),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Eimai eleftheros(I am free).                나는 자유롭다”
는 묘비명을 남겼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작가의 인생과 혼이 묻어난 문장입니다. 또한 이 말은 조르바처럼 거룩하
게 되고 싶어한 저자의 기구요 기도이었지만 차라리 조르바의 이 혼탁한
세상을 향한 진정어린 유훈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는
미칼레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 등이 신성을 모독
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
보에 지명되며 세계적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밖의 작품으로는
오디세이아,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성 프란치스코, 영혼의 자서전,
동족 상잔 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카잔차키스의 문학을 읽을 때에는
카잔차키스의 인생과 작품의 핵심에 있는 개념이자 그가 지향하던 궁극적
인 가치인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상태 너
머에 존재하는 영역입니다. 이 개념에 따라 카잔차키스는 밋밋한 자유를
넘어서 성스러운 종교적 영역으로 가까이 다가서는 거룩한 자유인의 표상
으로서 조르바라는 캐릭터를 창조해 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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