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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수염과 웃음

鄭宇東 0 1642
링컨의 수염과 웃음

1860년 10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한참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비서인 존 헤이는 유치할 뿐만 아니라 맞춤법도 틀린 어
느 시골 소녀 베델의 편지를 훑어보고 투덜거렸습니다.
“이제는 어린 소녀까지 당선비결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서는군.”

그때였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오다 이 말을 들은 링컨은 비서가 구겨서 던져
버린 베델의 편지를 천천히 읽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링컨 아저씨는 얼굴 생
김새가 너무 홀쭉해서 좀 딱딱하게 보이는 게 흠이니 볼수염을 기르면 훨씬
부드럽게 보여 부인들에게 인기가 좋을 것이며 또 부인들은 남편을 졸라
아저씨를 찍게 할 것이므로 틀림없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
고 적혀 있었습니다. 링컨은 즉시 손수 답장을 썼습니다.

1860년 11월 6일, 마침내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고 이튿날 새벽이 되
자 링컨의 승리가 확실해졌습니다. 1861년 2월 11일은 링컨의 52번째 생일
이었습니다. 그는 이제껏 살던 스프링 필드를 떠나 수도 워싱턴으로 갔습니
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링컨은 큰 도시의 역에서 꼬박 꼬박 연설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차가 계획에도 없는 작은 역 웨스트필드에 대통령의 특별명령으
로 서게 되었습니다. 이 기차를 기다리던 군중 속에는 설레는 가슴으로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군중 속에 파묻혀 귀만 쫑긋 세우고 있는 베델에게 ‘그레이스 베델’이라는
자기의 이름이 똑똑히 들렸습니다. 링컨이 자신을 찾는 것임을 알고 단상으
로 달려나갔습니다. 대통령의 얼굴에는 수염이 뒤덮여 있었고, 링컨은 인자
하게 웃으면서 그 소녀에게 다정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래, 난 네 말대로 수염을 길렀단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후 링컨은 내내 수염을 길렀으며 그 더부룩한 수염은 그의 상징이 되었고
수염을 기른 기간은 약 5년간에 지니지 않았지만 그의 영원한 트레이드마크
가 되었습니다.

링컨은 정식 학교교육은 그것도 순회교육으로 18개월 밖에 받지 못하였지만
변호사가 되고 주의원 연방하원의원을 거쳐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격과 사상은 고매하였습니다. 그는 국민과의 소통에 능하였으며 그
는 정치적 도덕적 결정에 남달리 탁월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반생은
고난과 실패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우울하고 억울한 심사를 다스리느라
그는 매일 아침 유머를 준비하며 환자 겸 의사로서 자가치료를 하여 밝은 세
상으로 옮겼습니다. 그리하여 명랑하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나는 그가 말한 격언같은 소중한 교훈을 오래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사람은 40이후의 저마다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얼굴만이
아니라 전인격 전재산 전풍모 전건강등 전인생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절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명당의 수염이 유명합니다.
四溟堂 惟政 (1544∼1610) 大師는 경상도 밀양군 무안면 고라리(古羅里;
괴나리, 과나루)에서 태어났습니다. 속성은 임(任)씨이고 이름은 응규(應
奎)입니다. 16세에 황악산 직지사의 신묵(信默)스님에게 출가하여 득도하
였습니다.
削髮은 逃塵世요  /  머리 깎은 건 띠끌 세상을 도망쳐 나옴이요
存髥은 票丈夫라  /  수염을 두는 건 장부의 표상이라 하면서 - - - - -
원래 스님들은 머리를 삭발하고 턱수염을 깍는 법인데 중의 표시로 삭발은
하지만 사나이 대장부로서의 위엄을 보이기 위하여 수염은 깎지 않고 기른
다는 기개를 보인 많지 않은 스님들중의 한 분입니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가 된 사명당 유정은 승병으로 차
라리 장군이었고 임란을 끝내는 과정에서 가또오기요마사와 담판하여 명일
국간의 조선8도 분할안을 무산시키고, 대마도주와 교또의 도꾸가와와의 협
상에서 직업 외교관을 능가하는 수완과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법력 또한 신통하여 전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사신의 임무를 띄고 일본에서 활약할때 일본측이 그네들의 문화재를 자랑
하기 위하여 사신이 지나가는 길에 벌려 놓았더니 본것을 다 외워서는 우
리것의 모작뿐이라고 핀잔하였고, 그의 큰 인물됨을 경계하여 그를 무쇠막
에 가두고 숯불을 피워 무쇠막을 달구어 데워 죽일려고 하였으나 그는 천정
에 어름빙(氷)자를 써 붙여놓고 신통력을 부려 일왕이 문을 열자 눈섭과 수
염에 고드름을 단채 나왔다는 신기한 이야기가 있고
또 고향인 경상남도 밀양에는 그를 기리는 表忠寺가 있고 무안면에는 사명
당영당비(四溟堂影堂碑)가 있는데 이 비는 국가에 큰 일이 날 때마다 몇 말
씩의 땀을 흘리며 괴로워한다는 호국전설과 더불어 사명당이 지팡이를 꽂아
놓고 사라지며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아있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 나
무가 살아있다는 수목설화를 더하여 사명당 설화는 구국도술설화로써 민족
의 사랑을 받고 널리 전승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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