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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음악사의 정리" 학술대회에 다녀와서

鄭宇東 0 2343
"한국근-현대음악사의 정리" 학술대회에 다녀와서 

 
한국작곡가협회에서 주관하여
지난 (2010년) 4월 15일부터 6월 17일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모두 10차례에 걸쳐
남산에 있는 서울 문학의 집에서 행하여진 
상기 제목의 학술대회에 다녀와서 그 강연중 같이 알고 싶은 몇가지를 보고합니다.

우선 세미나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회차별 테마를 보면
제1차 : 한국의 초기가곡
        * 한국의 초기가곡 (강사 / 민경찬)
제2차 : 서양음악 도입기의 한국음악
        * 찬송가와 서양음악의 도입 (강사 / 문옥배)
        * 초기한국의 천주교 음악 (강사 / 강영애)
제3차 :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전후한 음악계
        * 김순남, 이건우 등 월북 작곡가들을 중심으로 (강사 / 노동은)
        * 김성태, 나운영 등과 월남 작곡가 김동진을 중심으로 (강사 / 진규영)
제4차 : 현대음악협회와 세계를 향하는 한국의 현대음악
        * 나운영, 이상근, 정회갑, 김세형의 음악 (강사 / 홍정수, 변지영)
        * 정율성의 음악 (강사 / 이진우)
제5차 : 윤이상의 음악세계
        * 윤이상의 음악세계 (강사 / 홍은미)
제6차 : 1970년대와 현대음악
        * 강석희, 백병동, 김정길, 나인용, 이영자의 음악 ( 강사 / 전상직)
        * 현대를 바라보는 작곡가들의 가치와 고민 (강사 / 김춘미)
제7차 : 1980년대와 한국의 후기현대음악
        * 제3세대와 민족음악운동 (강사 / 이소영)
        *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서ㅡ
          진은숙, 이신우, 백승우 등의 젊은 작곡가들 (강사 / 홍수연)
제8차 : 한국의 음악을 이끌어 온 작곡단체들의발자취
        * 창 악 회 (강사 / 박준영)
        * 미래악회 (강사 / 김규동)
        * 21세기 악회 (강사 / 유범석)
제9차 : 한국의 음악을 이끌어 온 음악제들의 발자취
        * 서울 음악제, 범 음악제, 대구국제 현대 음악제, 윤이상 음악제,
          이상근 음악제, 정율성 음악제, 안익태 음악제, 그외의 음악제들
          (강사 / 변계원, 이경분, 이신우)
제10차 : 종합토론
          ( 토론자 / 진규영, 김춘미, 변계원, 홍은미, 박준영 外 - - - - - - )

다음의 글은 이번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새로 알게된 내용과 이에서 촉발된
나의 우견의 일단을 피력합니다.
사실인즉 나는 음악공부를 하지 아니한 문외한이기 때문에 세미나의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우리가곡을 애호하기는 하지만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극히 짧은 지식에서 오는 한계와 오해를 감안하고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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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근대음악은 서양음악의 도입과 때를 같이합니다.
그리고 서양음악의 도입은 기독교선교사들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서울에서는 아펜셀러와 언더우드가, 평양에서는 베이드와 말스베리가
구제 신식학교를 세우고 찬송가와 더불어 서양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구제 신식학교에서는 교과에 창가를 편성하고 서양음악을
가르쳤습니다. 이때 김인식은 학도가와 경부철도가등의 창가를 작곡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홍난파가 봉숭아를 작곡하여 우리가곡의 효시를
이루었습니다. 이어서 박태준은 동무생각(사우)를 작곡하고, 현재명은 희망의 나라
를 작곡하였습니다. 그리고 채동선은 12곡의 가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8곡이 모두
정지용 시인의 작품이었기에 시인의 월북으로 원제목과 가사로 가창되는 것이
금제되다가 1988년의 해금조치로 풀렸으나 그 동안도 명맥을 이어오던 "고향"을
을 제외하고는 다른 작품은 지금도 다 망실된 상태입니다. 이런 일은 박태준 작곡
가의 경우도 비슷하여 작곡가가 친하게 지내던 월북시인 윤복진의 작품에다 많은
곡을 붙였는데 다 금제되고 어린이를 위한 동요곡만이 불려져 작곡가를 동요작곡
가로 잘못 알려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해방공간의 혼란과 사상 이념적 갈등으로 남북을 오간 예술가가 많습니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가 그렇고, 동양의 별이란 애칭으로 사랑받던 무용가
최승희가 그렇습니다. 음악가 중 마의태자와 그리운 강남, 작별을 작곡한 안기영
과 산유화, 자장가의 김순남과 금잔디, 산길을 작곡한 이건우가 월북하였고,
6-25 이전에 바우고개의 이흥렬이, 뒤이어 가고파의 김동진과 선구자의 조두남과
님이 오시는지의 김규환과 보리피리와 보리밭의 윤용하가 월남하였습니다.
김동진 작곡가의 월남기에는 전설적인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가 따릅니다.
선생이 월남하다 국군의 불심검문에 아무 증명서도 가지지 못했기에 급한김에
"국군 양반 가고파라는 노래 아느냐"고 물어 그 대답이 "두번이나 들었다"라는
대답에 "내가 그 가고파의 작곡자 김동진"이라 하여 위기를 면하였다 합니다.

길게 늘어 놓자면 한없이 길어질 것을 세미나의 전내용을 이해할수도 없기에
이쯤에서 끝내고 처음 들었기에 같이 알고 싶은 말만 간단히 추려 적습니다.
세미나기간 내내 참석했던 백병동교수의 말처럼
우리의 한국근-현대음악은 그 초창기부터 1950년대까지는 가곡의 역사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인상을 받았습니다. 발표장소나 듣는 청중의 수준 등등의
문화적 사회적 여건이 너무 열악하여 창작국악곡이나 기악곡 또는 대편성의
교향곡의 작곡은 극히 미미한 실적에 머물렀고 이러한 작품들에 대한 논의는
나의 이해밖이므로 가곡쪽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몇가지만 소개합니다.

* 세미나의 주최측은 작품과 악보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우고개의 작시-작곡자는 이흥렬로 되어 있는데, 작시자는 이서향이라 하였습니
다. 그리고 이흥렬 작곡의 고향 그리워의 작시자는 만향인데 이 만향을 우리는 확
인해 보지도 않고 이흥렬의 호쯤으로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아드님 이영조 교수는
만향은 별개 인물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이야기를 앞으로 이어, 이 세미나에서는
바우고개의 작시자가 이호섭 작곡가의 형인 이서향이라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박태준 작곡의 아!가을인가는 윤복진 작시인데 김수향 또는 김수경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일설에는 윤복진의 호가 김수경(卿)인데 잘못 읽어 김수향(鄕)
으로 오기된 덕에 검열 당국이 윤복진과 관련 없는 이름으로 생각해 요행히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 예술작품도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원형을 유지하기를 바랍니다.
남북교류 음악회에서 이규도 교수가 그리운 금강산을 합의한 개사로 아니고 원래
의 가사로 연주한 고집처럼 당당한 예술가의 긍지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 광주 태생의 정율성은 공산치하의 중국에서 延安頌을 작곡한 대음악가로 추앙
을 받고  있으며, 현재 광주에서 열리는 정율성 음악제의 주인공입니다.
반면에 시대의 조류때문에 비슷한 길을 걸었던 우리의 윤이상은 외국에서 현대의
5대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음악가이지만 조국에서 그의 한국음악가로서
존재를 음악계의 일각에서 부인하고 있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 서양식 창작개념을 받아들인 창작국악의 선두주자 김기수는 皇化萬年之曲을
작곡하여 비난을 받았지만 1940~50년대에는 국악계의 독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밖에도 양악계의 신진여류 작곡가 진은숙의 활약상을 인상깊게 들었습니다.

*  음악단체는 초기에 동호회의 성격을 띄웠고, 단체조직으로 성장한 요즈음도
결속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난맥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리멸렬한 음악계의 전열을 가다듬어 문화역량을 제고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러한 과제는 우리나라 문화단체에 전반적으로 공통된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세미나를 마치면서 나에게는 이런 희망과 바램이 있습니다.
음악적 탤런트가 많은 개인이나, 사회적 기여가 많은 학회나 관련단체의 활동에
음악인들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데, 음악계나 사회에 대하여 우리가 오랜
우리겨레의 전통적 정서를 간직한 우리가곡의 보급과 발전에 기여코저하는 우리
내마음의노래 온라인 사이트와 오프라인 실제활동을 위한 우리가곡운동의 캠페인
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우리회원들에게 우리가곡운동의 중요
성을 다시 환기시키고 싶으며 우리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여 우리 음악사의 한 페
이지를 찬란하게 기록하는데 앞장서 주실 것을 당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아프리카의 탐험가이며 선교사인 리빙스턴 박사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는 한 결코 죽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꿋꿋이 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겨레의 정서를 이을 가곡의 보급과 발전을 위한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아무리 큰 난관이 있더라도
결코 죽을 수 없을 뿐더러 중단이나 후퇴나 오랜 휴면조차도 있을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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