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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의 백묵원

鄭宇東 0 3298
코카서스의 백묵원
현대의 셰익스피어로 불리워지는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가 지은 희곡작품입니다.
타이틀을 보면 작품의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여느 작품과는 달리
원제목(Der Kaukasische Kreidekreis)을 찾아 보고, 다이제스트한 줄거리를
다 읽고 나서야 코카서스 지방에서 있었던 아이의 양육권을 둘러싼 재판현
장의 전투적 상황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러시아 코카서스 지방에서 생모와
양모의 다툼으로 백묵(白墨)으로 그린 원(圓)안에 아이를 두고 서로 끌어
당겨와서 자식으로 삼는 현대판 솔로몬의 재판이란 사실이었습니다. 

고대의 솔로몬의 재판이 천륜을 바탕으로한 모정에서 아이를 칼로 반분하
여 가지라는 판결에 자식의 고통을 차마 볼수 없어 상대방에게 져 준 생모
에게 도리어 양육권을 돌려주는 것이 솔로몬의 명판결이라면,
시대적 변천에 따라 브레히트의 백묵원(재판)은 전쟁중에 보물을 챙기느
라 버린 자식에 대한 양육권은 법률적 이론이나 생물학적 친자관계보다
그 당사자의 사회인간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브레히드의 희곡은 아츠다크법관에 의하여 생모나 양육권보다 필요성과
유용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함으로서 정의에 의한 판결은 새롭고, 대안적
인 체제의 정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萬古不變으로만 여겨지던 正義의 개념도, 시대의 변화나 특출한 천재의
출현으로 변화하여 실제 정의(正義)에 관한 정의(定義)는 다양합니다.
고전적으로 울피아누스가, "각자에게 제 몫을 주는것"으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산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가 분류되었고
헬무트 폰 코잉에 의하여 보호적 정의의 개념이 추가되었습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실정법에서 규정하는 범위만이 정의라 하였고
또는 성공한 혁명에서 보둣 적나라한 힘(세력)만이 정의라 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솔로몬처럼 현명한 판관의 이야기를 담은 원나라의 <석필이야기>의
번역본을 1944년에 번안한 작품입니다.
브레히트의 가장 시적이며 서사적 요소가 많은 작품으로  6막으로 재구성
하였습니다. 세 가지 이야기, 즉 구성의 이야기, 그루셰의 이야기, 재판관
아츠다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계곡에서 양을 치고 살다가 독일군의 침입으로 이주한 갈린스크 농장 주민
들과 그사이 계곡에 이주하여 개발 계획을 세운 로자 룩셈부르크 농장 주민
들이 독일군이 패퇴한 뒤 계곡의 소유권 다툼을 벌입니다. 소유권은 사회적
관점에서 계곡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쪽으로 넘어가는데 이것은 백묵
원의 재판에서 누가 아이에게 옳은 어머니인가가 사회적 관점에서 판결이
내려지는 것과 상통합니다.

하녀 그루셰 이야기와 몰락한 지성인인 재판관 아츠다크의 이야기는 동시
에 일어나는데 작품의 해설자이며 연출가인 가수에 의해 전개됩니다.
내란이 일어나 총독 아바시빌리가 반도들에 의해 참수당합니다. 총독 부
인은 끝까지 비싼 물건들을 챙기다가 아들 미하엘을 버리고 도주합나다. 

미하엘을 떠맡은 그루셰는 험난한 피난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도중에
아이를 농가에 놓아두고 발길을 돌리기도 하나 결국 아이를 양자로 맞이하
고 아이에게 호적상의 아버지를 만들어주려고 임종 직전의 병자와 형식적
으로 결혼까지 합니다. 어느 날 참전했던 약혼자 지몬이 그루셰를 찾아왔다
가 오해하며 돌아갑니다. 그때 철갑기병들이 법원의 영장을 가져와서 총독
부인이 돌려달라고 요구한 미하엘을 데려갑니다.

5막에서 다시 반란의 시점으로 되돌아갑니다. 주정뱅이 아츠다크는 재판관
으로 선임되어 부자에게 뇌물을 받지만 민중의 편에서 판결을 내립니다.
6막에서 아츠다크는 그루셰와 아이의 상속재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총
독 부인을 놓고 하얀 동그라미 백묵의 재판을 벌입니다. 그는 미하엘을 동
그라미 안에 세워 두 여인에게 잡아당기도록 명하는데 그루셰는 아이의 고
통을 생각하여 손을 놓습니다. 아츠다크는 그루셰를 진정한 어머니로 판결
을 내립니다.

Bertolt Brecht는 1898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닜습니다.
주변은 프롤레타리아적이었지만 가족의 생활방식은, 아버지가 제지공장 사
장이었기 때문에, 부르조아적이었습니다.
1917년 뮌헨 의과대학에 입학한 그는 이미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하
여 비판적 담론을 형성하였고 반부르조아적인 '행동주의" 노선을 걷고 있습
니다. 베를린으로 이주한 그는 1926년 칼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고 당대의
현실문제들과의 대결을 담았고 점점 더 "시대적 작품"의 경향을 띄었습니다.
1937년 나치가 집권하자 독일을 탈출하여 프라그, 빈, 파리 그리고 쏘련을
거쳐서 미국에 피신하였으며, 전쟁이 끝나자 그는 사회주의 동독일로 되돌
아와서 말년을 베를린앙상블에서 실제적 연극작업을 하는데 보냈으며 그의
작업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브레히트의 시 작품으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1492년>등이 있습니다.
그의 본령인 희곡작품에는 <바알 神, 밤의 북소리, 서푼짜리 오페라,
억척엄마와 그 아이들, 갈릴레이의 생애>등이 있습니다.
특히 서푼짜리 오페라는 종래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
연극이론과는 반대로 거리를 두고 낯설게 하여 비판하고 교훈을 주는 그의
서사극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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