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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진 음식과 멋진 모임

鄭宇東 0 2427
맛진 음식과 멋진 모임 

며칠전 딸아이가 마련해준 여행상품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잦은 날씨 변덕때문에 운 좋은 사람이라야 한라산에 오를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아쉽지만 한라산을 곁눈질 해가며, 얼마전 유홍준 교수의
완당평전을 읽으면서 기회가 닿는대로 가보겠다고 마음 먹었던
秋史 金正喜 선생의 謫居址를 찾아갔다. 이곳은 남제주군 대정읍에 있는데
秋史 선생이 제주도로 귀양와서 머문곳으로 탱자나무 가시울타리가 아닌
낮은 돌담친 초가 한 채와 현대식 콘크리트 기념관이 좀 부조화스런 모습을
하고 어우러져 있었다.

익히 알다시피,
秋史 선생은 부마집안에 태어나서 자신도 고관대작을 지내다,
안동김씨와의 세력다툼의 와중에 밀려서 당시로서는 절해고도인
제주도에 위리안치의 유배생활을 9년 동안이나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생은 귀양살이의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淸代 당시의 중국에서까지 명성을 떨친 秋史體를 절차탁마 완성시켰고
일본의 동양철학자 후지쯔까 찌까시가 家寶로 삼고 간직하였던
불후의 명작 歲寒圖등 서화들을 남겨 오늘에 전하고 있다.

각설하고,
秋史(記念)館에 들어가면 2층 전시실에 복사품이긴 해도
선생의 진영과 수적 글씨가 진열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한곳에 못박아 두게 한것은
        大烹豆腐瓜薑菜  (대팽두부과강채)
        高會夫妻兒女孫  (고회부처아녀손)
이란 문귀의 예서체 대련 액자였다.
문외한이라 書卷氣같은 것은 모르나 일말의 文字香같은 것은
맡아지는것 같았다. 대강의 뜻을 옮겨보면,
최대로 맛있는 좋은 음식이란 두부에 오이 생강 채소로 만든 소찬이고
최고로 멋진 좋은 모임이란 부부 자녀 손자가 구족한 가족모임이라는
선생의 인생고백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높은 벼슬을 지내며
세상의 호사를 다 누려보고, 세상의 진미를 다 맛보았을 선생이
귀양살이의 고생을 끝내고 말년에 쓴 말하자면 선생의 백조의 노래에
해당할 말씀이니, 마음에 깊이 새겨 삶의 거울로 삼고 싶을 뿐이다.


ㅡ 20020627 ㅡ 정우동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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