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자료실 > 신요칼럼
신요칼럼
 

판소리 열두 마당

鄭宇東 0 2246
판소리 열두 마당
 

판소리에서는 작품하나를 '한마당'(마당이라 함은 소리ㆍ춤ㆍ놀이 따위를 헤아리는
데에 쓰이는 단위로 요즈음말로 '과장'과 같으며, '한판 논다', '한바탕 논다'에서와
같이 '판' 또는 '바탕'이라고 하기도 합니다)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의 정조, 순조때
는 그 종류가 매우 많았으며, 그 중 12가지를 골라 '판소리 12마당'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소리꾼들에
의해 완성되어 온 것입니다. 현재 전창되고 있는 판소리는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등 5마당이 전해질뿐입니다.

'판소리 12마당'은 옛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표기되어 있는데,
송만재(조선조 순조때의 문인)의 <관우희>에 전하는 12마당을 보면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박타령), 수궁가(토끼타령.별주부가), 적벽가(화용도),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변강쇠타령(가루지기타령.송장가), 장끼타령, 강릉매화타령,
무숙이타령(왈자타령), 가짜신선타령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2마당 가운데서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장끼타령, 옹고집 등은 사설만 전해지고,
무숙이타령, 강릉 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은 사설조차도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오늘날까지 소리가 남아 불리는 것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인데, 이것을 '판소리 다섯 마당’이라고 부릅니다.
소리바닥에서는 판소리 12마당 외에 '숙영낭자전(가짜신선타령 대신 숙영낭자전을
판소리 12마당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이 있으며, 소설 두껍전, 옥단춘전, 괴똥전,
이춘풍전 등도 원래는 판소리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판소리의 의미

판소리는 소리하는 이가 혼자 서서 몸짓을 해 가며 노래와 말로 긴 이야기를 이어가는
우리 전통 음악의 한 갈래이며 여기에는 북반주가 곁들여집니다.
판소리는 순수한 우리말로 '판'과 '소리'의 합성어이다. '판'이란 '일이 벌어지는 자리'를
뜻하는데, 이것을 음악적으로 새긴다면 '사람(관중, 청중)이 모인 자리'라고 할 수 있습
니다. 줄타기를 이르는 '판줄', 풍물에서의 '판굿' 등도 같은 용례입니다.
'소리'는 흔히 쓰이는 '소리 잘한다'라는 표현이나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김매기소리,
상여소리와 같은 말에서 그것이 '노래'와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성 요소

판소리하는 이를 흔히 '가객'이나 '소리꾼'이라 이르며, 북치는 이를 '고수'라 합니다.
판소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소리한다'고 하고, 말하는 것을 '아니리한다',
몸짓을 하는 것을 '발림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수가 북을 치면서 알맞은 대목에서
"얼씨구, 좋다!" 등의 말을 외치는 것을 '추임새한다'고 이릅니다.
명창은 타고난 재주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명창이 되려면 창뿐만 아니라, 아니리와 발림도 잘 해야 합니다. 노래하거나 이야기하
면서 흥이 날때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도 다 발림입니다.
 

사설의 형식과 내용

판소리는 노래로 하는 소리와 말로 하는 아니리가 섞여서 엮어진 극적인 음악입니다.
그런데 그 사설을 보면 등장 인물의 대사뿐만이 아니라 장면의 해설까지 들어 있으니
'서사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판소리는 말로만 엮인 것이 아니고 소리로도 불
리기 때문에 사설은 산문체보다는 운문체에 가깝습니다. 사설을 그대로 적은 소리책
뿐만이 아니라, 사설을 따서 엮은 판소리계 소설도 또한 운문체에 가까운 점은 일반
옛날 소설이 대체로 산문체인 것과 대조가 됩니다.

판소리는 민중이 구경꾼이 되고, 광대가 연희자가 되어 출발했던 것이라 솔직하고도
해학적인 인간관과 미의식이 담긴, 서민들의 생활 이야기로 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점은 판소리계 소설이 아닌 일반 옛날 소설의 내용이 흔히 충신ㆍ효자ㆍ열녀를
제재로 삼고,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기원과 발전

판소리가 언제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마을의 큰 굿 끝에 벌이는
판놀음에서 놀이꾼들이 여러 놀이를 벌이는 동안에 소리 광대가 한 자리 끼어서 소
리도 하고, 재담도 하고, 몸짓도 하며 긴 이야기를 엮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
해가 많습니다.
판소리는 조선 왕조 전기에도 불렸을 것으로 짐작되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판소리 사설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영조 30년
(1754) 만화 유진한이 한시로 적은 만화본 <춘향가>입니다. 이를 볼 때 적어도
숙종 무렵에는 판소리가 틀을 잡게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되는데, 그때의
판소리는 길이도 짧고, 사설이나 음악이 소박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며, 판소리의 예
술적 수준이 높아진 것은 조선 말엽의 일입니다.


유    파

판소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승되어 왔습니다.
전라북도에서 시작되어, 전라남도를 거쳐,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쪽의 운봉ㆍ구례ㆍ순창과 같은 곳에서는 동편제(시조 송흥록)가 많이 불
렸는데, 씩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입니다. 섬진강의 서쪽인 광주ㆍ나주ㆍ보성과 같
은 곳에서는 서편제가 많이 불렸는데, 정교하고 감칠맛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서편제의 한 유파로서 '강산제(시조 박유전)'라는 것이 있습니다.
경기ㆍ충청에서 많이 불리 것으로 '중고제(시조 염계달, 김성옥)'가 있는데
이는 책을 읽는 듯한 '송서제’와 비슷한 점이 많은 소리제로서, 소리의 높낮이가 분명
한 것이 특징입니다.

대체로 판소리의 유파 형성은 19세기 초반인 전기 8명창(박만순ㆍ송우룡ㆍ김세종ㆍ
정춘풍-동편제, 장자백ㆍ이날치ㆍ정창업-서편제, 김정근ㆍ한송학-중고제) 시대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판소리가 명예와 부의 축적을 보증하는 예술이
되면서 광대들은 자신들의 법통을 강조하는 경향이 생겨나는데,
먼저 동편제와 서편제가 대립적으로 존재하였고 중고제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동편제ㆍ서편제ㆍ중고제 등의 개념으로 나뉘는 것은 판소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의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공연 형태

판소리는 1인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00년대 중국의 창희나 일본 신파 연극의 영향을 받은 것 중에 '창극'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극장에서 여러 사람이 배역을 나누어서 연기를 하면서 부르는 형태로
이것을 판소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판소리계에서는 이 창극을 판소리의 '발전'으
로 보지 않고, '변질’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옛날에 판소리는 집안의 큰 잔치에서나 마을의 큰 굿에서나 관아의 잔치 자리에서
흔히 불렸습니다. 판소리가 불리던 판놀음은 보통 큰 마당이나 너른 대청에서 벌어
졌습니다. 먼저 줄꾼이 줄을 타고, 재주꾼이 땅재주를 넘고, 춤꾼들이 춤을 춘 뒤에
끝에 가서 소리꾼이 소리를 했는데, 판소리가 벌어지는 대목은 따로 '소리판'이라고
일렀고, 소리판이 벌어지는 곳을 '소리청'이라고 했습니다.

소리판이 마당이나 들에서 벌어지면 멍석이 깔린 위에 돗자리가 깔리고, 큰 마루에
서 벌어지면 돗자리만이 깔리고, 그 둘레에는 구경꾼들이 삥 둘러앉는데, 한편에는
지체 높은 어른들인 좌상객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가객은 돗자리 위에서 좌상을 바
라보고 서고, 고수는 북을 앞에 놓고 가객을 마주보고 앉는다. 가객은 두루마기와
비슷한 창옷을 입고, 갓을 쓰고, 손에 부채를 들고 서서 소리하되, 판소리 사설의
상황에 따라서 앉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몸짓도 하며, 우스운 말로 구경꾼을 웃기기
도 하고, 슬픈 소리 가락으로 구경꾼을 울리기도 하며 긴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가객의 소리가 무르익으면 구경꾼들도 흥이 나서 '얼시구' 하고 추임새를 합니다.
구경꾼들은 아침부터 날이 저물도록 또는 저녁부터 밤이 새도록 넋을 잃고 소리를
듣는데, 겨울철에는 눈이 내려도 밤새도록 자리를 뜰 줄 몰랐다고 합니다.


장    단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은 크게 나누어
진양, 중몰이, 중중몰이, 잦은몰이, 휘몰이, 엇몰이, 엇중몰이가 있습니다.
이 장단들은 박자, 빠르기, 북치는 법이 서로 다른데, 판소리 사설에 나타나는 한
가하거나 긴박한 상황에 따라 느린 것이나 빠른 것을 가려 써서 소리를 엮어 나갑
니다. 북은 가객의 소리에 따라 치는 부분이 달라집니다. 가객이 부르는 소리의
악절 첫머리에는 채로 오른편 가죽을 세게 치고, 가객이 소리를 밀고 나갈 때에는
채로 북통의 앞을 조금 세게 치고, 가객이 소리를 달고 나갈 때에는 채로 북통의
꼭대기 오른편 모서리를 가만히 굴려 치고, 가객이 소리를 맺을 때에는 채로 북통
의 꼭대기 한가운데를 매우 세게 치고, 가객이 소리를 풀 때에는 왼 손바닥으로 북
의 왼편 가죽을 굴려 칩니다.


소  릿  조

'조'는 가락의 짜임새나 꾸밈새나 모양새에 따라 지어지는 음악적인 특징인데,
우조, 평조, 계면조, 경드름, 설렁제, 추천목 따위의 종류가 있습니다.
서양 음악에서 대체로 장조로 된 음악은 기쁘고 명랑하고 씩씩하고 남성적이지만,
단조로 된 음악은 슬프고 어둡고 부드럽고 여성적인 느낌을 줍니다. 이렇게 장조
로 된 음악과 단조로 된 것이 서로 다른 것처럼, 소리의 이들 조도 특징이나 그것이
자아내는 느낌 따위가 서로 다릅니다.
 
 
고    수

판소리에는 반드시 고수가 있어야 합니다. '일고수 이명창', '숫고수 암명창'이라는
말도 있듯이 판소리에서는 예로부터 고수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고수'는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춰줌과 더불어, 고수나 판소리를 듣는 사람이 흥이 날
때 추임새도 넣습니다. 고수나 판소리를 듣는 사람이 추임새를 잘하면 판소리하는
사람은 더욱 신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수는 '(음악이) 넘치면 덜어주고, 모자라면
채워주는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수는 단순히 박자만 짚어주는게 아니라 판소
리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며, 때로는 소리꾼의 상대역까지도 합니다.
 

득    음

판소리에서 소리의 최고경지에 도달한 것을 '득음(得音)'이라고 합니다.
판소리의 창법은 표현력이 강하고 극적(劇的)인 소리를 내는데는 좋은 창법이지만
반면에 성대와 발성기관에 무리를 주기도 하여 초보자들은 목이 쉬고, 아랫배가 당
기는 등의 신체적인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득음을 하기하기 위해
소리꾼들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오랜 기간 머물면서 '산(山)공부'를 한다는데,
연습과정에서 목이 쉬고 그리고 쉰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그런 후 아물고 또 다시
피가 터져 나오고 하는 그런 과정들을 겪는다고 합니다. 또 목의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인분(人糞)삭인 물까지도 마셨다고 합니다.


단    가

판소리를 부르기 전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를 말하는데,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언제부터 불리어지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판소리의 사설이 긴데 비해, 짧다는 뜻으로 '단가(短歌)'라 불렀으며,
옛날에는 '허두가'라고도 했습니다. 조선 중기에는 시조제로 부르는 노래 형식의
하나를 단가라고 하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가객이 판소리를 부르기에 앞서서 부
르는 짧은 노래만 그렇게 부릅니다.
 
단가는 소리판에서 두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창자는 길고 힘든 판소리를 하기 전에 단가를 불러 목을 푸는 한편 성대의 상태를
시험하고 음정의 정도를 결정합니다. 한편 청중을 환상의 세계 곧 판소리적 시.공
간으로 끌어들여 즐거운 기분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소리판에 참여토록
하는 몫도 합니다. 사설은 주로 강산풍경이나 역대 성군(聖君)이나 영웅호걸(英雄
豪傑), 철인(哲人), 문장재사(文章才士), 절세미인을 그린 고사(古事)를 노래한
것들이 많으며, 음악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보통 장단에 대체로 부르기 쉬운
가락으로 짜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단가는 거의 중몰이 장단으로 되어 있지만, 드물게는 <사창화
류>와 같은 엇중몰이 장단이나, <고고천변>과 같은 중중몰이 장단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단가의 가락은 화평한 느낌이 드는 평-우조로 되는 것이 원칙이나,
요즈음 들어 계면조로 된 것이 더러 나왔고, 송 만갑은 평-우조에 경드름을 곁들여
부르기도 했습니다.
단가를 부르는데는 보통 속도로 2~3분에서 5분 정도까지 걸립니다.
단가는 40~50여곡 정도가 있는데, 현재 전창되고 있는 것은 20여곡정도라고 합니다.
단가는 판소리꾼이 아닌 일반 풍류객에 의해서도 불리어졌으며, 또 판소리와 마찬가
지로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 다르게 불리어졌습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