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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적뒤적 한국조선의 역사와 문화

鄭宇東 0 1814
뒤적뒤적 한국조선의 역사와 문화
내가 지금까지 아는 어지러운 역사지식을 참고서적을 뒤적거려 되돌아 보며
우리 민족과 문화적으로 교류가 많았고 역사상으로 큰 영향을 주고 받았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가까운 인접국가들의 역사를 간추려 정리
해 보는 글로 " 뒤적뒤적 역사와 문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그 첫번째로 의당히 우리나라 배달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 보려합니다.

 * 단군신화와 고조선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의하면 하늘의 한웅과 땅의 웅녀가 낳은 단군이 나라를
세운 때는 중국의 요제시대로 이때가 단군기원 원년 무진 BC 2333년입니다.
이로부터 47대를 거쳐 고열가 단군때 중국계의 기자조선에 망하였습니다.
재야사학자들이 금과옥조로 믿고 있는 한단고기에 의하면 단군조선 이전에도
神市조선이 18대 한웅에 걸쳐 1,565년의 역사가, 또 그 이전에도 한국시대에 한님
7대에 3,301년의 역사 시대가 더 있었으니 9000년에 달하는 유구한 역사입니다.

* 부여 예맥 옥저 숙신 (기원전 3세기~기원후 5세기)
* 기자조선 위만조선 (은말주초~BC 108년)
*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시대 (기원전 7세기경~ ? )
*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에 가야를 더하여 사국시대(BC 1세기~7 세기초)
* 통일신라와 대진국 발해를 병치하여 남북국시대(9세기~10세기초)
* 후백제 후고구려 통일신라의 후삼국시대 (10세기~11세기)
* 왕씨 고려시대 (1대 태조 918년~33대 창왕 1389년)
* 이씨 조선시대 (1대 태조 1392년~22대 순종 1910년)


* 역사와 문화와 인물

우리들의 조상은 추운 북방을 뒤로하고 따뜻한 남방을 향하여 앞으로 옮겨 오다
살기 좋은 자리에 정착한 곳이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무궁화꽃밭 이곳입니다.
우리나라의 시조 단군은 널리 인간을 덕되게 하는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개국하고
일찌기 중국사서에서도 우리선인들은 가무를 좋아하고 풍속이 순후하고 예의가
발라서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였으며 공자마저도 동쪽 구이국에가서 살고 싶다한
그런 나라였습니다.

훌륭한 임금 세종대왕은 지극한 위민정신으로 백성이 쓰기에 편한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그 후손들은 세계에 유례없는 문맹률제로를 자랑하고 다른 나라에
한글문화를 수출하기에 이르렀으며 이제 정보화시대를 맞아 컴퓨터 적응력이
뛰어나 온 세계에 한글 중흥의 시대가 반드시 오리라 기대합니다.

국난의 때에도 국보는 만들어 지고, 위인도 탄생합니다.
원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하여 부처님께 비는 팔만대장경이 판각되었고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충무공 이순신은 세계 해전사상 유례없는 전승을 거두어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미국의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영국의 넬슨(제독)보다는
우리의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더 높이 평가한다고 들었습니다.

* 사륙신 논쟁
이전에는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를 사륙신이라 했는데
금릉김씨인 김재규 중장정보부장 시절에 유응부를 빼고 (금릉김씨) 김문기를
포함시켰습니다. 이리하여 지금 사륙신묘에는 김문기의 허묘까지 사칠신이 묻혀
있고 이러한 혼란은 자의적으로 역사까지 바꾸려한 권력기관의 오만으로 비판을
받아 마땅하며 국사위원회의 바른 결정과 교통정리가 필요합니다.

* 사대교린주의
강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강대국 중국에 사대하고 이웃 일본에 친하게 교류하는
전통적 외교정책이었고 유일한 생존책이었습니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사대주의자의 괴수라고 큰 지탄을 받고 욕을 먹지만
정치현실과 달리 그의 역사서술은 오히려 자주자립적이고 민족주의적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왕들을 본기에 편입하여 황제라 칭하였고 독립연호를 썼습니다.
 
* 식민사관과 민족사관
일제가 통치하기 위하여 우리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폄하하고 역사해석이나
서술에 있어서 일본에 유리하게 처리하는 사례에 대하여 단재 신채호같은
민족사학자들은 항의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에 대한 사대모화사상과 열등민족
의 발전정체성과 광개토대왕비문의 견강부회적 해석이나 임나일본부설이 그렇고
또 아래에 말한 당파와 당쟁에 관한 비난과 흑색선전이 그렇습니다.
 
* 당파와 당쟁
집단이 있는 곳에 계파가 있고 세력의 다툼이 있는것은 당연한 사리입니다.
더구나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세력에 있어서는 계파와 경쟁이 본질적입니다.
우리의 사색당파와 세력다툼은 부도덕한 인종말자의 패덕행위로 일제의 식민정책
에 의하여 왜곡 날조되고 과장되었다는 비판을 받아드려 검토해 봐야 할것입니다.

* 실증주의 역사관
역사서술을 고고학적 유물의 과학적 연대측정이나 역사문헌에 의거하다 보니
고조선의 역사는 아예 날려버렸고 기원전 1세기경에 일어난 신라 백제 고구려
의 건국시조와 연대는 교과서에서 증발해 없어지고 신라를 예로 들면 뜬금없이
기원후 4세기이후 나물왕부터 역사서술이 시작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 반도국의 지정학
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진출발판이고 각축장인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관론을 지양하고 이제는 전성기의 반도국 그리스가 주변세력의 사령탑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우리도 자국의 실력기르기에 힘 써야 합니다.

* 역사의 가정법
프랑스의 파스칼은 그의 빵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었더라도
세계의 역사는 지금과는 아주 다르게 전개되어졌으리라는 희망을 말한바 있고
또 함석헌선생이 말하였던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라
졌겠지 하는 따위의 가정으로 역사의 현장에 가정법은 결단코 있을수 없습니다. 
다만 서애 유성룡선생이 저술한 전징후비(前懲後毖)하는 다짐은 큰 교훈입니다.
이건 문맥이 안통하는 엉뚱하고 완전한 사족이지만
내가 함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으며 역사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을
배운 " 잊혀지지 않는 초상은 마음속에 그려진 초상화이 "라고 하신 말씀을 오래
두고 명심하고 있습니다. 교훈도 인정도 마음속에라야 영생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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