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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손과 발레리나의 발

鄭宇東 0 2701
피아니스트의 손과 발레리나의 발

 
나는 건반위에서 날렵하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손의 밉상과 팔의 알통에
절망합니다. 때로는 격정적인 탄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길대로 긴 섬섬옥수
의 부드러운 텃치로 저 감미로운 음악을 자아내는 (내가 그려 오던) 그런 피아
니스트의 손과 팔뚝으로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무대위에서 우아하게 춤추는 발레리나의 발에, 보기전에는 입이라도
맞추어 찬탄해야 할것 같았던 저 볼성사나운 발꼴과 절벽처럼 밋밋한 가슴이
애처럽습니다. 분홍빛 비단으로 감싼 포인트슈즈안에 감추어진 사정없이 갈라
지고 자르듯이 각을 세운 상처뿐인 영광이라 할 수 밖에 없는 발이 말입니다.

발레리나의 제1과는 발끝을 꼿꼿이 세우고 서는 까치발서기(sur les pointes)
입니다. 발레의 모든 테크닉은 이것에서 출발하여 앙 드오르(en dehors)를
거쳐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피루에트(pirouette)나 푸에테(fouette) 등의
각종 회전동작은 발끝으로 서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런 수련을 거쳐야 하는 발레리나나 무용수의 발은 울퉁불퉁 못 생겼습니다.
간혹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에서 발레리나의 발을 아름답다고 예찬하는 것은
실상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분홍신에 대한 환상일
뿐 그 속에 감추어진 상처투성이 발의 의미를 모르기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백조가 물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것만 보고 우아하게 움직인다고
하지만 물밑으로는 물갈퀴를 쉬임없이 죽으라고 휘졌고 있음을 간과하듯이
말입니다. 남자 무용수 발레리노의 경우는 더 어렵습니다. 발레리나에게는
그나마 발끝 부분을 딱딱하게 보형한 토슈즈의 도움을 받지만 남자 무용수는
연습과 실연에 말랑말랑한 발레슈즈만으로 전체중을 감당해내야 했습니다.

또 춤추는 남여 무용수들에게는 신체의 일부가 거추장스러운 핸디캡입니다.
발레리나에게 가슴은 춤추는데 훼방꾼이라 투명한 비닐로 한사코 감싸야 했고
발레리노에게는 그의 남성성의 상징물이 방해요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댄스벨트가 고안되어 사용되기 전, 니진스키는 지젤공연에 입고 나온 하의가
"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를 나무 확연하게 드러낸다 " 는 웃지 못할 이유때문에
마린스키극장에서 해고되고만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레리나의 가슴은 절벽이고 발레리노는 거세의 길을 걷습니다.
춤추는 무용수는 하늘의 천사이고 숲속의 요정이고 백조일뿐이어야 합니다.
무용수들의 인간적인 미적 희구는 금물입니다. 춤의 신에 바쳐진 희생입니다.
여사제가 신에 헌신하듯 무용수도 그가 미의 축제에 사제로 참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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