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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鄭宇東 0 1787
역사의 역사
 
 
여러번 생각해 보고 정한 이 글의 제목이 어색하고 좀 이상합니다.
대학에 들어가 훗날 문교부장관을 지낸 문홍주교수님의 헌법학 강의를 듣는데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권>이란 동어반복의 수렁에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하였습니다. 같은 글자로 쓰고 같은 소리 내지만 앞의 기본권과 뒤의 기본권
은 그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다르고 따라서 그 함의와 뜻이 다른데서 오는 혼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제목의 앞의 역사를 역사학으로 규정하면 혼동할
것은 하나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역사학의 역사를 간략히 써 봅니다.

우리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범주속에서 사는 역사적 존재입니다.
인간의 삶과 생활이, 사고와 행동이, 사상과 학문이 특정시대의 어떤 한 곳에서
이루워진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에 다 역사적 기록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어떤 학문을 배우면서 그 학문의 역사를 아는것은 그 학문의 정체성
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발전형태를 가늠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영어의 역사에 해당하는 단어인 “history”는 고대 그리스어의 ἱστορiα 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다”·“보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원시 인도유럽어의 wid-tor
에서 나온 말로, "알다", "보다"를 뜻하는 weid-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어원은
영어의 wit, wise, wisdom, vision과 梵語의 베다(veda) 등에도 남아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 historia는 원래 현자(賢者), 증언자, 혹은 판관을 뜻하는ἵστωρ 에
서 유래했으며 “조사와 탐문을 통해 얻은 지식”이라는 뜻으로 쓰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Περi Τa Ζωα Ιστορiα 라틴語: Historia Animalium)
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자어 역사(歷史)는 근대 이후의 'history'에 대한 번역이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역사를 의미하는 '史(사)'는 원래는
'기록하는 사람'의 의미로, 사마천의 <史記 사기>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자신의 발품을 팔아 발로 역사를 썼고
동양에서는 역사학의 시조 사마천은 손으로 수고로히 방대한 "사기"를 저술하였으며
이슬람권에서는 이븐 할둔이 역사학서설로 제3세계의 역사이론을 전개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114년에 간행된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최고로 치는 역사서입니다.
비판철학자 칸트는 고향밖을 안 나가고도 머리로 세계지리를 잘 강의했다 합니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에 가보지 않고 일본학의 고전 "국화와 칼"을 저술하였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322~384 希)
      온갖 학문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 그가 현재의 역사라는 History
      의 어원이 된 그리스어 히스토리아(ἱστορiα)를 처음 역사학에 쓰기 시작하였으
      며 유물사관의 단초를 최초로 열었습니다.
* 플루타르코스(42~120 BC 希)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을 비교고찰하여 도덕적 일화로 가득한 그 유명한
      "대비열전-플루타크영웅전"을 지었습니다. 이 책에서 읽은
      귀족미망인으로 잘 키운 두 아들이 보물이라고 말하는 코르넬리아의 일화와
      大카토의 인물평에서 " 카토가 로마에서 득 본것보다 로마가 카토에게서 득 본
      것이 더 크다"고 한 그런 큰 공덕을 부러워 한 적이 나에게도 한때 있었습니다.
* 토마스 아퀴너스 (1225?~1274 伊)
      중세의 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받아들여 "신의 나라"에서
      유신사관을 보였으며 주저에 "신학대전"이 있습니다.
* 이븐 할둔(1332~1406  튀니지아) 
      이슬람권 제3세계 역사의 비조로 "역사학 서설"을 지었습니다. 
* 헤 - 겔(1770~1830 獨) 
      역사를 세계정신의 시대적 변증법적 발전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주관적 정신이 객관적 정신으로 다시 절대적 정신으로 발전하며 이 최종적 단계
      에서 절대적 정신은 예술 - 종교 - 철학으로 자기를 실현한다 하였습니다.
* 마르크스(1818~1883 獨) 
      유물변증적 결정사관에 입각한 계급투쟁으로 역사의 진보를 설명하였습니다.
      자체내의 모순으로 자본주의가 쇠락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집권으로 이상사회의
      도래를 예언했으나 공산혁명으로 큰 희생을 치루었는데도 꿈은 무산되었습니다.
* 슈펭글러 !880~1936 獨)
      역사를 생명 있는 유기체로 보고 흥망이 순환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서구의 몰락"을 저술하여 나태타락한 인류에게 당시 큰 경종을 울렸습니다.
* 토인비(1889~1975 英)
      역사의 연구에서 도전과 응전의 순환사관을 보였습니다.
* 크로체(1866~1825 伊)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며 역사가의 사유를 통해 현재에서 재구성된
      사실이 역사라고 보는 입장이며 역사는 오직 현대사만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 E. H. 카 (1892~1982 英)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규정하고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현재의 가치에 비추어 의미있는 역사가 진정으로
      의미있는 역사라고 하면서 역사가의 주관을 매우 강조하고 역사가의 주관적인
      사고없이는 불완전한 과거의 사실을 완벽하게 재구성해 낼수 없다 하였습니다.
* 함석헌(1901~1989)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신의 은혜로운 섭리를 역사의 동인이라 하였습니다.
      역사에 있어서 가정법은 소용없는 짓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그래도 아쉬운 점은
      반도국의 비애를 탓하지 말고 반도국 그리스처럼 힘을 키워 사방을 호령하는
      사령탑의 당당한 역사를 가꾸어야 하며
      삼국의 통일을 고구려가 수행하였다면 우리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란 가정에     
      공감과 감동과 더불어 역사를 읽는 새로운 안목을 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오래 잊혀지지 않는 "영원히 잊히지 않는 초상화는 마음속에
      그린 초상화이다" 란 말을 읽고는 이제껏 가슴에 담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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