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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의 전설

鄭宇東 0 2227
요리사의 전설
 
* 아피키우스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요리를 집대성한 요리책의 이름이며
라틴어로 저술된 것입니다. 아피키우스는 사실 부엌에서 쓰던 단어로
가장 오래된 저서인《데 레 코퀴아리나》로 전체 제목이 지어졌으며
아피키우스라는 말은 음식에 대한 사랑을 가리킵니다. 이 책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미식가 마르퀴스 가비우스 아피키우스였으며
이름이 공교롭게도 같은 바람에 이 책의 저자로 오인받기도 합니다.
서양에서 현재 사본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요리책을 저술한 사람은
1세기경 로마에서 가비우스 아피키우스 (Marcus Gavius Apicius)가 저
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오로지 미식을 추구하여 산 사람이었습
니다. 음식에 관한 지식을 활용하여 미식을 즐기다가 미식에 대한 아이
디어가 고갈되자 ㅡ 이때쯤은 당연히 그의 재산도 소진되었지만ㅡ
흔히 건축가들이 기념비적인 훌륭한 건축물을 완성하고는 신의 질투와
창조적 아이디어의 고갈로 그랬듯이, 자살하고 말았다 합니다.

 *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55~ 1826)
프랑스의 판사, 미식가, 저술가.
고향 벨리에서 변호사가 되고 1789년 국민회의에 진출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서 법원장과 시장이 되었습니다. 독신으로 지내며 집으로 초대
하여 요리하기를 즐겼습니다. 역사 고고학 미식 레스토랑에 관한 글을
썼는데 그중에 " 미식예찬"(원제 미식의 생리학)은 이방면의 고전중의
고전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 인류에게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우주
에서 새로운 천체를 발견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하였고
국민회의에서는 국민들이 다 배불리, 더 좋은 음식을 먹을수 있도록 법
률을 제정하기를 촉구한  철학자 같은 법률가였고 철학자 같은 요리사
였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이상국가에서 좋은 나라는 철학자가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지만 요리사도 철학자가 되니 즐겁습니다. 이런 저런
분야의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철학자가 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이상적
사회라 하겠습니다.

 *프랑소와 바텔(Francois Vatel (1631~1671)
요리사 바텔은 샹티이 지방에 대저택을 가진 대장군 콩데공을 섬기다가 
이곳을 방문한 루이 14세를 맞은  대연회에서 사흘째 점심에 나갈 예정
이던 생선이 도착하지 않자 초조감과 책임감으로 고지식하게 자살하
였습니다. 그러나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소임에 충직하고 양심이 정직
한 요리사를 나는 더 발견하지 못합니다.

 * 마리 앙트완 카렘(Marie Antoine Careme 1783~1833)
프랑스 요리왕국의 공로자
카렘은 나폴레옹 1세가 프랑스 제국을 건설해 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프
랑스를 요리왕국으로 만든 공로자입니다. 그는 명문귀족들과 러시아와
영국왕실의 부름을 받고 전설적인 대연회를 지휘하기도 하였으며, 나중
에는 탈레랑이 빈회의에서 미식외교를 펼칠때 국제회의의 무대 뒤에서
멋지게 솜씨를 발휘하였습니다. 흔히"제왕을 위한 쉐프, 쉐프의 제왕"이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최초의 스타 쉐프입니다. 19세기
<요리의 예술>등의 저자로서도  유명합니다.

 * 오귀스트 에스코피에(Gorge Auguste Escoffier 1846~1935)
요리의 황제. 호텔왕
독일 황제 빌헤름 2세가 "나는 독일의 황제지만 그대는 요리의 황제" 라
며 극찬한 인물입니다. 세자르 리츠와 세계의 특급호텔들을 열기도하고
경영하였습니다. 또 우리의 위대한 요리사 에스코피에는 호텔주방 뒷문
으로 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숟가락을 안대고 남은 음식에 신경을
쓴 정이 많은 인정가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아름다운 사람
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평범한 시민으로서는 최초로 프랑스문화
훈장 레지용 도뇌르를 받았습니다.

 * 퀴르농스키(Curnonsky, 本 Maurice Edmond Saiilland 1872~1956) 

퀴르농스키는 미슐랭 자동차 여행의 창시자이며, 프랑스의 타이어회사
미슐랭(영어식으로 미쉘린)에서 운전자 미식가들의 성서라 불리워지는
미슐랭가이드지를 발행하는데 이 잡지는 운전자를 위하여 레스토랑의
등급을 안내하기 위한 숙식안내서로 만들어진 무가지였습니다. 여행객
의 편의를 위하여 레스트랑의 등급을 매긴 것이 일반인들의 호평을 얻어
유가지로 발행되며 근래에는 양분되어 레스트랑등 숙식정보는 레드가이
드에 실리고 자연풍물등 관광정보는그린가이드에 실립니다. 이 미슐랭
평가는 포크 하나에서 시작하여 포크 다섯을 넘으면 그 위에 별 하나에서
둘 셋까지 부여하는 식입니다. 이것이 미슐랭 별삼점 최고의 평점입니다.
미슐랭의 이 평가는 레스토랑과 쉐프의 최고의 명예이며 더없이 큰 영광
입니다. 이런 업소는 명소가 되어 손님이 많아서 줄을 서 기다리는 인기
있는 곳이 됩니다.

 * 피에르 화이트(Marco Pierre White(ㅡ)
그러나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같은 쉐프는
"이제껏 나보다 음식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에게 평가 받았다.
나는 미슐랭점을 너무 맹신했고 스스로를 홀대했다." 하면서 미슐랭
별점을 반납하고 그만의 레서피와 자부심으로 그만의 가스트로드롬
을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남의 평판을 물리치고 자신의 철
학과 자신의 실력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무관의 제왕들이 있습니다.
장 뽈 싸르뜨르가 노벨상의 정치적 편향성에 항의해 노벨문학상 수
상을 거부한 것도 이러한 가슴을 화악 뚫어주는 기개의 하나입니다.

 * 쉐프 댄 바버
재벌가 록펠러의 사유지를 기부받아 농사연구소와 레스토랑을 운영
하는 쉐프 댄 바버의 블루 힐에도 가서 맛보고 싶습니다. 이곳은 겉
멋으로 밍크 코트를 걸친 채식주의자 여성들이 이곳의 채소를 먹고는
밍크코트를 벗어 던지고 진정한 채식주의자가 되어 문을 나서는 기적
이 끊이지 않는다 합니다.

 * 기다오오지 로산진(北大路 魯山人 1883~1956)
본이름은 기다오오지 후사지로 1883년에 교도의 기다오오지町에서
났습니다. 35세에 다시 기타오오지 본가문을 상속하면서 로산진으
로 개명하였습니다. 로산진은 동양 변방의 한 향토요리인 일본요리
를 세계적인 최고수준으로 끌어 올린 사람입니다. 그가 도예에 일찍
입문한 이래 그 밖에도 그림 서예 전각 칠기 등 그가 도전한 분야에
선 "위대한 아마튜어" 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는 총평하여
천재라고 밖에 말할 도리가 없습니다.

39세에 대아당 미술관 2층에 회원제 식당 "미식구락부"를 개설하였고
42세에 도쿄 아카사카에 회원제 요리요정 호시가오카샤료(星岡茶寮)
를 열어 그 주방장이 되고 도자기 서예 전각등 자기 예술의 전람회를
가졌습니다. 특히 그는 요리를 그릇으로 살려내었고, 그는 그릇을 요
리를 담는 기모노라 하였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교토의 교외 깊은 산
골짜기를 흐르는 화지천의 은어를 트럭으로 운송하여 또 특별우편열
차편으로 도쿄로 이틀만에 도착시켜 요리하는 것은 가히 전설적이라
하여 좋을 것입니다. 운송하는 동안에도 동승인으로 하여금 물을 바
가지로 퍼서 뿌리고 나고야등 큰 정류역에서는 신선한 물을 보충하게
하여 산지의 재료와 같은 신선도를 유지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맛을 살려내는 것을 요리의 요체라고
주장하는 그의 요리철학은 " 無作의 作,  無味의 味 " 라는 말에 잘 표
현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에게는 가공과 억지가 없는 작업과 다
양한 맛 창출의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었기에 마침내 일본 정상의
요리인이 될수 있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아서 비정함과 차가움을 자양분
으로 자랐지만 그의 고귀한 천품은 예술에 눈을 떠 용암처럼 끓고,
뜨겁기만한 불덩어리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다방면에 정통한
위대한 아마튜어였습니다.

 *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우리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나중에 독일어역 성경을 완성하였고
신학교수시절에는 그의 집에 어려운 사람 특히 연구원학생들을 돌보아
주며 살게 하였습니다. 그는 종종 밥을 먹고 나서는 트림을 하거나 방귀
를 뀌어서라도 음식을 마련해 준 주인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고 농담을
하곤하였습니다. 일본에는 음식접대에 대한 인사말로 "고찌소사마(御
馳走樣)데 이다시마스"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ㅡ 음식을 만드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수고해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ㅡ
인데 루터는 결국 이러한 말을 고마운 인사할줄 모르는 젊은이들로부
터 인사받고 싶어 한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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