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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게스의 반지

鄭宇東 0 1865
기게스의 반지
 
 
옛날에 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에게 딸린 기게스라는 목동이 양을 치다가 천둥과
지진을 만나 지하굴로 피신을 갔다가 거인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채 손가락에
아름다운 반지를  낀채 죽어 있었습니다. 반지를 빼어 자신이 끼고 목동들의 모임
에서 반지의 흠집을 가릴려고 조금 돌려서 끼니 동료들이 그 목동이 없어졌다고
이상히 여기는 것을 보고 반지를 돌려 시험해 보니 자신이 투명해져서 보였다 안
보였다하는 조화를 부렸습니다.

목동 기게스가 이 신기한 보물을 왕에게 자랑해 보이니 큰 재능을 가진 그를
신하로 삼아 측근에 두고 지내다가 절세미인인 왕비를 자랑할려고 옷을 갈아 입
을때 나신을 보도록 유도하였는데 이를 안 왕비가 왕이외에는 아무도 볼수 없는
자기의 알몸을 지켜주지 못한 왕과 분수를 모르는 신하에 대한 분노로 왕을 죽이
고 왕이 되든지 안 그러면 죽음을 당하든지 택일하기를 강요받고는 왕을 죽이고
왕비와 결혼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그 왕국을 다스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데 경륜도 정견도 없는 목동이 행운의
반지를 주워 나쁜 짓을 하여도 투명인간이 되는 방법으로 비난도 처벌도 받지 않
고 오히려 남의 공을 빼앗아 공명을 얻는 그런 파렴치한 사기꾼을 경계한 대목입
니다. 플라톤은 이 기게스의 반지를 익명성에 숨어 처벌받지 않고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은밀한 자유(EXOUSIA)" 의 상징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옛날의 신화나 전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의 우리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을 자의적으로 누리고
또 집권 세력은 권력의 반지를 끼고 철옹벽으로 비리를 숨긴채 정치를 농단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반지의 주인이
정의를 의도한다면 국민들이 행복해질테지만 선인은 드물고
사리를 의도한다면 국민들이 불행해지지만 악인들만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게스의 반지는 다행히도 애시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사 있다하더라도 효능을 무효시키거나 악한 자에게서 탈취하여
선한 누구에게 주어서 정의의 제단이 밝고 풍요롭기를 빌어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한 우매한 칸다울레스왕의 치기어린 욕심으로 인해
서 한 왕조가 바뀌는 역사적 대란사실을 증언하면서 위정자의 총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곁가지 이야기로 이 어리석어서 오쟁이 진 칸다울레스왕의 훔쳐보기사
건에서 캔덜리즘(candaulism : 노출관음증) 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고 합니다.

한동안 독서계와 영화계를 풍미한 반지의 제왕도 
원래는 이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에서 발원되었다고 하는데 어린이들에게는 몰라도
우리 연령대쯤에는 반지의 제왕보다도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가 더 재미있습니다.
이런 투명반지와 투구의 이야기는 그리스의 신화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저승의 신
하데스가 쓰는 "퀴네에"투구로서 이를 쓰고 있기 때문에 하데스를 볼 수 없으며
또 니벨룽겐의 노래에 나오는 반지와 함께 지그프리트에게 주어진 쓰기만 하면
투명하여 보이지 않는 투구가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의와
성배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중세의 기사들의 연금술적 기적이야기는 현대사회에서
도 그치지 않고 오늘날도 그대로 추구되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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