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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잇큐(一休) 스님

鄭宇東 0 2440
일본의 잇큐(一休) 스님

 
잇큐(一休) 스님은 무로마치(室町) 시대의 선승이었으며,
이름은 소준(宗純), 호는 교오운(狂雲)이라고 했고, 교토에서 태어났습니다.
1474년에 칙명을 받고 일시적으로 시바노(柴野)의 다이토쿠지(大德寺) 절의 주직이
된 적이 있었지만, 그 이외는 대부분 방랑 생활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스님은 세상의
명성이나 이욕에는 관심 없이 한결같이 선의 보급에 노력한 도인입니다.

그의 일화는 화두선의 깊은 경지를 극명히 보여 줍니다. 
하루는 동자승과 함께 음식점 앞을 지나다 노랑노랑 알맞게 구워지며 풍기는 맛있는
냄새를 맡고 맛있겠다 하였다가 동자승이 스님이 그런 말을 해도 되느냐고 공박받고
나는 다 잊었는데 아직도 너는 비린내 나는 그 생선을 가지고 다니느냐  물었습니다.
또 한번은 동료스님과 냇가에 이르렀다가 갑자기 불어난 개울물때문에 발만 구르고
있는 아낙네를 품에 안고 건네다 주었습니다. 동료는 당장 묻고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가 여관에 닿아 불문에 들어 온 스님이 여인을 안아도 되느냐고 힐난하였습니
다. 스님은 자기는 개울만 건네 주고 바로 내려 놓았는데 당신은 어찌 잠자리에까지
안고와 그리 집착하느냐고 되물어 한 수 가르쳤드랍니다.

그가 어릴적에도 총명하였다는 일화에 이런것이 있습니다.
그가 동자승이었을때 어느날 저녁 친구들이 의논하러 왔습니다.
절의 큰스님에게 바둑을 두러 놀러오는 관리가 있었는데 오기만하면 시중을 드느라
잠을 못자니 어떻게 해야 좋을까하고 방도를 찾아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절로 들어오는 문기둥에다 가죽옷을 입은 사람은 들어오지 못한다고 방을
써 붙혔는데도 들어와 뻔뻔스레 앉았는 걸 보고 글도 읽을 줄 모르느냐 물으니
ㅡ 가죽으로 만든 법고도 있는데 왜 나만 두고 그러느냐 ㅡ 고 반박하니
잇큐동자승이 ㅡ 그래서 법고는 매달려서 북채로 둥둥 얻어 맞고 있습니다 ㅡ
면서 빗자루로 치며 쓸어내니 그 총명함에 감탄하여 쓸린듯 자기발로 나갔습니다.

또 한번은 잇큐가 동자승으로 큰스님을 모시고 있었을때
잘못하여 큰 스님이 아끼는 찻잔을 그만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얼른 깨진 찻잔을 수습하여 등판 뒤로 가져가 숨기고는 큰 스님께 生老病死
의 四苦를 여쭈었습니다.
"사람은 나면 반드시 죽는다. 사는 과정에서 늙고 병들어 결국에는 죽고 만다.
사물도 마찬가지로 생겨나면 성쇠를 거쳐서 끝내는 또 반드시 멸실되고 만다."
는 큰 스님의 말씀을 듣고는 저으기 안심하는 표정으로 깨어진 찬잔을 보이면서
" 바야흐로 이것이 사멸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니 큰 스님은 그의 재치가 기특
하여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에는 새해 첫날에
잇큐스님이 독실한 신도의 집에 간다고 하였더니 그집에서는 큰스님이 온다고
가족들과 온 집안을 청소하고 스님 맞을 채비를 정성스레 하였습니다. 그러나 잇큐
화상을 맞이한 그 신도는 스님을 보자마자 그만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습니다.
잇큐화상은 지팡이 끝에 해골을 하나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큰스님, 오늘같이 좋은 날 망측스럽게 어찌 해골을 가지고 찾아오셨습니까?”
그러자 잇큐화상은 오히려 근엄하게 말했습니다.
“오늘이 무엇이 좋은 날이냐? 설이 자꾸 지나가면 마침내 모두 해골이 될 터인데
죽는 것이 그렇게도 좋으냐?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면 ‘살아가는 재미가 어떠하
냐?’하고 묻는데 그러나 따져보면 우리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순간
부터 죽어 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재미’란 ‘죽어가는 재미’에 불과하다. 이를 생각
하면 새해를 맞이했다는 것이 오히려 두려운 일이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신도에게 스님은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해가 바뀌어 해골이 눈앞이니 어찌 급하지 않은가? 복을 적게 지으면 지옥
보를 받을 것이요. 할 일을 게을리 하면 성취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
니 무슨 일을 하든 상근정진(常勤精進)해야 할 것이니라.”
스님의 이 말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는 죽기를 시작하고 끝내는 죽어 이 해골이
되는데, 더 극적으로 말하면 해골이 되려고 사는 것인데 이런 삶의 실상을 극명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조곤 조곤히 일러 준 것이라고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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