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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칼럼
 

바이블에서 주운 이삭

鄭宇東 0 1534
바이블에서 주운 이삭 

 
성경에서 가장 힘있는 문학을 발견합니다.
조물주는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말 한 마디로 세상만물 우주를 만들고 주관합니다.
이보다 더 강력하고 에네르기쉬한 언어는 아무데서도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 정치한 영혼과 넋얼이 깃든 언어는 그때 이후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하늘아래 새것이 없나니
오늘날의 새것도 발견 발명도 옛것의 되살림이고 변형이고 이것 저것의 조합입니다.
경계에 경계를 더 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 하여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따 와서
말하고 적은 것이 우리의 일상적 대화요 금과옥조로 읽고 있는 문학작품입니다.
그래서 공자님은 많은 말을 하고 스스로 모범을 보인 행동거지를 제자들이 보고 듣
고 그 언행록을 지었으나 공자는 늘 술이부작(述而不作)하여 설명은 하나 아무것도
새로 창작하지 아니한다는 태도로 일관 하였습니다.

천하범사에 때가 있나니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싸울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으며
나아갈 때가 있고 물러날 때가 있으며, 만날 때가 있고 헤어질 때가 .......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기의 판단으로 스스로 물러나면 처신을 잘 한다고 하였습니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세상의 권세부귀영화를 다 누려본 지혜로운 솔로몬왕의 고백이라 믿을만 할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선생도 벼슬 살며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귀양살이에서 돌아 온 말년에
大烹豆腐瓜薑菜 大會夫婦兒女孫 이라하는 교훈액자를 써 남겨 주었습니다.
고량진미보다 맛있는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에 나물을 차린 소찬이요
좋은 연회모임은 부부가 아들 딸 손자 며누리를 다 모은 가족잔치라 하였습니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된 자가 나중 됩니다.
군대에선 뒤로 돌아하는 구호 한번으로 선후고저가 뒤바뀝니다.
우리 사회생활에서도 급진적 혁명은 사회구조와 위계질서를 철저하게 변화시킵
니다.

남의 윗 자리에 앉고자 하는 자는 아래로 밀리고 남보다 낮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
하는 겸손한 사람이 마침내 높은 윗 자리로 천거되어 앉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씼어주는 의식은 겸손의 본보기요 이해와 사랑의 극치라
하겠습니다. 영어에서 UNDERSTAND 는 남의 밑에 서서 섬기고 일하는 것이 이해요
사랑인 것을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슴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부자가 겸손하기 어렵기보다 가난한 사람이 아부아첨 안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가난하더라도 손 비비고 무릅 꿉고 허리 숙이지 않고 당당히 처신하고 싶습니다.

무엇이든 지성으로 구하면 얻고, 자꾸 두드리면 문은 열립니다.
88년 서울올림픽에 온 마술사 데이비드 커퍼필드가 전 지구인의 절실한 염력으로
세계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설파하는 것을 보고 학자나 지성인만 훌륭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고 흥행인 마술사에도 위인은 있을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열화같은 염원과 끊이지 않는 물방울같은 노력이 단단한 돌을 끝
내는 뚫어내고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을 믿습니다.

남에게 대접 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 바이블의 전통적인 황금률입니다.
요즘은 남이 대접받고 싶어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처세학의 백금률이 위세를 떨치
고 있으니 옛날 공자가 己所不欲이면 勿施於人하라 한것은 논어의 청동률쯤으로
평가절하 당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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