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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줍기

鄭宇東 0 1780
이삭줍기 

 
나는 어느 밭에서인지도 모르고 주워 먹고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한 이삭들을 한번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나의 이삭줍기는 이렇게 그림으로 시작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 모릅니
다. 말꼬리잇기 놀이처럼 연쇄연상을 따라 구약성경의 이사야서 28장 10절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씩" 따다가 마음 편하게 적어보는 수준입니다.

쟝 프랑소아 밀레의 그림에 이삭줍기라는 명화가 있습니다.
어렵게 지은 농사를 낟가리 추수뿐만 아니라 이삭까지 알뜰히 거두는 모습입니다.
옛날에는 이삭만 주워도 한동안을 먹고 살수 있었다니 농사 인심이 좋았나 봅니다.
하기사 모세의 법전에는 밭의 소유자에게는 이삭을 줍지 못하게 하고 가난한 사람
이나 나그네 어린이 과부들 몫으로 주워가게 하였다니 지금의 법의 역할이 윤리적
인 목표의 최소한만을 규정한다는 윤리의 최소한도설에 그치는데 비교하여 그때의
법은 인정이 넘치는 윤리의 최대한도의 이상을 추구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번의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늙으막에 낳아서
그래서 그 출산이 좋아서 그들을 웃게하였지만 큰 업적은 못이룬 그 아들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으로 이삭을 번제의 희생물로 약속하였
다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하여져서 리브가를 아내로 취하여 에서와 야곱의 쌍동
이 형제를 낳았습니다. 먼저 난 형 에서는 슬기롭지 못하여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을 받고 장자의 권리를 넘겼다가 인생을 사는데 여러가지로 불이익을 당하
였습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남을 탓할 수도 없는 울어도 제탓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백설공주 동화에도 있습니다.
궁전에서 쫒겨난 백설공주는 일곱 난장이들의 잠자리의 상대가 되고 그들의 보살
핌 가운데서도 어리석은 탓으로 계모 마녀 왕비가 변장한 방물장사에게 속아 가슴을
묶여 기절을 하고 또 한번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죽습니다. 어른을 위한 원본 잔혹
백설공주는 보통 동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과는 달리 고생을 많이하다 불행하
게 죽습니다. 어리석어서 자기 앞가림조차 할수 없는 불행한 사람들의 대표적 예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불경이야기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어리석고 바보스런 제자중에 주리반특이란 제자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놀림을 받고 대문에 나가 울고 있으니 부처께서 물으시니 자기
는 바보라서 아무래도 구제불능이라서 낙담이 되어서 운다하니까 자기가 바보인
것을 아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고 격려하고 지도하여 털고 닦는 공부에 전념하게
하여 큰 스님이 되게 하였습니다. 털고 닦는 공부는 선반의 먼지만 아니라 번뇌와
속박의 온갖 먼지를 털고 또 마루의 때만 닦는 것이 아니고 마음과 욕심의 온갖 때
를 닦아낸 큰 공부를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고 용렬한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우기면 이런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님이라도 구제할 방도가 없기때문에
포기한다고 하였습니다. 타고나기를 어려서부터 슬기롭고 지혜로웠으면 좋겠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지각을 키우고 철이 들어서 조금씩 더 지혜로워지는 것도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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