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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포스트(EMILYPOST)

鄭宇東 0 1763
에밀리포스트(EMILYPOST) 

 
에티켓에 관한 서적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써여졌는데 그중에서 특히
미국인 Emily Post 여사는 the Book of Etiquette 라는 책을 20세기초에 써서
수정에 수정을 가하고 판을 거듭하여 가면서 출판되어 이제는 에티켓류서의
고전이 되어서 그녀의 이름 에밀리 포스트가 에티켓을 대신하는 용어로 사전
에도 실리게 되었다 합니다.

수많은 덕행조목을 다 기억하는 것은 몰라도 내용중 이것 하나만이라도 알고 제
대로 행한다면, 당신이 대접 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소위 성서의 황금률
이나 최근의 인간관계론이 설파하고 있듯이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대접한다는
이른바 백금률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트여사가 조언하고 있는
"요금을 내지 않을 만큼 어린 아이는 보호자가 건사하여 자리에 앉히지 않는다"
라는 조행목록은 대가성이나 형평성에 있으어도 참으로 금과옥조입니다.
우리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 정규요금 내고 앉지 못하고 서 있는데 요금도
안낸 꼬마아이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순전히 그 보호자의 양식이 문제입니다.

탈무드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형제가 있었는데 큰형은 천리안으로 천리밖을 보는 재주를 가졌고
둘째는 어디든 빨리 갈수 있는 하늘을 나는 돗자리를 가졌고
막내는 무슨 병이든 먹기만하면 다 낫게 하는 만병통치의 사과를 가졌는데
하루는 큰형이 그 나라의 공주가 병에 걸렸는데 공주를 낫게 하는 사람과 결혼
시킨다는 벽보를 보고 삼형제가 둘째의 돗자리를 타고 궁궐로 가서 막내의
만병통치의 사과를 먹여 살리고 난후 누가 공주와 결혼 할것인가하고 다투니
이를 본 현명한 유대교의 랍비가 
큰형은 천리안을 그대로 가졌고 둘째도 돗자리를 그대로 가졌는데
가졌던 사과를 먹여 없애고 공주를 살린 막내에게 손을 들어주었다는 얘기입니다.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온  한 사중주단의 첼리스트가 좌석을 사서 그 자리에 첼로를 앉히고
부산공항으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는 사람과 악기간의 존비의 문제가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여 배타적이고 독점적으로 취득한 권리를 누구나 용인할 수
밖에 없는 경우라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라 하겠습니다.
세관과 세금은 탐탁치 않은 이국물산의 수입에 대한 비난을 모두 면탈하게 해주고
소정의 요금지불은 조행의 잘 잘못이나 가치평가를 떠나서 권리의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예절이라는 것도 애시당초에는
서로가 남을 불편하지 않게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착한 마음으로 사이 좋게 사는
방법으로 고안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
부정적인 금지 금욕 금족을 벗어나 마음대로 또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공자가 자기에게 바람직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한 단계를 넘어 일흔이 되고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마음대로 하여도 세상의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七十而 從心所欲 不踰矩) 하는 경지쯤에 이르렀다면
우리가 이루기를 바라는 에티켓의 최종목표이고 예절의 최고정점이라 하겠습니다.

공자의 이 가르침은 임마누엘 칸트가 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 우리는  자신의 의지가 담긴 격률이 언제라도 보편적 규칙의 원칙으로 유효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모든 행동에 임하여야 한다"고 한 주장과 너무 비슷하여 이러한
의미에서는 칸트도 공자의 한 제자일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나는 감탄
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따라 하고 싶은대로 하여도 일반사회의 법규나 세상의 윤리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경지야 말로 에티켓과 예절의 최고의 경지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
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뼈깍는 수신-수양과 달성하기 어려운 교양함양이 뒤따
라야 하겠습니다. 아 !  바라기로는 나도 꼭 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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