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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지 않는 아이들

鄭宇東 0 1524
고기를 먹지 않는 아이들
 
 
알베르트 슈바이쳐가 어렸을때
친구들과 학교에서 돌아오며 씨름겨루기를 하고 놀았습니다. 그러던 하루는
씨름에 진 몸집도 크고, 키도 큰 아이가 ㅡ나도 알베르트 너만큼 자주 고기
를 먹으면 지지 않을 텐데ㅡ 하고 분해하며 불평하였습니다. 이날로부터 그
는 이겨도 공평하게, 정정 당당히 이겨야 한다는 어린이의 단순한 생각으로
고기를 먹지 않고 시금치등 채소를 먹어 오다가 채소 일망정, 아무런 윤리적
고뇌나 죄책감도 없이 산 생명을 끊어서 식용하는 것에 대한 반성이 일어서
훗날의 생명에의 외경 사상으로까지 발전하였습니다.

申福龍 교수의 아들 신나라라는 어린이는
허약한 아버지를 위하여 할머니가 산 닭을 잡는 것을 보고 이후로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그는 자라서 40대의 장년이 되어 있을 나이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교수가 되어 있는지, 슈바이쳐처럼 람바네라 숲속의 성자가
되었는지, 사원의 수도승이 되었는지, 아니면 시정의 필부필부가 되어 있는
지가 나에게는 궁금한 일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먹거리로 주로 동물의 고기와 식물의 곡식과 채소를 먹고 때로는
무생물에게서도 약간의 화학물질 무기질등 영양소를 섭취하여 살아갑니다.
사찰이나 사원에서는 일반적으로 동물고기의 육식을 금기로 규정하고 있으
며 불경에서 붇다는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음식에 다
른 생명을 죽여서 생일상을 차리는 것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육식을 피하고 채식하고 생명체 아닌것을 섭취하는 것으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윤리적 의무를 다하고, 양심에 떳떳함을 느끼고, 하늘을
우르러고 땅을 굽어보아 일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존재한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정당하고, 존재 그 자체가 至上의 목적일뿐
다른 존재의 수단으로 될 수 없다는 정언판단에 나도 기꺼히 동조합니다.
이런 나에게는 먹거리가 되는 동물의 고통과 비명이 표정없고 소리없는 식
물에게서도 똑 같이 느껴지고 그 비명이 아우성으로 들립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무생물의 존재의 파괴나 변형에도 일단의 경계심이 발동됩니다.

맹자는 양혜왕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제사에 쓰기 위하여 잘 키운 소를 희생물로 끌고 갈때 그 소가 눈물을 흘리
며 끌려가지 않으려하므로, 딴데서 뛰며 놀고있는 양으로 바꾸어 오게 하니
어떤 사람이 왕이 제물을 인색하게 아낀다고 비난하였습니다.
맹자가 왕이 인색해서가 아니고 자기 눈앞의 희생우가 불쌍하여 측은지심을
발동한것이니 그러한 행위가 오히려 인간답지 아니한가 하고 두둔하였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측은지심의 발동은 다음 차례의 양에게도 또 그 다음의
어떤 희생에게도 주어져야 한다고 여백에 부기로 반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채식주의자를 표방하면서도 비싼 최고급 모피옷을 입은 일단의 미식가들이
채식요리로 유명한 쉐프 댄 바버의 블루힐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은 후에
는 밍크코트를 벗어버리는 진정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쉐프 댄 바버의
전설은 그곳 쉐파의 채식에 대한 믿음과 설교에 세뇌당하여 다시나는 거의
종교적 기적이라 할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쉐파는 요리를
만들어, 구제적 사명을 수행하는 성직자급의 멋있는 요리사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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