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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불을 태워 사리나 얻어볼까

鄭宇東 0 1775
목불을 태워 사리나 얻어볼까


단하(丹霞禪師)가 장안의 혜림사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그 날은 날씨가 매우 추웠습니다. 그래서 선사는 불당으로 가서 나무로 된
불상을 꺼내와서 아궁이에 집어넣고 불을 피웠습니다. 건조한 목불은 아주
잘 타올랐습니다. 그 불에 몸을 녹이고 있는 단하의 행동거지를 보고 혜림사
주지가 크게 놀라며 " 아니, 당신 미쳤소? 부처님을 쪼개 불을 지피다니!"
주지는 말문이 막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단하선사는 천연덕스럽게 재를 뒤적이면서 엉뚱하게
" 나는 불상을 태워서 지금 부처의 유골(사리)을 얻으려 하오"
주지스님이 더욱 기가 막혀서
" 불상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단 말인가" 하고 꾸짖으니
단하선사가 " 그렇다면 어째서 나를 꾸짖는가?" 하였답니다.
 
병법 삼십육계중에 줄행랑이 최상의 방책이라 했습니다만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을 다 알수 없는 사람은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고
이럴때 물음에 답해주는 스승을 가까이에 모실수 있으면 참 좋은 일입니다.
이종균회장님을 가까이 할수 있어서 나는 참으로 행운이고 참으로 좋습니다.
클라이머들이 밧줄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서 늘상 조마조마하던 심정을
회장님을 뵙고 등산못은 연철과 쐐기등을 채택하고 하중에 맞는 쇠의 강도등
으로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말씀에 인자 안심할
수 있습니다. 몽매하여 두렵던 안개를 걷어가는 이러한 선지식도 얼마든지
있는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개수로 뭉떵거려 버리는 언어유치증의 중병에 걸려있는 세태에
스승 플로벨이 어떤 사상에 꼭 맞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으니 그 말을 찾아
쓰라는 교훈이 모파상을 프랑스의 대표 단편 작가로 되게해 주었습니다.
휘할 정도의 선배나 스승을 가리켜 둘이나 셋으로 지칭하는 글이나 말을
들을때의 무신경의 곤혹감을 회장님은 꼭 맞게 가려 쓰도록 잘 가르쳐 주
십니다.

필시 혜림사의 목불은 보물급이겠지만
허명의 우상에 사로잡혀 현실의 이익을 놓치는 중생에게 진리의 실상을
가르쳐 목불을 태워 사리나 얻을까 하던 단하선사의 가르침을 다시 생각
하게 합니다. 문제의 발단은 혜림사 주지스님이 추운날씨에 방을 따뜻하게
해놓지 않은것이 잘못이지만 어리석은 대중이 목불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을 단하선사가 목불을 태워 욕심스럽게 혼자만 보온한 것
은 잘한 일이 아닙니다. 목불을 쌀과 바꾸어 빈민구제에 나섰던 미공스님의
이야기가 더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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