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떠나가는 배> 이야기
鄭宇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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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6 13:32
가곡 <떠나가는 배> 이야기
. 떠나가는 배
양 중 해 작시
변 훈 작곡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오! 떠나가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임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 나오라 애 슬픔
물결위로 오!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물에
애 끓이 사라져 나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뜬 바다를 지키련다
저 수평선을 향하여
떠나가는 배 오! 설운 이별
임 보내는 바닷가를
넋없이 거닐면 미친듯이
울부짖는 고동 소리
임이여 가고야 마느냐
대학재학중 6.25전쟁을 맞아 피난지 대구에서 작곡한
연극적인 해학적 구성을 사용한 한국 리얼리즘 가곡의 대표작으
로 꼽히는 <명태>의 작곡가 변훈(邊焄, 1926.5.23~2000.8.29)
선생에게는 뒤에 작곡된 명가곡 <떠나가는 배>가 또 있습니다.
이 노래는 변훈선생이 1952년 한국전쟁 당시 제주에 피난왔을 때,
당시 제주 제일 중학교 국어교사인 양중해시인이 쓴
<떠나가는 배>를 읽고 작곡하였습니다.
이 곡의 작곡 배경과 경위를 좀 더 부연설명하면
대구 啓聖學校를 졸업한 박목월시인(朴木月: 朴泳鍾, 1916-1978)
이 6.25 동란기인 1952년 제주도에 잠시 머물렀던 시기에 사랑하
는 사람과의 단장(斷腸)의 별리(別離)를 겪으면서 '이별의 노래' 시
를 짓고 김성태선생(1910-2012)이 곡을 붙여 가곡 '이별의 노래' 가
만들어져, 국민적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주에서 함께 문학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양중해 시인(梁重海, 1927~2007, 제주 제일중 국어교사, 훗날 제주
대 사범대 학장 역임)이 이들 두사람의 애절한 이별 장면을 지켜보
면서 '떠나가는 배'란 노랫말을 쓰고 동료교사인 변훈선생(邊焄,
1926-2000) 이 작곡을 한 것이 지금은 제주의 노래가 된 불후의 명
곡 <떠나가는 배>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의 이 작품을 논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먼저
시중에 회자하는 <떠나 가는 배>의 뒷 이야기로
대시인 목월과 어느 문학소녀의 연애(戀愛)는 시인 부인의 선행으
로 바른 자리로 돌아 갔다는 신파류의 감동적인 이야기와는 별도로
작곡자의 악상에서는 그 자신이 북녘의 함흥출신이었고 더군다나
월남한 독거장인의 슬픔을 지켜보면서 한국전쟁중 뿔뿔이 헤어진
가족들이 피난한 제주도까지 1주일에 한번씩 입출항하는 현장의 아
픔과 희비를 그리고 있다는 해설이 더 온당한 것 같습니다.
변훈(邊焄, 1926~2000)선생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부친의 반대로 음악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1954년 연희전문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대학 재학 중인 1953년 외교관 공채시험에 합격한 후 미국 샌프
란시스코 총영사관, 타이완, 브라질, 파키스탄 총영사를 지냈으며,
1981년 포르투갈 대리대사를 마지막으로 퇴임하였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 재학 중 그는 서울대 정종길교수에게
서 작곡을 배우고 바리톤 최봉진에게서 성악을 배웠습니다. 결국
그는 4년동안 외교관 수업과 음악가 수업을 병행하였던 것입니다.
47년 재학시에 첫 작품으로 소월의 <금잔디>를 시작으로, 48년
에 <무서운 시간>, 51년 <낙동강>, 52년 6·25전쟁중 피난지인
대구에서 우리에게 친숙하고 많이 알려진 <명태>를 작곡하였습
니다. 이밖에도 대표적인 작품으로 <한강>, <임진강>, <설악산아>
(정공채 시), <쥐>(김광림 시), <님의 침묵>(한용운 시) <귀향의 날>
(김영삼 시), <갈매기>(자작시) 등이 있습니다.
변훈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하피스트이며 피아니스트인 석은애
여사와 결혼하였기에 그의 작품은 집에서 석여사의 피아노 반주로
성악도이기도 한 그의 가창으로 작시자들 앞에서 불려졌습니다.
석여사는 아까운 음악적 재능을 부군의 외교판과 음악판을 조용히
내조하는데 헌신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선생의 연세대 정치외
교학과 직계 후배인 정공채시인이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동부이촌
동의 변 작곡가의 宅에 드나든 경험담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 떠나가는 배
양 중 해 작시
변 훈 작곡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오! 떠나가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임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 나오라 애 슬픔
물결위로 오!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물에
애 끓이 사라져 나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뜬 바다를 지키련다
저 수평선을 향하여
떠나가는 배 오! 설운 이별
임 보내는 바닷가를
넋없이 거닐면 미친듯이
울부짖는 고동 소리
임이여 가고야 마느냐
대학재학중 6.25전쟁을 맞아 피난지 대구에서 작곡한
연극적인 해학적 구성을 사용한 한국 리얼리즘 가곡의 대표작으
로 꼽히는 <명태>의 작곡가 변훈(邊焄, 1926.5.23~2000.8.29)
선생에게는 뒤에 작곡된 명가곡 <떠나가는 배>가 또 있습니다.
이 노래는 변훈선생이 1952년 한국전쟁 당시 제주에 피난왔을 때,
당시 제주 제일 중학교 국어교사인 양중해시인이 쓴
<떠나가는 배>를 읽고 작곡하였습니다.
이 곡의 작곡 배경과 경위를 좀 더 부연설명하면
대구 啓聖學校를 졸업한 박목월시인(朴木月: 朴泳鍾, 1916-1978)
이 6.25 동란기인 1952년 제주도에 잠시 머물렀던 시기에 사랑하
는 사람과의 단장(斷腸)의 별리(別離)를 겪으면서 '이별의 노래' 시
를 짓고 김성태선생(1910-2012)이 곡을 붙여 가곡 '이별의 노래' 가
만들어져, 국민적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주에서 함께 문학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양중해 시인(梁重海, 1927~2007, 제주 제일중 국어교사, 훗날 제주
대 사범대 학장 역임)이 이들 두사람의 애절한 이별 장면을 지켜보
면서 '떠나가는 배'란 노랫말을 쓰고 동료교사인 변훈선생(邊焄,
1926-2000) 이 작곡을 한 것이 지금은 제주의 노래가 된 불후의 명
곡 <떠나가는 배>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의 이 작품을 논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먼저
시중에 회자하는 <떠나 가는 배>의 뒷 이야기로
대시인 목월과 어느 문학소녀의 연애(戀愛)는 시인 부인의 선행으
로 바른 자리로 돌아 갔다는 신파류의 감동적인 이야기와는 별도로
작곡자의 악상에서는 그 자신이 북녘의 함흥출신이었고 더군다나
월남한 독거장인의 슬픔을 지켜보면서 한국전쟁중 뿔뿔이 헤어진
가족들이 피난한 제주도까지 1주일에 한번씩 입출항하는 현장의 아
픔과 희비를 그리고 있다는 해설이 더 온당한 것 같습니다.
변훈(邊焄, 1926~2000)선생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부친의 반대로 음악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1954년 연희전문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대학 재학 중인 1953년 외교관 공채시험에 합격한 후 미국 샌프
란시스코 총영사관, 타이완, 브라질, 파키스탄 총영사를 지냈으며,
1981년 포르투갈 대리대사를 마지막으로 퇴임하였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 재학 중 그는 서울대 정종길교수에게
서 작곡을 배우고 바리톤 최봉진에게서 성악을 배웠습니다. 결국
그는 4년동안 외교관 수업과 음악가 수업을 병행하였던 것입니다.
47년 재학시에 첫 작품으로 소월의 <금잔디>를 시작으로, 48년
에 <무서운 시간>, 51년 <낙동강>, 52년 6·25전쟁중 피난지인
대구에서 우리에게 친숙하고 많이 알려진 <명태>를 작곡하였습
니다. 이밖에도 대표적인 작품으로 <한강>, <임진강>, <설악산아>
(정공채 시), <쥐>(김광림 시), <님의 침묵>(한용운 시) <귀향의 날>
(김영삼 시), <갈매기>(자작시) 등이 있습니다.
변훈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하피스트이며 피아니스트인 석은애
여사와 결혼하였기에 그의 작품은 집에서 석여사의 피아노 반주로
성악도이기도 한 그의 가창으로 작시자들 앞에서 불려졌습니다.
석여사는 아까운 음악적 재능을 부군의 외교판과 음악판을 조용히
내조하는데 헌신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선생의 연세대 정치외
교학과 직계 후배인 정공채시인이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동부이촌
동의 변 작곡가의 宅에 드나든 경험담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