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자료실 > 신요칼럼
신요칼럼
 

영화 <볼레로>

鄭宇東 0 2638
영화 <볼레로>의 음악

모리스 베자르에 안무된 이 무용 동작은 빨간 원탁 위에서 한
명의 무용수가 볼레로의 크레셴도에 맞추어 점차 격렬한 몸짓
을 보여줍니다. <볼레로>는 1928년 파리에서 활동하던 러시
아 무용가 이다 루빈시타인을 위해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무용
곡으로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린 곡으
로 유명합니다.

그동안 서양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발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
언이 아닙니다. 특히 고전주의 시대에 정착된 소나타 형식은
앞에서 제시된 주제나 악상들을 전개부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
전시켜 나가다가 재현부에서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곡가의 능력은 하
나의 단순한 동기나 선율을 얼마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게,
또 얼마나 독창적으로 발전시키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베토벤의 운명을 보자면 전체적으로 무척 씩씩하고 화려하게
전개되는 운명의 1악장도 사실은 소위 ‘운명의 동기’라고 하는
네개의 단순한 음형을 발전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특히 2악장
의 전개부를 보면, 베토벤이 이 단순한 동기를 가지고 얼마나
화려하게 악상을 발전시켜 나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발전의 법칙은 고전주의 이후 모든 음악을 구축하는 가장 기
본적인 원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라벨이 볼레로에서 이런
발전의 법칙을 파괴한 것입니다.

라벨의 볼레로는 ‘발전’하지 않는다. 단지 ‘반복’될 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멜로디를, 똑같은 리듬에 맞추어 18번
이나 반복하는 음악입니다. 과연 이것을 음악이라고 할수 있
을까? 실제로 <볼레로>가 초연되었을 때, 객석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라벨이 드디어 미쳤군”이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멜로디가 발전해 나가는 것에서 음악감상의 즐
거움을 찾던 청중들에게 이 얼마나 황당한 반복의 테러리즘
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이 곡에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라벨은 그 변화를
멜로디의 발전이 아니라 음색의 다양성에서 찾았습니다.
<볼레로>는 같은 멜로디를 악기 편성을 바꾸어가며, 보다 정
확하게 말하면 악기수를 점차적으로 늘려 음량을 확장해 나가
는 방식으로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연주에 참여하는 악기에는
오케스트라에 있는 통상적인 악기 외에 스페인 춤곡인 볼레로
의 관능적인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색소폰이 필요합니다.
 
먼저 플루트 독주로 시작해 클라리넷, 파곳, Eb 클라리넷, 오
보에 다모레, 플루트와 트럼펫, 테너 색소폰, 소프라니노 색소
폰과 소프라노 색소폰, 혼과 피콜로와 첼레스타, 오보에와 오
보에 다모레와 잉글리쉬 혼 그리고 클라리넷, 그다음 트롬본,
목관 앙상블, 현악기, 현악기와 트럼펫, 오케스트라 전체로
끝을 맺습니다.
 
처음에는 피아니시모로 조용하게 시작했다가 뒤로 갈수록 악
기들이 합쳐지면서 소리가 점점 커져 마지막에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엄청나게 큰소리로 끝을 맺습니다. 이렇게 멜로디가
반복되면서 음량이 확장되는 동안에도 스내어 드럼은 처음부
터 끝까지 고집스럽게 같은 리듬을 반복합니다.

<볼레로>는 ‘크레셴도의 음악’입니다. 반복적인 리듬의 토대
위에 구현되는 악상의 점진적인 고양... 하지만 그 점진적인
고양에는 해결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음악에도 클라이맥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고 나면, 그 다음
에는 반드시 거기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 고양된 감정을 추
슬러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볼레로>는 사람의 감정을 저 높
은 곳까지 올려놓은 다음, 이를 수습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그냥 무책임하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파국으로 여겨지
지는 않습니다. 그 속수무책의 무너짐에서 본능에 몸을 맡긴
후에 오는 통쾌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라벨이 추구했던 크레셴도의 법칙을
충실하게 재현합니다. 처음에는 세르게이 혼자 춤을 추다가
음악이 진행될수록 무용수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갑니다. 그
러다가 드디어 무용수 전체가 춤을 추고, 피날레의 파국적인
일성(一聲)과 함께 전원이 무대 위에 몸을 던집니다. 그렇게
영화의 원제인 "한 사람과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됩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