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 음악(recorded music)
鄭宇東
0
1888
2015.03.08 23:38
레코드 음악(recorded music)
레코드(record)가 기록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레코드음악은 녹음된 음악으로 녹음재료와 방법에 따라 호칭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둥근 원반에 소리홈(音溝)을 파 녹음하는
방법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반(音盤) 또는 디스크
(disc) 등이 레코드음악의 명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금속
제 코드나 테이프에 녹음된 음악도 일반적으로 레코드음악 속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음반 가운데는 음악 이외의 녹음도 있어
레코드란 명칭으로 불려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레코드음악(recoded music)은 실제 연주를 녹음하여 1회성을 가
진 연주를 반복 청취할 수 있도록 정착시킨 것입니다. 연주의 1회
성을 중요시하는 경우 신선미가 없는 복제로 생각될 수 있으나,
악곡을 자유롭게 감상하려는 청취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음악감
상의 편리하고 뛰어난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레코드음악
은 음악을 재생시키는 문헌(文獻)으로서 음악교육에 중요한 구실
을 하고, 나아가서는 음악보급과 연구에 있어 세계적으로 기여하
고 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이 1876년 축음기를 발명한 이후 현재까지의 레코드
발전은 다음의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876∼1900년은 레코드의 발명과 초기 실험시대(음향녹음까지),
1900∼25년은 고전음악 녹음부터 전기(電氣)음악으로 될 때까지,
1925∼48년은 전기음악시대부터 LP음반 출현까지,
1949∼56년은 LP음반 발달부터 스테레오 탄생까지,
1957∼현재는 스테레오 발전기로서 대략 이렇게 나누어집니다.
역사상 최초의 녹음은 1877년 12월 6일 에디슨 자신이 발명한
녹음기로 취입한 찬송가 "마리아의 작은 양"입니다.
이어서 다른 각부문에서의 최초의 녹음 기록을 보면
1888년 당시 12살인 호프만이 에디슨의 실험실에서 2분동안
1889년 경 브람스는 판매대리상을 통해 "항가리 무곡" 1번을
1888년 4월 헨델의 오페라 "이집트의 이스라엘"
1901년 프랑스의 모리스 르노가 음반을 제작하고
1902년 신진 테너 E. 카르소가 녹음하여 큰 명성을 얻고
1903년 컬럼비아사, 빅터사가 제작한 음반이 교육용 쓰이게 되고
1905년 릴리 레만이 2년간 34장에 녹음하여 최장기록을 세우고
1914(or 1909)년 아르투르 니키쉬 지휘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녹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유성기가 들어온 것은 1890년 미국 선교사 알렌에 의
해 상륙되고 처음 녹음이 시작된 것은 고종 앞에서 일본인기사가
당시 광대로서 유명한 박춘재(朴春載)의 소리를 취입녹음하였고
이어서 소리꾼 宋萬甲 朴春載 金蓮玉 趙牧丹…” 등이 녹음했는데
초창기의 취입은 조선창(朝鮮唱)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20년대에 들어 레코드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레코드음악은 본격적
으로 대중화시대를 맞이하였는데, 26년 현해탄에서 정사(情死)한
윤심덕(尹心悳)의 유작(遺作)인 "死의 찬미"가 레코드음악의 확산
에 기폭제적(起爆劑的)인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27년에서 30년 초반까지는 ‘유행소곡(流行小曲)’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레코드가 출현하여 새로운 대중가요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29년 이철(李哲)은 오케레코드사를 설립함으로써 최초로 한국인에
의한 레코드사가 출현하였습니다. 이 이전에는 일제가 막대한 투자
를 하여 레코드 산업으로 우리 고유의 정서를 파괴하고 일본풍의
정서를 보급하는데 이용하였으므로 음악계의 인사들은 유행가 레
코드음악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후 35년을 전후해서 레코드는 공전(空前)의 붐을 일으켜 창가 ·
유행가 ·동요와 더불어 양악도 처음으로 출반(出盤)되었는데,
桂貞植의 바이올린에 의한 "타이스의 명상곡", 소프라노 鄭勳謨의
독창 "솔베이지의 노래"가 이때 취입되었습니다. 우리기술로 우리
말로 된 노래를 최초로 녹음한 것은 1947년이었습니다.
그 뒤 67년 성음제작소가 영국의 데카사(社)와 계약을 맺어 한국
최초로 라이센스음반을 내놓았으며, 86년 무렵부터는 SKC가 콤팩트
디스크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국내연주가의 음반을 내놓았습니다.
레코드(record)가 기록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레코드음악은 녹음된 음악으로 녹음재료와 방법에 따라 호칭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둥근 원반에 소리홈(音溝)을 파 녹음하는
방법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반(音盤) 또는 디스크
(disc) 등이 레코드음악의 명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금속
제 코드나 테이프에 녹음된 음악도 일반적으로 레코드음악 속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음반 가운데는 음악 이외의 녹음도 있어
레코드란 명칭으로 불려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레코드음악(recoded music)은 실제 연주를 녹음하여 1회성을 가
진 연주를 반복 청취할 수 있도록 정착시킨 것입니다. 연주의 1회
성을 중요시하는 경우 신선미가 없는 복제로 생각될 수 있으나,
악곡을 자유롭게 감상하려는 청취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음악감
상의 편리하고 뛰어난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레코드음악
은 음악을 재생시키는 문헌(文獻)으로서 음악교육에 중요한 구실
을 하고, 나아가서는 음악보급과 연구에 있어 세계적으로 기여하
고 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이 1876년 축음기를 발명한 이후 현재까지의 레코드
발전은 다음의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876∼1900년은 레코드의 발명과 초기 실험시대(음향녹음까지),
1900∼25년은 고전음악 녹음부터 전기(電氣)음악으로 될 때까지,
1925∼48년은 전기음악시대부터 LP음반 출현까지,
1949∼56년은 LP음반 발달부터 스테레오 탄생까지,
1957∼현재는 스테레오 발전기로서 대략 이렇게 나누어집니다.
역사상 최초의 녹음은 1877년 12월 6일 에디슨 자신이 발명한
녹음기로 취입한 찬송가 "마리아의 작은 양"입니다.
이어서 다른 각부문에서의 최초의 녹음 기록을 보면
1888년 당시 12살인 호프만이 에디슨의 실험실에서 2분동안
1889년 경 브람스는 판매대리상을 통해 "항가리 무곡" 1번을
1888년 4월 헨델의 오페라 "이집트의 이스라엘"
1901년 프랑스의 모리스 르노가 음반을 제작하고
1902년 신진 테너 E. 카르소가 녹음하여 큰 명성을 얻고
1903년 컬럼비아사, 빅터사가 제작한 음반이 교육용 쓰이게 되고
1905년 릴리 레만이 2년간 34장에 녹음하여 최장기록을 세우고
1914(or 1909)년 아르투르 니키쉬 지휘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녹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유성기가 들어온 것은 1890년 미국 선교사 알렌에 의
해 상륙되고 처음 녹음이 시작된 것은 고종 앞에서 일본인기사가
당시 광대로서 유명한 박춘재(朴春載)의 소리를 취입녹음하였고
이어서 소리꾼 宋萬甲 朴春載 金蓮玉 趙牧丹…” 등이 녹음했는데
초창기의 취입은 조선창(朝鮮唱)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20년대에 들어 레코드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레코드음악은 본격적
으로 대중화시대를 맞이하였는데, 26년 현해탄에서 정사(情死)한
윤심덕(尹心悳)의 유작(遺作)인 "死의 찬미"가 레코드음악의 확산
에 기폭제적(起爆劑的)인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27년에서 30년 초반까지는 ‘유행소곡(流行小曲)’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레코드가 출현하여 새로운 대중가요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29년 이철(李哲)은 오케레코드사를 설립함으로써 최초로 한국인에
의한 레코드사가 출현하였습니다. 이 이전에는 일제가 막대한 투자
를 하여 레코드 산업으로 우리 고유의 정서를 파괴하고 일본풍의
정서를 보급하는데 이용하였으므로 음악계의 인사들은 유행가 레
코드음악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후 35년을 전후해서 레코드는 공전(空前)의 붐을 일으켜 창가 ·
유행가 ·동요와 더불어 양악도 처음으로 출반(出盤)되었는데,
桂貞植의 바이올린에 의한 "타이스의 명상곡", 소프라노 鄭勳謨의
독창 "솔베이지의 노래"가 이때 취입되었습니다. 우리기술로 우리
말로 된 노래를 최초로 녹음한 것은 1947년이었습니다.
그 뒤 67년 성음제작소가 영국의 데카사(社)와 계약을 맺어 한국
최초로 라이센스음반을 내놓았으며, 86년 무렵부터는 SKC가 콤팩트
디스크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국내연주가의 음반을 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