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 ㅡ 손자 탄핵 ㅡ
鄭宇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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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3 11:58
사랑방 이야기 ㅡ 손자 탄핵 ㅡ
옛날에 과거시험에서 문과에 합격하여 급제하고, 무과에 합격하여 出身하면
그들은 촉규화(접시꽃) 모양을 한 어사화를 모자에 꼽고 거리를 행진하였지
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일할 근무처나 선배에게, 그리고 관계기관이나 거래
처에 낯을 익히는 일종의 통과의례절차인 新任禮를 가졌습니다. 이때에 그의
등용에 이의를 제기 할 수 있었다니 오늘날의 청문회에 비길만큼 민주적인
제도를 왕권시대에도 운용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과거에 급제한 한 사람이 신임례에 나섰다가 점심참에 이르러 가는
길목에 있는 종조부께 문후하고 푸짐하게 차린 점심상을 받아 먹었습니다.
식사후 따라 온 수하들을 독촉하여 떠나려하니까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 자네, 더 나다닐 필요 없네" 하여 어리둥절한 손자가 무슨 말인가 물으니
" 내가 한상 잘 차려 준것은 나누어 먹으라는 뜻이었고, 또 벼슬길에 나선
사람이 몇 사람 수하사람도 거느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많은 백성을 다스
릴 수 있겠느냐" 고 나무라면서 손자의 벼슬길을 아예 막았습니다.
ㅡ 호박국을 끓여라, 남대문을 열어라 ㅡ
어릴때 동무를 약올려 놓고 골을 내면 놀려주던
"골 났네 성 났네 호박국을 끓여라 남대문을 열어라"라는 소리는 요령부득입니다.
어떻게 호박국과 남대문이 어울리게 되었는지 나의 어리석은 새머리로는 도무지
연상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약이 없던 옛적에는 임산부가 출산을 한후 부기가 있을때 잘 익은 누른 호박
을 삶아 그 물을 먹고 조리하는 것이 민간처방이었습니다. 그래서 규모있는 살림을
하는 대갓집에서는 늙은 호박을 가을에 수확하여 겨우내 잘 갈무리하여 두었다가
가족이나 이웃 아무나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누어 주어 생광스레 쓰게 했습니다.
농삿일이 주업이던 시절에는 비가 오지 않고 가물때는
임금부터 근신하며 하늘에 비를 비는 기우제를 지내고, 음양조화를 맞춘다고 평소
와 는 다른 조치를 취하는 가운데 동, 서, 남대문을 닫아 걸고 북쪽의 숙정문만 열
어 이문으로만 통행하게 하니 다른 문으로 다니던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고 이 일로
성화가 치밀어서 알 문절에서의 임산부처럼 얼굴이 퉁퉁 부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호박국을 끓여 처방하고, 기다리던 비가 오면 남대문을
활짝 열어서 울화통이 풀리게 한다는 지나간 한때의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과거시험에서 문과에 합격하여 급제하고, 무과에 합격하여 出身하면
그들은 촉규화(접시꽃) 모양을 한 어사화를 모자에 꼽고 거리를 행진하였지
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일할 근무처나 선배에게, 그리고 관계기관이나 거래
처에 낯을 익히는 일종의 통과의례절차인 新任禮를 가졌습니다. 이때에 그의
등용에 이의를 제기 할 수 있었다니 오늘날의 청문회에 비길만큼 민주적인
제도를 왕권시대에도 운용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과거에 급제한 한 사람이 신임례에 나섰다가 점심참에 이르러 가는
길목에 있는 종조부께 문후하고 푸짐하게 차린 점심상을 받아 먹었습니다.
식사후 따라 온 수하들을 독촉하여 떠나려하니까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 자네, 더 나다닐 필요 없네" 하여 어리둥절한 손자가 무슨 말인가 물으니
" 내가 한상 잘 차려 준것은 나누어 먹으라는 뜻이었고, 또 벼슬길에 나선
사람이 몇 사람 수하사람도 거느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많은 백성을 다스
릴 수 있겠느냐" 고 나무라면서 손자의 벼슬길을 아예 막았습니다.
ㅡ 호박국을 끓여라, 남대문을 열어라 ㅡ
어릴때 동무를 약올려 놓고 골을 내면 놀려주던
"골 났네 성 났네 호박국을 끓여라 남대문을 열어라"라는 소리는 요령부득입니다.
어떻게 호박국과 남대문이 어울리게 되었는지 나의 어리석은 새머리로는 도무지
연상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약이 없던 옛적에는 임산부가 출산을 한후 부기가 있을때 잘 익은 누른 호박
을 삶아 그 물을 먹고 조리하는 것이 민간처방이었습니다. 그래서 규모있는 살림을
하는 대갓집에서는 늙은 호박을 가을에 수확하여 겨우내 잘 갈무리하여 두었다가
가족이나 이웃 아무나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누어 주어 생광스레 쓰게 했습니다.
농삿일이 주업이던 시절에는 비가 오지 않고 가물때는
임금부터 근신하며 하늘에 비를 비는 기우제를 지내고, 음양조화를 맞춘다고 평소
와 는 다른 조치를 취하는 가운데 동, 서, 남대문을 닫아 걸고 북쪽의 숙정문만 열
어 이문으로만 통행하게 하니 다른 문으로 다니던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고 이 일로
성화가 치밀어서 알 문절에서의 임산부처럼 얼굴이 퉁퉁 부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호박국을 끓여 처방하고, 기다리던 비가 오면 남대문을
활짝 열어서 울화통이 풀리게 한다는 지나간 한때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