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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세우기

鄭宇東 0 1698
달걀 세우기
이제는 콜럼버스의 달걀이 아니고
브루넬레스코의 달걀이라고 고쳐져야 합니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콜럼버스의 달걀은 콜럼버스가 세우기 이전에
1421년 이딸리아의 선구적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코(Pilippo Brunell
esco, 1377~1446) 가 피렌체 대성당의 설계도를 공개하였을때 그의 경
쟁자들은 모두 도저히 실행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하며 혀를 찼습니다.
그러자 그는 경쟁자들에게 달걀 하나를 세로로 세워볼 것을 요구했고,
모두들 그의 황당한 요구에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었습니다. 그때에
브루넬레스코는 달걀 한쪽 끝을 깬 뒤 탁자위에 세로로 세워 보이면서,
대성당 건설계획도 이와 같은 일이라고 역설했습니다. 해결책을 알고나
면 결국 간단한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상륙이 무어 별거냐고 시비가 붙자 즉석에서
달걀 세우기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집어들고 퍽하니
그 밑둥을 깨고 세웠다는, 소문으로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일이라는 것이 해놓고 보면 별것 아닌 듯싶지만 언제나 ‘최초의 발상전환’
이 어렵다는 매우 자존심 강한 메시지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세상 일이 처음에 할때에는 해결법을 찾아 알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렵
지만 남의 아이디어나 행동을 뒤따라 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예를 들어, 발상의 전환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보면
어지러히 엉크러진 삼실은 쾌도난마로 단번에 칼질하여 해결하고
또 꽁꽁 묶어 풀어지지 않는 매듭을 칼로 잘라 보따리를 풀어 헤치고
꼬불꼬불 구멍난 구곡옥도 꿀물과 개미을 이용하면 실을 꿰고
재로된 새끼를 꼬는 법은 지혜로운 노인들에게 물으면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이 ‘콜럼버스의 달걀’에 대하여 문제성을 느껴본 적은 없는가?
콜럼버스의 달걀이 이제는 상식을 넘는 발상이라기보다는 도리어 상식이
되어버린 역사적 과정과 현실입니다.
달걀의 겉모양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것은 타원형입니다. 따라서 이는 애
초에 세울 이유가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둥지에서 구르더라도
그 둥지의 반경을 벗어나지 않도록 고안된 생명의 섭리가 여기서 드러납
니다. 만일 원형이었다면 한번 굴러버리는 경우 자칫 둥지에서 그대로 멀
리 이탈되기 십상이며, 각지게 되어 있다면 어미새가 품기 곤란했을 것이
입니다. 그 타원형은 그래서 생명을 지키는 원초적 방어선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세워보겠다는 것은 그런 생명의 원칙과 맞서는 길밖에 없
습니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둥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진 생
명체를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고정시켜 장악해야겠다는 생각은 ‘콜럼버스
의 달걀’을 가능하게 만드는 뿌리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상식을 깬 발상전
환의 모델이라기보다 생명을 깨서라도 자신의 구상을 달성하겠다는 탐욕
적, 반생명적 발상으로 확대됩니다.

실로 콜럼버스와 그의 일행은 카리브 해안과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해서 자
신들이 원했던 금과 은을 얻기 위해 무수한 생명을 거리낌 없이 살육했습
니다. 결국 콜럼버스의 달걀은 서구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뒷받침하는
사고의 원형이 됩니다. 그것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이런 식으로 무지막지하게 ‘달걀 세우기’
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그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콜럼버스의 손에서 달걀이 지표면에 내치기까지의 거리는 짧고, 그 힘은
그 개인에게 한정되어 있지만 그 거리와 힘 속에는 제국주의라는 문명사적
탐욕이 압축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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