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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칼럼
 

깔리닌그라뜨와 쾨니히스베르크

鄭宇東 0 1571
Калининград vs Koenigsberg
 
러시아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인천의 BASS 이연성선생이
쇼스타코비치의 성악곡을 불러 갈채를 받은 깔리닌그라뜨에서 열린
AMBER NIGHTINGGAIL콩쿨 보도문을 읽으면서 쓰는 글입니다.

이 콩쿨의 개최지 깔리닌그라뜨(Калининград)는
독일의 대철학자 칸트가 태어났던 옛 프러시아의 쾨니히스베르크
(Koenigsberg)였습니다. 내가 아니 우리 전인류가 사표로 삼고 존경하
는 위대한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4.22~1804.2.12) 의
고향이기에 큰 바위(네 대통령)얼굴이 있는 미국의 러시모어산과 더불
어 한번 가보고 싶은 위인의 탄생지로 꼽아 치부해 두었던 곳이었습니
다. 그러다가 근래에 칸트의 고향인 프러시아의 쾨니히스베르크가
러시아의 깔리닌그라뜨로 영유국과 지명이 바뀐 것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칸트는 분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 평화를 정착시
키기 위하여 <영구평화론>을 발표하여 세계1차대전후 국제연맹을 발족
시키는데 공헌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막지 못하고 2차대전으로
독일이 패전하여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렇게 평화를
희구하던 철학자의 고향은 그 이름마저 독재자 스탈린이 전쟁에 공이 많
은 그의 친구 미하일 깔리닌에게 사유물처럼 바처져 깔리닌그라뜨가 되
었다니 침략과 전쟁이 없는 영구평화의 아이디어를 창안한 칸트의 탄생
지가 전승국위주의 불공평 전후처리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은 참으로 인류
역사의 크다란 아이러니입니다.

또 들리는 말로는
독일인들이 자기 나라의 철학자의 탄생지를  방문하는데 남의 나라 러시
아의 비자를 받아야 하느냐고 불평한다 하니 이 점도 분쟁의 작은 불씨일
수 있습니다. 원래 쾨니히스베르크는 도이취의 역대 제왕들이 왕통을 잇
는 대관식을 치루었던 곳이라서 붙혀진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명백한 것은, 프러시아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독일인이듯이 프러시아
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칸트도 독일철학자임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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