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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설(千年王國說)

鄭宇東 0 1679
천년왕국설(千年王國說)
기독교에는 예수가 재림하여 낙원같은 천년왕국을 건설한다는 믿음이 있
습니다. 그러기 전에 질병과 재난을 혹독히 치루는 칠년대환난이 있다하였
습니다. 이때를 가리켜 적그리스도가 악을 횡행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이 대재앙이 있기전에 하늘에 올려져
서 재앙을 면하는데 이것을 전천년왕국설이라하며, 이 휴거가 대환난전에
이루워지는 것을 전대환난주의, 재앙중에 이루어지는 것을 중대환난주의,
재앙이 있은 후에 휴거가 있는 것을 후대환난주의이라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온 세상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천년왕국이 건설되고 난
뒤에야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주장을 우리는 후천년왕국설이라 합니다.

일반적으로 천년왕국설은 종말론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는 종교, 정치, 사
회 운동을 포괄적으로 일컽는 용어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1890년대에 아메리카인디언의 영혼의 춤운동이 있었는데
당시 파이우트족 샤먼인 워보카가 백인들의 문명이 1891년 봄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기 때문에 백인들의 분노를 사 운디드니의 인디언대학
살로 이어지는 대참극을 빚었습니다.
인종간의 성전을 예고한 백인, 아리안족, 유태인, 서구인우월주의
1666년 자신이 메시아로서 통치한다한 사바타이 제비의 가짜 메시아사건
1844년의 윌리엄 밀러가 예언한 재림이 일어나지 않은 대실망사건
국가는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공산주의의 빗나간 예측과 예언
YK2 버그히스테리, 천국의 문 교신자들의 집단자살소동, 정점석유위기에
대한 우려 등이 천년왕국설의 수없이 많은 변종예들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먼젓 글에 대한 호의적인 비판을 계기로 성경을 조금 더 천착해 봅니다.
성서에서 언급하는 천국도래의 시기는
천국이 가까이 와 있으니 회개하여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권고하는
식입니다. (마태복음 3:1~2, 4:17, 마가복음 1:15 ).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것을 잊지 말라. 이 점을 간과
하면 도래의 시기에 큰 오해를 불러옵니다. (베드로후서 3 : 8 )
또 천국이 건설되는 현장은 하늘나라도 아니고 지상의 어느 곳도 아닌
바로 너와 나의 마음속에 이미 와 있다 하였으니 나로서는 세상만사-만물
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어리둥절합니다.(누가복음 17 : 20~21 ).
그리고 인자의 날은 밤의 도적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실상이 이러하니
천국을 맞이하기가 생활인으로서는 늘상 깨어 기도하며 즌비하고 있어야
하는  무척 부담스러운 과업입니다. (마태복음 24 : 42~44 )
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바라고 있습
니다. (베드로후서 3 : 9). 이는 다른 종교에서 보살서원을 세우며 세상에서
모든 중생을 구한 후에 자기 스스로는 맨끝으로 부처가 되는 보살행에 너무
유사합니다.]

종교를 깊이 연구한 학자가 아닌 또 입문신자도 아닌 일반인으로의 나는
성서의 천국이 가까왔다한 구절이 글로 쓰인후 그 말을 듣고 읽은후 천년과
이천년을 넘기고도 더 기다리는 것에 대하여는 종교지도자들의 해명을 들어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심오하고 신비한 용어로서의 말이다 할지언
정 "가깝다" 하는 말이 천년 이천년을 가리킨다면 신은 우주를 창조하고
만물만사를 주재하는 절대질서자로서의 모범에서 일탈하여 인간의 질서를
파괴하는 모순자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신앙고백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의 賭搏神이론과 칸트의 要請的 有神論에 심정적으로 동의합니다.
나는 많은 신중 참신을 몰라( 버틀런드 러셀의 불가지주의적 입장에서)
잠정적으로  힌두교의 비쉬누신에 의탁합니다. 비쉬누는 어떤 신을 섬겨도
결국은 자기를 섬기는 것으로 포용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진리는 眞 善 美 하게 사는데 구원이 있다고 믿습니다.
신앙의 안과 밖에서 퀘이크敎의 無敎會主義를 표방합니다.
신의 벌은 사랑과 관용과 발전격려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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