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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칼럼
 

정(격명)문과 비(정격명)문

鄭宇東 1 2148
正格名文(정문)과 非正格名文(비문)

말과 글은 정확하게 소통되고 또 아름답게 써야 합니다.
너무 길어서 지루하거나 너무 짧아서 뜻이 애매하면 악문(惡
文)이 됩니다. 글이 길어도 재미가 있고 그 내용전개가 호쾌하
면 명문이 되고, 또 글이 짧아도 내용이 아름답고 명쾌하면 명
문(名文)이라 할 것입니다.
 
명문장의 요건이나 조건이라면 무엇보다도
문체의 간결과 내용의 파악의 알기쉬움에 있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명한 철인이 깊이 생각한 바의
내용을 평범한 사람이 이야기하듯 알기 쉽게 써야한다고 하였
습니다. 또 단편소설 쓰기의 모범을 보인 기드 모파상의 스승
플로베르는 습작기의 그에게 세상의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데
거기에 꼭 맞는 말은 하나밖에 없는데 이런 말을 찾아 쓰는것
이 명문장을 쓰는 첩경이라고 가르쳤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넽 웹 사이트에서 장문의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시 우이독경이고 사족이 되고말 도청도설을 하나 덧붙입니다.
일본 에도시대 후기에 있은 세 유학자의 이야기로
한 문인이 아름다우면서도 석장 반이나 되는 긴 장문의 글을 쓰
서 다른 이의 평판을 구하니 석장 반의 문장을 반장 정도로 줄여
놓았습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왔으나 속으로 앙앙불락하
면서 자세히 읽어 보니 문장은 짧아졌으나 뜻이 오히려 더 잘 통
하여 감탄하면서 스승의 논평을 구하니 줄인 글이 원뜻도 살리고
아름답다고 칭찬하면서도 덧붙혀 그렇게 반 장밖에 안되는 글을
이렇게 늘려 석장 반으로 길게 쓸수 있는 것도 자네의 재간이라
고 은근히 위로하여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같은 스승 밑에서 문장 연찬을 받고 있는
두 동문이 한 사람은 길게 늘어 아름답게 쓰는 스타일이고
한 친구는 잛지만 간략하게 요체를 다 포함하기로 유명하였습
니다. 두 제자의 글에 대한 품평을 요청받은 스승은 동학의 두
제자를 함께 칭찬하는 말을 할 수 밖에 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스승의 입장과 답변을 이해하면서 나의 이 이야기가
긴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 잘난 긴 글을 읽어내야 하는
남의 입장을 배려하여 짧은 글 써주기를 바랬다면 필시 쇠귀에
경 읽는 격의 도로가 되어버린 그 안타까움으로해서 남게 되었
습니다. 

나도 글쓰기에 관심이 좀은 있는 편인데
광장을 쓰고 또 화두를 쓰낸 최인훈선생의 화두같은 책을 어느
날은 쓰보고 싶습니다. 이 화두책은 시에서 일기문 소설 희곡
평론과 정치적 논설문과 철학적 명상록의 형식들을 골고루 커
버하고 주제면에서도 세상의 처세훈, 잠언과 격언류의 신앙고
백등등 글쓰기의 전 장르를 백과전서식으로 다 망라하고 있다
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글 잘 쓰는 법을 다루는 책들은 많습니다.
여기에서는 그 세세한 내용은 접어두고 참고삼아 그 서명만을
적어 둡니다.
- 명문장의 요건 / 김성우 / 한길사 / 2012
- 김병완의 책 쓰기 혁명 / 김병완 / 아템포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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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鄭宇東 2015.09.27 04:16  
[re] 김형준 박사께
   
작성일 : 06-05-25 08:31   
글쓴이 : 정우동 (218.237.83.199)  조회 : 302   
한분의 어머니와 세분 아버지의 은덕으로 어려운 6년 반의 유학의
형설지공으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입지전적 성공의 주인공인
김형준 박사께 마음을 다하여 축하와 경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래 갈고 닦은 학식과 덕성으로 미국인 로터리언 아버지의 말씀대로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 크게는 살기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공헌하시고
적어도 까놓고 말해 우리 싸이트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역할을 맡아
이바지하여 주실것으로 기대하여 마지않습니다.
부디, 김박사께서
앞으로 바라는 바를 다 이루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하고 기도합니다.

필시 사족이고말 도청도설을 하나 덧붙입니다.
일본 에도시대 후기에 있은 세 유학자의 이야기로
한 문인이 아름다우면서도 석장 반이나 되는 긴 장문의 글을 쓰서 다른
이의 평판을 구하니 석장 반의 문장을 반장 정도로 줄여 놓았습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왔으나 속으로 앙앙불락 하면서 자세히 읽어
보니 문장은 짧아졌으나 뜻이 오히려 더 잘 통하여 감탄하면서
고명한 스승의 논평을 구하니 줄인 글이 원뜻도 살리고 아름답다고
칭찬하면서 덧붙혀 그렇게 반 장밖에 안되는 글을 이렇게 널려 석장 반
으로 길게 쓸수 있는 것도 자네의 재간이라고 은근히 타일러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