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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배운 러시아노래

鄭宇東 0 1813
혼자서 배운 러시아노래


1964년 하계올림픽대회가 일본 도오꾜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가까운 지리적인 이유에서인지 중계방송에는 소련에서 온 관람객이 많이
보였고 이들중의 한 사람이 아나운서의 요청으로 <카츄샤>를 흥겁게 부르는 장면
을 눈여겨 보았고 그 노래를 또 귀담아 들었습니다. 사실은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프레쉬맨때 러시아어공부를 시작하여 그후로도 계속해서 일본의 白水社에서 번역
출판한 <뽀따뽀바>의 유럽인을 위한 세권의 <러시아어강좌>를 구입하여 공부하
면서 그 책속의 악보로 배운 노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구입한지 거의 50년이나 된 책이지만 말짱하게 보관하고 있고
나는 이 책에서 위에 말한 <까츄샤>를 비롯하여 <스쪤까라진> <아가뇩/ 등불>
<뜨로이까/우편삼두마차>를 부정확한 계명으로 어설프게나마 배웠습니다.
이런 나에게 대학시절에 가졌던 조문사의 62년판 세계명가 300곡집도 러시아노래
를 10여곡이나 담고 있어서 나의 음악재산목록을 풍성하게 더해 주었습니다.
나는 이책에서 <볼가의 뱃노래> <애인을 그리워 하면서> 차이콥스키의 <왜?>
와 <나의 고민을 아시는 이>, <코사크의 탄식>등을 대면하였고 이중에서 특히
글링까의 <좌바라노끄/종달새>를 혼자서 서툴게 배워서는 남들이 잘 모르는 사이
에 잘난척 불러왔으나 이제는 다들 잘 알고 다 노래하니까 기가 팍 다 죽습니다.

고백하건데 내가 러시아어를 공부한 것은
법과대학에 들어가서도 재주가 모자라 사법시험에는 뜻이 없고 꾸준히 공부하여
당시만 하더라도 희귀하였던 사회주의국가의 법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 강단에
서는 것이 나의 청운의 꿈이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포부를 듣고 격려해 주시던
부산대 문리대에서 로어를 가르쳤던 박경일교수님이 지금도 잊혀지지 아니하고
교수님의 기대에 부응해 드리지 못해서 못난 제자는 미안함을 금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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