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의 노래문화에 대하여
鄭宇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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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1
2015.10.04 03:51
우리 한국의 노래문화에 대하여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1892~1982)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현재의 역사만 있을뿐이라고 하였
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대에 미치는 영향으로
서 역사란 현대의 시점에서 항상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것의 모든 역사적 이치가 그렇듯이 음악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과거의 음악유산의 의의도 현대의 것과의 관련에서의 영향력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현재의 우리음악을 살펴 보려합니다.
우리의 한국음악(韓國音樂)이란
그 기반이 된 음계는 한반도 및 중국 동북부 등과 교류하여 고대시대
부터 전래되어오는 것과 근대화와 산업화에 의한 빠른 문화유입에
의한 음악적 반응을 포함하여 한민족(韓民族)의 음악을 총칭합니다.
넓은 의미의 한국음악은 소위 국악으로 불리는
(1) 한국음악과 현대에 서양음악의 기법을 사용하여 창작된 근대한국
음악 및 현대의 창작국악을 포함하며
(2) 한국현대음악, 그리고 현대의 한국대중음악을 모두 포함하는 개
념이나 일반적으로 국악은 한국음악으로 불리며 한국현대음악도
한국음악에 포함됩니다.
한국에서는 상고시대로부터 내려온 고유한 향악(鄕樂)에 중국에서
당악(唐樂)이 건너와 함께 어울려 내려왔고, 고려시대에는 다시 송악
(宋樂)이 건너와 크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116년
(예종 11) 《대성아악(大晟雅樂)》이 들어옴으로써 한국의 음악은 획
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고, 고려 후기와 조선전기(全期)를 통해 아악
은 궁중의 정악(正樂)으로, 향악 등의 재래음악은 속악(俗樂)으로 그
나름대로 각각 틀을 잡아왔습니다. 특히 조선의 세종 이후 아악은 다
른 동양음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양식으로 국악화의 길을
꾸준히 걸었습니다.
그러나 1880년대 이후 서서히 서양음악이 스며들고, 거기에 1910년
이후 일제가 들어와서 제례음악(祭禮音樂) 등을 폐지함에 따라 아악
은 위축일로의 길을 걸어왔으나, 동양 최고의 악으로 현재 한국에만
남아 있고 당악 ·속악도 아악과 더불어 국악이란 이름으로 보존 전승
되어오고 있습니다. 이들 국악은 서양음악과 어울려 내용은 국악을
주제로 하며, 형식은 서양음악을 빌어 작곡 ·연주되기도 합니다.
음악은 소리인 音과 아이디어인 樂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음악이란 (인간이) 소리를 재료로 한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조직화한 소리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음의 요소에는 음계(scale), 높이, 길이, 세기 등이 있어서 같은
재료지만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 낼수 있습니다. 서양음악은 주로
7음계에서 화음과 가락을 뽑고 조직하여 만들어집니다.
서양은 화음 속에서 선율을 만드는 반면 한국은 선율에서 화음을
만드는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음악이 7음계라면 한국이나 일본은
5음계며 한국 음악은 거의가 3박자라면 일본은 2박자 중심으로
그 차이가 분명합니다.
아시다시피 동양음악의 궁상각치우 5음계는
중국의 전통음악으로 꽃을 피운 것을 비롯하여
일본에서는 서양음악의 7음계에서 4 . 7 음계를 뺀
단조계형식인 요나누끼부시(四七拔 き節=都節:미야꼬부시)와
장조계 5음계형식의 이나까부시(田舍節)로 나누어졌으며
특히 都節는 나중에 트로트조의 엔가(演歌)로 발전하였으며
한국에서는 전래 전통 음악의 유산으로서 남아 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의 일본통치 시절의 영향으로 알게 모르게
해방후의 우리 교과서 속에서의 과도한 일본 음계의 채택이
우리음악계에서의 왜색시비의 온상이 되어 온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음악 장르를 크게 분류하여
- 순수음악인이 창작한 예술가곡으로 향수가 지식인에 한정되고
- 거의가 관주도 만든 국민가곡으로 친국민적이지 못하고
- 경음악인이 작곡한 유행가요곡으로 일반대중의 수요가 높으며
- 전래 전통을 이으려는 신민요(신창악)등으로 편의상 나눕니다만
- 질문제가 논란이던 뉴에이지음악 등의 상륙도 크게 눈에 띄입니다.
이러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장르를 나누어 음악의 質級의 高低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정서의
순화와 고양 내지 카타르시스의 정도가 관건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술가곡의 시조격인 난파 선생조차 후배를 위하여 가요곡을 작곡
한 것을 필두로 김동진옹과 최영섭선생 또한 가요곡을 작곡하였으며
조두남선생이 최초로, 뒤이어 김동진선생이 영화음악을 작곡하였고
또 김동진선생은 후반인생을 신창악운동에 매진 진력하였습니다.
우리의 선인이나 선배들이 보여준 실천예들이 바로 이러한 바에야
장르야 무엇이던 노래가 즐겁고 감동을 주기만 한다면 다 좋은 것이
라고 말할 것입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1892~1982)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현재의 역사만 있을뿐이라고 하였
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대에 미치는 영향으로
서 역사란 현대의 시점에서 항상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것의 모든 역사적 이치가 그렇듯이 음악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과거의 음악유산의 의의도 현대의 것과의 관련에서의 영향력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현재의 우리음악을 살펴 보려합니다.
우리의 한국음악(韓國音樂)이란
그 기반이 된 음계는 한반도 및 중국 동북부 등과 교류하여 고대시대
부터 전래되어오는 것과 근대화와 산업화에 의한 빠른 문화유입에
의한 음악적 반응을 포함하여 한민족(韓民族)의 음악을 총칭합니다.
넓은 의미의 한국음악은 소위 국악으로 불리는
(1) 한국음악과 현대에 서양음악의 기법을 사용하여 창작된 근대한국
음악 및 현대의 창작국악을 포함하며
(2) 한국현대음악, 그리고 현대의 한국대중음악을 모두 포함하는 개
념이나 일반적으로 국악은 한국음악으로 불리며 한국현대음악도
한국음악에 포함됩니다.
한국에서는 상고시대로부터 내려온 고유한 향악(鄕樂)에 중국에서
당악(唐樂)이 건너와 함께 어울려 내려왔고, 고려시대에는 다시 송악
(宋樂)이 건너와 크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116년
(예종 11) 《대성아악(大晟雅樂)》이 들어옴으로써 한국의 음악은 획
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고, 고려 후기와 조선전기(全期)를 통해 아악
은 궁중의 정악(正樂)으로, 향악 등의 재래음악은 속악(俗樂)으로 그
나름대로 각각 틀을 잡아왔습니다. 특히 조선의 세종 이후 아악은 다
른 동양음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양식으로 국악화의 길을
꾸준히 걸었습니다.
그러나 1880년대 이후 서서히 서양음악이 스며들고, 거기에 1910년
이후 일제가 들어와서 제례음악(祭禮音樂) 등을 폐지함에 따라 아악
은 위축일로의 길을 걸어왔으나, 동양 최고의 악으로 현재 한국에만
남아 있고 당악 ·속악도 아악과 더불어 국악이란 이름으로 보존 전승
되어오고 있습니다. 이들 국악은 서양음악과 어울려 내용은 국악을
주제로 하며, 형식은 서양음악을 빌어 작곡 ·연주되기도 합니다.
음악은 소리인 音과 아이디어인 樂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음악이란 (인간이) 소리를 재료로 한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조직화한 소리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음의 요소에는 음계(scale), 높이, 길이, 세기 등이 있어서 같은
재료지만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 낼수 있습니다. 서양음악은 주로
7음계에서 화음과 가락을 뽑고 조직하여 만들어집니다.
서양은 화음 속에서 선율을 만드는 반면 한국은 선율에서 화음을
만드는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음악이 7음계라면 한국이나 일본은
5음계며 한국 음악은 거의가 3박자라면 일본은 2박자 중심으로
그 차이가 분명합니다.
아시다시피 동양음악의 궁상각치우 5음계는
중국의 전통음악으로 꽃을 피운 것을 비롯하여
일본에서는 서양음악의 7음계에서 4 . 7 음계를 뺀
단조계형식인 요나누끼부시(四七拔 き節=都節:미야꼬부시)와
장조계 5음계형식의 이나까부시(田舍節)로 나누어졌으며
특히 都節는 나중에 트로트조의 엔가(演歌)로 발전하였으며
한국에서는 전래 전통 음악의 유산으로서 남아 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의 일본통치 시절의 영향으로 알게 모르게
해방후의 우리 교과서 속에서의 과도한 일본 음계의 채택이
우리음악계에서의 왜색시비의 온상이 되어 온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음악 장르를 크게 분류하여
- 순수음악인이 창작한 예술가곡으로 향수가 지식인에 한정되고
- 거의가 관주도 만든 국민가곡으로 친국민적이지 못하고
- 경음악인이 작곡한 유행가요곡으로 일반대중의 수요가 높으며
- 전래 전통을 이으려는 신민요(신창악)등으로 편의상 나눕니다만
- 질문제가 논란이던 뉴에이지음악 등의 상륙도 크게 눈에 띄입니다.
이러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장르를 나누어 음악의 質級의 高低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정서의
순화와 고양 내지 카타르시스의 정도가 관건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술가곡의 시조격인 난파 선생조차 후배를 위하여 가요곡을 작곡
한 것을 필두로 김동진옹과 최영섭선생 또한 가요곡을 작곡하였으며
조두남선생이 최초로, 뒤이어 김동진선생이 영화음악을 작곡하였고
또 김동진선생은 후반인생을 신창악운동에 매진 진력하였습니다.
우리의 선인이나 선배들이 보여준 실천예들이 바로 이러한 바에야
장르야 무엇이던 노래가 즐겁고 감동을 주기만 한다면 다 좋은 것이
라고 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