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가 홍일중 선생
鄭宇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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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9
2015.09.06 03:03
작사가 壹中 洪佑杓 선생
홍일중선생은 1935년 을해년 서울 용산 태생입니다.
경기중학을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전공공부와는 달리 한때 건축관계회사를 경영하였습니다.
현재 한글학회 이사이며 동학회의 세계문자연구소 원장으
로 미디어기기에 대한 신속하고 획기적인 한글입력 방법을
특허 출원중에 있어 앞날이 퍽 고무적입니다.
내가 洪선생을 가까이서 뵈온 것은
우리 내마음의노래가 전국의 동호인과 함께 경남 하동으로
음악여행을 갔을 때 쯤부터이었습니다. 근 10년간을 때로는
부대끼며 때로는 남다른 사랑을 받으며 애증과 친소를 교차
하여 가며 지내온 세월이었지만 이제사 선생을 조금 알게 되
었고 남에게도 얼마큼 소개할 정도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연주곡 중 "바람아" 는
대혁명의 시작도 비둘기 같은 여리고 평화스런 작은 사고에서
출발하듯이, 아기도 아닌 아가의 가녀린 숨결로 시작하여 마침
내 큰 무리, 큰 세력으로 성장하여 사회변혁의 대과업을 완수
하는 인문학적 진리구조를 표현했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선생의 역시작 아, 금강산의 사계절 연가곡은
洪선생이 최영섭선생과 함께 만들어낸 우리가곡중의 백미입
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영산
金剛山은 꽃이 아름답게 피어 경연하는 봄철 이름이고
여름은 다북쑥이 무성하듯 온통 녹색으로 물드는 蓬萊山이고
가을은 온산의 단풍이 빨갛게 옷입고 치장하는 楓岳山이고
겨울은 눈속에 만물상을 감추고 바위 뼈만 앙상산 皆骨山입니
다. 이 노래는 금강산의 사계절을 빌어 우리나라의 빛나는 자
연 풍광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실은 우리 나라의 앞날을 탄탄
하게 설계하는 조국찬가요 조국에 드리는 진정한 칸타타입니다.
이 밖에도 洪선생의 시작품이나 가사로는
보현봉(최영섭 곡), 바람아(이수인 곡), 하나산아(하나산은
한라산을 가리키는 말로 조국이 하나되는 통일을 희구하고
있는 작품으로 이안삼 / 허방자선생이 각각 별도로 작곡)와,
하얀등대 / 가을 꽃 한 송이 / 노을(김규태 곡) 등과 최근래
에 쓴 이어도산아( 해녀노래. 이안삼 합창곡)등이 있습니다.
홍일중(洪壹中)선생은
多夕 유영모(柳永模, 1890.3.13 ~ 1981.2.3)선생과
씨알 함석헌(咸錫憲, 1901.3.13 ~ 1989.2.4)옹이 사랑하는 몇
안되는 제자로서 특히 한국의 석학 함석헌선생과는 일찍 학창
시절부터 줄곧 34년간을 학문과 민주쟁취투쟁에 길을 같이한
실천가였습니다.
독일 아니 세계 어디에고 바그네리언이 있듯이
나도 한때는 심각한 함서커네리언이었습니다.
咸선생의 "뜻으로 보는 한국사"는 역사와 문화 인식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스도 반도국이었지만 문화력으로
사방을 사령 지휘하였듯이, 우리도 국력과 문화력을 길러 사방
에 호령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하는 가르침과 또 하나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초상화는 마음속에 그려진 초상화라하신 정신
주의적 문화관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洪선생의 본 이름은 도울 佑자, 자루 杓자로 쓰는 홍우표이며
壹中이란 이름은 多夕선생이 中道만이 참된 진리라는 뜻으로
그에게 내려 주신 아호라고 합니다.
산과 들을 비호같이 휘휘 휘젓고 다니는 건강한 모습에
천진한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하여 가던 길을 멈추기 예사이고
선생은 즉석에서 심오한 시를 써내는 달란트를 타고 났었고
그림과 미술에서도 조예가 깊고 그밖의 다른 학문과 예술등
여러분야에 밤을 하얗게 세워가며 토론하며 일가견을 펼치는
이론가이며 학구파였습니다.
어쩌다가 한번은 선생이 沙虛 한명희 선생을 만나
비목 가사의 우수성을 설파한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잘못하면 얼부므리고 마는 아부성 발언이 될 상황을 이렇게
정리해 주어서 꼿꼿한 선비 한 선생을 감동시키고 말았습니다.
사전에도 없는 비목이란 단어를 비석보다 친근하게 만들었고
초연(硝煙)이란 진중언어를 널리 일반인에게 알리는 공이 있고
양지로 끝낼 말에 "녘"을 더하여 률조를 기막히게 맞추었다는
찬사에 평소 표정관리에 엄격한 한선생마저 기쁜 표정을 감추
지 못하였습니다. 이어서 양평군 문화센터 전람회를 본 미술평
은 두분을 10년지기로 고리맺어 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수인선생의 댁에 가면
잘 그려진 이선생의 연필 뎃상 초상이 걸려 있습니다.
이것은 홍일중 선생이 댁을 방문한 기념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아마 10여년의 연륜이 넘게 반복한 것으로 식탁위에 놓고 밥
먹듯이 매일 쓰고 공부하는 노자 도덕경과 더불어 두분 사이의
우정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증표일 것입니다.
홍일중선생은 1935년 을해년 서울 용산 태생입니다.
경기중학을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전공공부와는 달리 한때 건축관계회사를 경영하였습니다.
현재 한글학회 이사이며 동학회의 세계문자연구소 원장으
로 미디어기기에 대한 신속하고 획기적인 한글입력 방법을
특허 출원중에 있어 앞날이 퍽 고무적입니다.
내가 洪선생을 가까이서 뵈온 것은
우리 내마음의노래가 전국의 동호인과 함께 경남 하동으로
음악여행을 갔을 때 쯤부터이었습니다. 근 10년간을 때로는
부대끼며 때로는 남다른 사랑을 받으며 애증과 친소를 교차
하여 가며 지내온 세월이었지만 이제사 선생을 조금 알게 되
었고 남에게도 얼마큼 소개할 정도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연주곡 중 "바람아" 는
대혁명의 시작도 비둘기 같은 여리고 평화스런 작은 사고에서
출발하듯이, 아기도 아닌 아가의 가녀린 숨결로 시작하여 마침
내 큰 무리, 큰 세력으로 성장하여 사회변혁의 대과업을 완수
하는 인문학적 진리구조를 표현했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선생의 역시작 아, 금강산의 사계절 연가곡은
洪선생이 최영섭선생과 함께 만들어낸 우리가곡중의 백미입
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영산
金剛山은 꽃이 아름답게 피어 경연하는 봄철 이름이고
여름은 다북쑥이 무성하듯 온통 녹색으로 물드는 蓬萊山이고
가을은 온산의 단풍이 빨갛게 옷입고 치장하는 楓岳山이고
겨울은 눈속에 만물상을 감추고 바위 뼈만 앙상산 皆骨山입니
다. 이 노래는 금강산의 사계절을 빌어 우리나라의 빛나는 자
연 풍광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실은 우리 나라의 앞날을 탄탄
하게 설계하는 조국찬가요 조국에 드리는 진정한 칸타타입니다.
이 밖에도 洪선생의 시작품이나 가사로는
보현봉(최영섭 곡), 바람아(이수인 곡), 하나산아(하나산은
한라산을 가리키는 말로 조국이 하나되는 통일을 희구하고
있는 작품으로 이안삼 / 허방자선생이 각각 별도로 작곡)와,
하얀등대 / 가을 꽃 한 송이 / 노을(김규태 곡) 등과 최근래
에 쓴 이어도산아( 해녀노래. 이안삼 합창곡)등이 있습니다.
홍일중(洪壹中)선생은
多夕 유영모(柳永模, 1890.3.13 ~ 1981.2.3)선생과
씨알 함석헌(咸錫憲, 1901.3.13 ~ 1989.2.4)옹이 사랑하는 몇
안되는 제자로서 특히 한국의 석학 함석헌선생과는 일찍 학창
시절부터 줄곧 34년간을 학문과 민주쟁취투쟁에 길을 같이한
실천가였습니다.
독일 아니 세계 어디에고 바그네리언이 있듯이
나도 한때는 심각한 함서커네리언이었습니다.
咸선생의 "뜻으로 보는 한국사"는 역사와 문화 인식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스도 반도국이었지만 문화력으로
사방을 사령 지휘하였듯이, 우리도 국력과 문화력을 길러 사방
에 호령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하는 가르침과 또 하나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초상화는 마음속에 그려진 초상화라하신 정신
주의적 문화관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洪선생의 본 이름은 도울 佑자, 자루 杓자로 쓰는 홍우표이며
壹中이란 이름은 多夕선생이 中道만이 참된 진리라는 뜻으로
그에게 내려 주신 아호라고 합니다.
산과 들을 비호같이 휘휘 휘젓고 다니는 건강한 모습에
천진한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하여 가던 길을 멈추기 예사이고
선생은 즉석에서 심오한 시를 써내는 달란트를 타고 났었고
그림과 미술에서도 조예가 깊고 그밖의 다른 학문과 예술등
여러분야에 밤을 하얗게 세워가며 토론하며 일가견을 펼치는
이론가이며 학구파였습니다.
어쩌다가 한번은 선생이 沙虛 한명희 선생을 만나
비목 가사의 우수성을 설파한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잘못하면 얼부므리고 마는 아부성 발언이 될 상황을 이렇게
정리해 주어서 꼿꼿한 선비 한 선생을 감동시키고 말았습니다.
사전에도 없는 비목이란 단어를 비석보다 친근하게 만들었고
초연(硝煙)이란 진중언어를 널리 일반인에게 알리는 공이 있고
양지로 끝낼 말에 "녘"을 더하여 률조를 기막히게 맞추었다는
찬사에 평소 표정관리에 엄격한 한선생마저 기쁜 표정을 감추
지 못하였습니다. 이어서 양평군 문화센터 전람회를 본 미술평
은 두분을 10년지기로 고리맺어 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수인선생의 댁에 가면
잘 그려진 이선생의 연필 뎃상 초상이 걸려 있습니다.
이것은 홍일중 선생이 댁을 방문한 기념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아마 10여년의 연륜이 넘게 반복한 것으로 식탁위에 놓고 밥
먹듯이 매일 쓰고 공부하는 노자 도덕경과 더불어 두분 사이의
우정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증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