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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

鄭宇東 0 1944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


ㅡ 말을 위한 기도 / 이 해 인 ㅡ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에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내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짓는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해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강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겪는 어둠의 순간들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리는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 즐거운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 가게 하소서. 아멘
 


ㅡ 푸줏간의 인심 ㅡ

행세깨나 하고 사는 두 양반이 장에 갔다가 푸줏간에 가서 고기를 삽니다.
한 양반은 하대하여 주인의 이름을 부르며 ㅡ길상이놈 고기 한근 떼주어ㅡ
했습니다. 그러자 단번 칼질에 한덩어리 뚝딱 잘라 짚으로 메어 건네 주었
습니다. 다른 한 양반은 아무리 백정이지만 처자들 앞에서 그집의 가장을
하대 할 수가 없어서 ㅡ 박서방 나도 고기 한 근 주시게 ㅡ 하였더니 정성
스레 맛난 부분을 골라 푸짐히 잘라 잘 묶어서 건네 줍니다.
고기를 먼저 받은 양반이 나중 고기가 배나 더 큰 것을 보고 부아가 나서
ㅡ 같은 한 근인데 왜 크고 작은 차이가 나느냐 ㅡ 하고 따졌읍니다.
ㅡ 예, 사람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먼젓 것은 상길이 놈이 짤랐고, 뒤엣 것
    은 박서방이 잘랐으니 다를 수 밖에 없습지요.
먼젓 양반이 자업자득이라 할 말을 잃은 것은 불문가지이지만 우리도 이런
못된 전철을랑 밟지말고 그렇게 하대하는 말을 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만 잘하면 천량 빚도 갚는다 하였는데 그까짓 고기 한 근쯤
이야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이런 속담을 좀 더 이어 가면 웃는 낯에다 그
어느 누가 침을 뱉으며 공손한 말씨에 어느 누구가 뺨을 때리겠습니까?
論語중의 신신요요(申申夭夭)는 말을 자상스럽게 하는데다가 낯빛을 (웃듯이)
밝고 환하게 한 공자님의 언행을 배워 따르도록 하는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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