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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요칼럼
 

三奴 八吏家

鄭宇東 0 1960
三奴 八吏家


우리 역사상에는 미천한 종 출신의 세 집안과 아전 출신의 여덟 집안 출신으로
크게 입신 출세한 삼노팔이가(三奴八吏家)가 있습니다.
삼노가(三奴家)는 정도전(鄭道傳), 서기(徐起), 송익필(宋翼弼)의 집안이고,
팔이가(八吏家)는 동래 정씨(東萊鄭氏) 등 여덟 집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있겠는가 하고 발분하여 新왕조을 세운 전한의 왕망(王
莽)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천한 신분으로 입신한 노예열전을 꾸미면 이들
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당시의 신분사회에서 종과 아전의 굴레
를 벗어나 출세한 입지전적 인물들입니다.

 * 삼 노 가(三 奴 家)
1) 정도전(鄭道傳, 1342~1398)
그는 아버지로부터 노약노비(老弱奴婢)약간명을 상속받았을 뿐이며, 오랫동안
유배·유랑 생활을 보내면서 곤궁에 시달렸습니다. 더욱이, 그의 부계혈통은 향리
(鄕吏)의 후예로서 아버지 때에 이르러 비로소 중앙관료의 벼슬다운 벼슬을 하였
을 뿐이며,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연안차씨(延安車氏) 공윤(公胤)의 외예얼속(外
裔孽屬)이었으며, 특히 모계에 노비의 피가 섞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혈통 때문
에 구가세족이나 명분을 중요시하는 성리학자들로부터 백안시당하는 경우가 많
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3奴家의 하나로 세인의 평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악조건을 극복하고 뛰어난 학문과 절세의 경륜으로 이성계를
도와 이씨조선의 기초를 확립하는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에게 피살되었습니다.

2) 서  기(徐起, 1523~1591)
본관은 이천(利川) 이며, 자는 대가(待可), 호는 고청(孤靑) · 구당(龜堂)이며
시호는 문목(文穆)입니다.
제자백가(諸子百家)와 기술이론에도 통달했습니다. 서경덕(徐敬德)·이지함(李
之菡) 등에게 사사, 이지함과는 각지를 유랑하며 민속과 학문을 연구했습니다.
그후 智異山과 鷄龍山에서 후학양성에 힘썼습니다. 지평(持平)에 추증되고, 공
주(公州) 충현사(忠賢祠)이 제향되었습니다. 문집에 <고청유고(孤靑遺稿)>가
있습니다.

3) 송익필(宋翼弼, 1534~1599)
할머니 감정이 안돈후의 천첩소생이어서 신분이 미천하게 분류되었습니다.
본관 여산(礪山). 자 운장(雲長). 호 구봉(龜峰) ·현승(玄繩). 시호 문경(文敬).
서출(庶出)이라 벼슬은 못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서인에 속했으며, 이이(李
珥) ·성혼(成渾) ·정철(鄭澈) 등과 학문을 논하여 성리학(性理學)과 예학(禮學)
에 통하였습니다. 문장에도 뛰어나 이산해(李山海) ·최경창(崔慶昌) ·백광홍(
白光弘) ·최립(崔?) ·이순인(李純仁) ·윤탁연(尹卓然) ·하응림(河應臨) 등과 함
께 ‘문장8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시와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경기도 고양(高陽)에서 후진양성에 힘써 문하에서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
정엽(鄭曄) ·서성(徐? ) ·정홍명(鄭弘溟) ·김반(金槃) 등 많은 학자가 배출되었
는데, 그 중 김장생은 예학의 대가가 되었다. 지평(持平)이 추증되었으며,
문집에 <구봉집龜峰集>이 있습니다.

*) 장영실(蔣英實, ?세종조?)
장영실의 조상은 원나라 소주, 항주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에 귀화하여
아산군(牙山君)에 봉해졌던 장서(張壻)의 9대손이며 그의 집안은 고려때부터
대대로 과학기술분야 고위관직을 역임하였습니다. 그의 부친은 고려말 전서라
는 직책을 지낸 장성휘이며 모친이 관기였기에 장영실의 신분은 동래현(東萊
縣)의 관노(官奴)였습니다. 그의 과학적 재능으로 태종 때 이미 발탁되어 궁중
기술자 업무에 종사하였습니다.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의 자격루를 만들
었으며,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했고 그 외 여러 과학적 도구를 제작 완성하였습니다.
 
 * 팔 이 가(八 吏 家)
1) 동래 鄭씨  시조는 정회문, 정지원, 정문도, 정광필, 위당 정인보
2) 반남 朴씨  시조는 박응주, 박상춘, 박세당, 연암 박지원, 박규수
3) 한산 李씨  시조는 이윤경, 이 곡, 목은 이 색, 이 개, 이산해
4) 흥양 柳씨  시조는 유 영, 유청신, 유탁, 유 습, 유몽인, 유관순
5) 진보 李씨  시조는 이 석, 이자수, 퇴계 이황, 이안도, 이육사
6) 여흥 李씨  시조는 이은백, 이규보, 이 익, 이중환, 이언적, 이승훈
7) 여산 宋씨  시조는 송유익, 송현수, 송세림, 송 질, 송익필, 송 현
8) 창녕 成씨  시조는 성인보, 성희안, 성석연, 성삼문, 성 혼, 성기운

위에 적은 三奴八吏家 이야기는 멀고 가까운 옛날 우리나라에서
천한 노비의 집안과 한미한 아전의 집안에서 태어나 가문을 빛내고 나라의 융성
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이야기하여 줍니다. 동서고금의 노예
들의 행적을 생각해 보노라면 노예란 결코 하늘이 내린 벌이 아니고, 인간이 씌
운 굴레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아무리 그 고통이 심했다고 할지라도 자기
하나만 비범하면 얼마든지 입신양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는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숱한 속박과 수모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벼슬의 노예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여자의 노예가 되고, 어떤 사람은 세속명리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는 어떠한 우상의 노예가 되
어 있다 해도 잘못은 아닐겁니다. 괴테는 이러한 온갖 속박속에 살면서도 스스로
노예가 된줄 모르는 사람만큼 노예인 사람은 없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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