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자료실 > 신요칼럼
신요칼럼
 

끄리슈나(Krishna)

鄭宇東 0 2198
끄리슈나(Krishna)

인도에도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 같은 대서사시가 있습니다.
마하바라타(대 전쟁)와 라마야나(라마 이야기)가 곧 그것입니다.
그리스에서와 같이 이들이야기도 신화와 전설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완전한 남자와 이상적인 인간형인 람(或 라마)이 덕성만을 보여 주고
수단도 목적만큼 중요시하는 등 삶의 보다 긍정적인 면을 표상하고 있
다면 삶을 그 전체성으로 표상하는 화신은 여덟 번째 화신인 끄리슈나
입니다. 끄리슈나는"마하바라따"의 영웅으로 긍·부정적인 측면을 모
두 지닌 인물로 그려집니다. 람이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면 끄리슈나는 실제의 인간이 어떠한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 힌두교의 비시누(Vishnu)神은
유지의 신으로, 브라흐마(Brahma, 창조의 신), 시바(Shiva, 파괴의 신)
와 함께 힌두교 삼주신(트리무르티, Trimurti)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교에 수용된 뒤에는 비뉴천(毘紐天)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크리슈나
를 대표적이고 가장 완전한 化身(아바타라)로 삼고 있습니다.
비시누신은, 꼭 선택하여야 한다면, 내가 귀의하고 싶은 유일한 신입
니다. 사람들이 몽매하여 자신이 예배하는 신인지 모르더라도 무슨
신이든 그것은 유일신 비시누신에게로 귀착한다고 한 포용-관용과 자
신만만한 모습이 유일신 답다고 느껴집니다.

끄리슈나는 약 5천년 전 인도 북부 야무나강 기슭에 있는 야다바족의
왕인 바수데바와 왕비 데바키의 아들로 태어나 마투라의 왕 캄사의 박
해를 피해 목동인 난다와 야쇼다 부부의 양자로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버터를 훔치는 등 짓궂은 장난을 치는 한편, 온갖 마귀와 싸우고
손가락 하나로 고바르단 산을 들어 올려 마을 사람들을 구하는 등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장성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캄사를 물리치고 새 땅
으로 가서 왕국을 세웠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지혜로운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후 왕실 내부의 분쟁이 일어나 크리슈나의 직계 가족들
이 희생되었습니다. 실망한 크리슈나가 숲속에 들어갔는데 사냥꾼이
사슴으로 오해함으로써 크리슈나는 오발시(誤發矢)를 맞고 세상을 떠
났습니다.

일반적으로 아기들은 울면서 모태로부터 태어납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특별나게 웃으면서 태어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니체의 초인의 신 짜라투스트라와 에라스무스의 바보신 우신이 그러하
였으며 그리고 인도의 크리슈나는 웃으면서 태어난 사람처럼 시종일관
웃으며 낙천적으로 긍정적으로 살았습니다. 반면에 종교의 지도자로서
태어난 불타나 예수도, 그리고 대부분의 인류의 사표나 위인이 염세적-
부정적인 처세를 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았습니다.

크리슈나의 피리는 십자가와 정반대입니다.
십자가는 예수가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강요한 것입
니다. 반면에 크리슈나는 피리와 노래를 스스로 선택하였습니다.
크리슈나에게 피리의 선택은 본질적인 것이지만 예수에게 십자가는 불
가피적일 뿐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이 죽음의 잔을 피
할 수 있게 해달란 애절한 기도와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소서 하고 기도
한 후에도 숨을 거두기 전에 예수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크게
소리친 정황에서 그 사정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끄리슈나는 삶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흡수했습니다.
과거의 종교들은 하나같이 억압의 길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성이나
화도, 탐욕이나 집착도 억압하라고 배웁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고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자기 자
신과 싸우는 전쟁은 할만큼 하였습니다. 인류는 지난 수천년동안 이런
전쟁을 했지만 겨우 소수만이 신을 발견하고 나머지 전부는 전쟁에 패
하여 신을 만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는 과거 모든 종교에 근원적인
결함과 본질적인 결점이 있었음을 노증하고 있는 셈입니다.

끄리슈나는 모든 모순과 대립적인 면들을 받아들이고 흡수하였습니다.
낮과 밤, 여름과 겨울, 평화와 전쟁, 사랑과 폭력, 생명과 죽음이 손잡
고 같이 갑니다. 끄리슈나의 삶은 한계를 모릅니다. 그의 삶은 어떤 도
덕에도 매이지 않으며 광대무변합니다. 끄리슈나는 어떤 제한도 없이
자유롭습니다. 밟지 못할 땅이 없고, 말하지 못할 사항이 없고, 초월하
지 못할 한계가 없습니다. 이런 자유와 광대함은 끄리슈나의 깨달음이
맺는 궁극의 열매입니다.

끄리슈나는 본성적으로 평화주의자이지 호전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는 생명을 지지하고 지키기 위하여 필요하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
습니다. 생명의 가치가 위협을 받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폭력이나 전쟁
에 대항하여 참여할 것입니다. 그가 마하바라따의 대전쟁에 뛰어 든것
은 싸움에 이겨 평화를 되찾고 행복의 악기와 노래의 역할을 되살리는
목적의 방편으로서였습니다. 먼저 끄리슈나는 전쟁을 막기위해 오랫동
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피할 수 없을때는 주저없이 전쟁을 받
아들였습니다. 전쟁이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을때 기꺼이 전쟁터로 나
갔습니다.

끄리슈나는 아름다운 여인 고삐(Gopi)들과의 사랑 이야기와 아름다운
피리 연주로도 유명합니다. 신화에 의하면 끄리슈나는 샤라드 뿌르니마
(Sharad Purnima, 11월 즈음의 만월)에 즐겨 찾는 숲속의 장소로 가서
피리를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 신성하고 달콤한 선율이 마을 목동의 아
내나 딸인 고삐들의 귀에 이르렀다. 그들은 그 매혹적인 소리에 홀려 집
안일, 우는 아이들, 토라진 남편들을 남기고는 그 음악소리를 따라 야무
나 강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밤새도록 끄리슈나와 빙빙 도는
열정적인 춤을 추었습니다. 그는 동시에 모든 고삐들의 춤 파트너가 되
어 춤을 추었습니다. 그래서 고삐들은 그가 많은 형태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격정적인 춤의 장관을 보기 위해 신들과 죽은 이들이
지상으로 내려 왔습니다.

끄리슈나는 이 황홀한 춤이 절정에 달할 때 사라지곤 했습니다.
끄리슈나는 모든 고삐와 가까웠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고삐는 결혼한
여성인 라다였습니다. 라다와 끄리슈나는 영원한 연인의 상징이 되어 왔
습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인들은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
야기를 시로 써왔고, 이 사랑의 주제는 노래와 회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신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인도의 박띠 사상에 근거해 보면
끄리슈나의 모든 신봉자들이 신성한 연인인 끄리슈나의 연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