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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 역적

鄭宇東 0 2016
간신 역적

 * 한명회
한명회(韓明澮, 1415~1487) 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
시호는 충성(忠成)입니다.
아버지는 증영의정(贈領議政) 기(起)이며, 어머니는 예문관대제학 이적(李逖)
의 딸입니다. 또한 딸이 예종비 장순왕후(章順王后)와 성종비 공혜왕후(恭惠
王后)입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조상의 음덕
으로 음보로 벼슬길에 올라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데 공을 세워 총신이 되고
성종대까지 고관요직을 역임하면서 조선 초기의 군국대사에 많이 참여했으며,
부와 영화를 한몸에 누렸습니다. 세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연산군대에 와서 폐비윤씨사건에 연루되어 부관참시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 유자광
유자광은 조선 7대 세조부터 9대 연산군 때의 간신이며, 조선 초기 온갖 정치
사건에 관여했던 인물입니다.
남이의 옥, 무오사화, 중종반정 등에 관여하여 본래 한미한 출신에서 나중에
는 세조의 총애를 바탕으로 벼락출세하여 권세를 부렸고,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자리에까지 오른 뒤 사림을 탄압한 등의 사건으로 조선의 3대 간신에
올랐습니다.

 * 이이첨
이이첨은 광해군 시대 북인의 영수로서 광해군 재위기간 내내 국정을 장악
하여, 임해군, 능창군, 영창대군이 모두 죽고, 인목대비를 폐서인 하여 서인
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개인적 평가와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이첨 자신은 사리사욕이 매우
적었으며, 이이첨과 대북파의 파멸 이후 서인들이 얼마나 나라를 말아먹었는
지를 생각하면 조선3대간신이란 말은 그야말로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완용등 을사5적
이완용(李完用, 1856~1926)은 한말의 문신·친일민족반역자입니다.
경기도 광주 태생으로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경덕(敬德), 호는 일당(一堂)
입니다. 아버지는 석준(奭俊)이며, 10세 때 판중추부사 호준(鎬俊)에게 입양
되었습니니다. 1882년(고종 19) 증광별시에 합격하여 주서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친러파로 아관파천을 주도했으나 이후 일본이 세력을 확장하자 을
사조약·한일합병의 주역으로 민족을 배반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중추원
의원·고문을 역임하면서 각종 단체에 참가하여 친일행적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리하여 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1905년 강제로 체결한 을
사조약에 찬성하여 승인한 5명의 대한 제국의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
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을 가리켜
을사5적(乙巳5賊)이라 하는데 그는 이 5적의 수괴였습니다.


이 외에 조선의 간신이라 불리는 인물에는
임사홍(任士洪), 김자점(金自點) 등이 있습니다.

 * 임사홍(任士洪, 1445~1506)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이의(而毅).
임사홍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훈구파의 거물로 갑자사화를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좌찬성 원준(元濬)입니다. 효령대군의
아들 보성군(寶城君)의 사위이며 아들 광재(光載)와 숭재(崇載)도 각각 예종
의 딸 현숙공주(顯肅公主)와 성종의 딸 휘숙옹주(徽淑翁主)에게 장가들어
왕실과 밀착된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 김자점
김자점(金自點, 1588~1651)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인조반정을 주도한 공
서파(功西派)의 영수로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성지(成之), 호는 낙서(洛西)입
니다. 아버지는 함(王+函 )이며 성혼(成渾)이 그의 스승입니다.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가 병조좌랑에 이르렀습니다. 1622년(광해군 14)에
이귀(李貴)·최명길(崔鳴吉)·이괄(李适) 등과 함께 광해군과 대북파(大北派)
를 몰아내고 인조를 추대했습니다. 곧 동부승지가 되었고 정사공신(靖社功
臣) 1등에 봉해졌습니다.
 
이괄의 난 때에는 옥에 갇힌 기자헌 등 북인 인사 40명의 전격 처형을 건의
하고 그뒤 도원수로 병자호란 당시 대처미숙으로 파면되었다가 복직하여,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고 심기원 일파를 제거한 뒤 좌의정을 거쳐 영
의정을 지냈습니다. 이후 친명파이자 북벌론자인 임경업 등을 제거한 뒤,
효종이 즉위하고 송시열 등의 등용으로 북벌론이 대두되자 효종의 북벌을
청나라에 밀고하였습니다. 이후 유배되었다가 아들 김식의 역모사건이 발
생하자 사형당했습니다.
좌의정 쌍곡 김질의 5대손이며 백범 김구의 방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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