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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 거상 임상옥

鄭宇東 0 2489
의주 거상 임상옥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 최인호가 쓴 소설 상도(商道)는
작가의 혼이 담겨져 있는 온 국민의 인기를 독차지한 작품입니다.
최인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 답게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해신’,
 ‘잃어버린 왕국’, ‘제4의 제국’ 등등 수많은 책을 집필하였고 아직도 책들의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한 번쯤은 읽어봤을 법한 책들입니다.

그 중 ‘상도’는 최인호의 대표작이 아닐 수도 있고 대표작일 수도 있습니다.
그 수많은 책들 중에 하나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
는 이유는 그가 집필한 책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
다. 책의 주인공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거상 임상옥(林尙沃, 1779 ~
1855)입니다. 그 당시에 조선을 대표하던  의주의 만상(灣商),  개성의 송상
(松商), 한강유역의 강경상(江京商), 평양의 유상(柳商), 동래의 내상(萊商)
등이 있어서 조선은 당시 상업에 있어서 큰 발전을 이룩한 나라였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임상옥은 그 상단들 중에 의주상인 만상의 한낱 상인으로써
시작을 합니다.

소설속에서 조선후기의 거상 임상옥( 林尙沃)이 
계영배(戒盈杯)를 늘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원래 이 계영배(戒盈杯)는
고대 중국의 춘추시대의 춘추오패(春秋五覇)중 하나인 제환공(齊桓公)이
군주의 올바른 처신을 위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경계하며 늘 곁에 놓아
마음을 가지런이 했던 그릇(欹器)이라 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리었
습니다. 『순자(荀子)』에서 후에 공자(孔子)가 제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그릇에 구멍이 뚫려 있음에도 술이 새지 않다가 어느 정도 이상 채웠을 때
술이 새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음을 지키고, 천하에
공을 세우고도 겸양하며, 용맹을 떨치고도 검약하며, 부유하면서도 겸손함
을 지켜야한다며 이 그릇의 의미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과학자인 하백원(河百源, 1781~
1845)이 술이 가득채우면 새어나가는 잔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비슷한
시기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강원도 홍천 지방의 전설로 내
려오고있다. 우명옥은 당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
물로, 후에 자신의 방탕한 삶을 뉘우치면서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하며 이
잔은 후에 조선후기의 거상 임상옥(林尙沃, 1779~1855)에게 전해지며
그는 이 잔을 늘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조선 역사상 전무
후무한 거상으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임상옥의 계영배에 새겨진
‘계영기원(戒盈祈願) 여이동사(與爾同死)’.를
풀이하면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라는 뜻으로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의주 거상 林相沃은 호가 가포(稼圃)였습니다.
채마밭을 가꾸는 사람으로 겸손하게 雅號를 썼지만 그의 사상을 담은
"가포어록"을 남겨 후인들에게 교훈을 남겼습니다. 

''장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이다. 인사야말로 최고의 예(禮)인
것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군자는 먼저 신임을 얻은 후에 사람
을 부린다. 만약 신임을 얻기전에 사람을 부리려 하면 사람들은 자기들을
속이려 한다고 생각한다.’ 장사도 이와 같다. 신임을 얻는 것이 장사의 첫
번째 비결인 것이다. 신임을 얻지 못하면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
다.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사로서 예를 갖추어야
한다.”

“사람이 이익대로 한다면 원망이 많다(放於利而行 多怨). 이익이란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니 필히 상대방에게 손해를 주는 결과가 된다. 그래
서 이익을 쫓으면 원망을 부르기 쉬우니 결국 ‘의를 따라야 한다(義之興比).’
따라서 ‘군자가 밝히는 것은 의로운 일이요, 소인이 밝히는 것은 이익인 것
이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
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 ‘商卽人(상즉인)’ ‘장사는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장사’라는 상도에 있어서의 제1조는 임상옥이 평생을 통해 지켜나간
금과옥조였던 것이다.

당시 의주 상인들은 삼계(三戒)라 하여 ‘친절’, ‘신용’, ‘의리’를 상도의 계율
로 굳게 지켜나가고 있었다. 만약에 고용살이하는 점원이 이 세 가지의
계율을 한 가지라도 깨트리면 즉시 상주는 전 상계에 이를 통문하여 그 점
원은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하는 불문율이 있었던 것이다.
‘친절’, ‘신용’, ‘의리’, 이 세 가지의 계율은 의주 상인들의 불문율이었다.
그 중에서 점원이 상주의 돈을 떼어먹거나, 저울을 속이거나, 가짜의 물건
으로 남을 속이는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그 즉시 점원은 상점에서 추
방되고 다시는 상계에 발을 못 붙이는 파문선고를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재산 만을 놓고 보면,
이렇게 부러울 게 없던 임상옥(林尙沃)이었지만 불행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먼저 임상옥은 가정적으로 크게 불행했습니다. 그의 두 동생과
아들 하나가 모두 일찍 죽는 슬픔을 겪은 데다가 그의 집이 너무 참람하게
크고 웅장하여 어느 암행어사가 가옥을 거의 전부 부숴버리는 수모도 당
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생명이 위험한 지경의 중죄로 몰릴 뻔하기
도 했습니다. 임상옥의 높은 뜻은 죽어서도 이어졌습니다.
그는 자손을 위한 ‘영구의 계책’으로 사토(私土)를 궁지(宮地)로 만들어
영원히 팔지 못하도록 해두었고, 이 궁지는 그의 증손자가 보전해 오다가
훗날 ‘불이농장(不二農庄)’을 세웠다고 합니다.

젊어서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거상(巨商)으로
말년에는 남들에게 큰 선행을 베풀던 그가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만시(輓詩)로 그 인격을 이렇게 기렸습니다.
"材上平如水  제물 위에서는 평평하기 물과 같고
人中直似衡  사람 가운데서는 곧기가 저울대 같다"고 칭송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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