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
鄭宇東
1
2041
2015.02.17 14:08
새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
새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그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가
그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거나 성공한 내용의 설화가 많습니다.
......................................................................................................
새의 말을 알아듣는 아이가 길에서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니
“고기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그쪽으로 가 보니
송장이 있었다. 놀라서 돌아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범인이니까 다시 와 본 것이 아니냐며 살인자로 몰았다. 아이
는 새소리를 알아듣고 와 본 것뿐이라고 하였으나 곧이 듣지
않았으므로 관에 가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사또는 아이의 말
이 사실인가 시험을 해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제비집에서 새
끼를 꺼내 도포 소매에다 넣고 아이에게 어미 제비가 무엇이라
하는가 맞추어 보라고 했다. 아이는 제비 울음소리를 듣더니
‘왜 내 새끼를 소매에 넣었느냐?’라고 한다고 하였다. 사또는 과
연 이 아이는 짐승의 말을 알아들으니 살인하지 않았다 하며 석
방하였다. 이후 이 아이는 중국으로 가서 중국 천자가 내 준 과제
를 해결하고 그 상으로 평양감사를 제수받고 돌아와 잘 살았다.
......................................................................................................
이 유형의 설화는 <동물 언어를 아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기본형은 동물 언어를 알아
듣는 능력을 획득하지만, 그 사실을 발설하면 죽는다는 금기 때문
에 곤경에 처하다가 다른 동물의 말을 알아듣고 위기를 모면합니
다. 대부분 작품에서는 위기를 모면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각편에
따라 인재로 평가받거나 출세를 하는 예가 있습니다. 술과 고기가
사람 술, 사람 고기임을 간파하거나 사또의 태생에 대해 알아 맞
히고, 중국 천자의 과제를 해결하는데서 드러난 신통력 덕분입니
다. 북창 정렴(鄭濂, 1506∼1549) 같은 역사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기지와 신통력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한편 변이형으로 쥐의 소리를 듣는 능력 때문에 첫날밤에 소박
당했다가 다시 그 능력 덕분에 남편과 시댁에게 인정받는다는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며느리>형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설화는 비범한 능력에 대한 인간의 소망, 그것의 적절한 활용
에 대한 경계, 성공에 대한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그가 신화적 세계처럼 자연계와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
서 이 설화는 자연계를 비롯하여 주변 세계에 관심을 갖고 상호소
통하는 신화적 인간관을 환기시킨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가 새의 말을 알아 듣고 새에게도 설교
하는 것이 바로 자연계를 포함한 주변 세계에 관심과 사랑을 가지
고 상호소통하는 신화적 인간관의 표현이었음을 이제사 이해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羅語: Sanctus Franciscus Assisiensis,
伊語: San Francesco d'Assisi, 1181 또는 1182 ~ 1226. 10. 3)는
이탈리아의 로마 가톨릭교회 수사이자 저명한 기독교 설교가입
니다. 또한, 프란치스코회의 창설자이기도 하며, 프란치스코 사
후 프란치스코회는 작은형제회와 카푸친 작은형제회,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의 1회 수도회, 2회 클라라회, 3회 재속회로 나뉘었
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생전에 사제 서품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역사적으 로 유명한 종교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프란치스코의 부친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매우 번영한 상인이었던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였습니다. 혈기왕성한 부유층 자제로 태
어나 자란 그는 군인으로서 전투에 참여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
만 1204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가던 길에 환시를 체험하고 아시
시로 돌아간 프란치스코는 세속적 생활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로마로 순례를 떠난 그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구걸하는 걸인들을 보고 깊은 연민을 느껴 이후로 평생 가난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시로 돌아간 그는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그의 삶에 감동을 받아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
겨났습니다. 프란치스코는 1210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인가를
받아 남자수도회인 프란치스코회를 설립하고 그 다음에 여자수도회
인 클라라회와 제3회를 설립하였습니다.
1226년 10월 3일 시편 142(141)편을 읊으며 선종하였습니다.
1228년 7월 16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습
니다. 그는 동물과 자연환경, 상인 뿐만 아니라 시에나의 가타리나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새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그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가
그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거나 성공한 내용의 설화가 많습니다.
......................................................................................................
새의 말을 알아듣는 아이가 길에서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니
“고기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그쪽으로 가 보니
송장이 있었다. 놀라서 돌아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범인이니까 다시 와 본 것이 아니냐며 살인자로 몰았다. 아이
는 새소리를 알아듣고 와 본 것뿐이라고 하였으나 곧이 듣지
않았으므로 관에 가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사또는 아이의 말
이 사실인가 시험을 해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제비집에서 새
끼를 꺼내 도포 소매에다 넣고 아이에게 어미 제비가 무엇이라
하는가 맞추어 보라고 했다. 아이는 제비 울음소리를 듣더니
‘왜 내 새끼를 소매에 넣었느냐?’라고 한다고 하였다. 사또는 과
연 이 아이는 짐승의 말을 알아들으니 살인하지 않았다 하며 석
방하였다. 이후 이 아이는 중국으로 가서 중국 천자가 내 준 과제
를 해결하고 그 상으로 평양감사를 제수받고 돌아와 잘 살았다.
......................................................................................................
이 유형의 설화는 <동물 언어를 아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기본형은 동물 언어를 알아
듣는 능력을 획득하지만, 그 사실을 발설하면 죽는다는 금기 때문
에 곤경에 처하다가 다른 동물의 말을 알아듣고 위기를 모면합니
다. 대부분 작품에서는 위기를 모면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각편에
따라 인재로 평가받거나 출세를 하는 예가 있습니다. 술과 고기가
사람 술, 사람 고기임을 간파하거나 사또의 태생에 대해 알아 맞
히고, 중국 천자의 과제를 해결하는데서 드러난 신통력 덕분입니
다. 북창 정렴(鄭濂, 1506∼1549) 같은 역사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기지와 신통력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한편 변이형으로 쥐의 소리를 듣는 능력 때문에 첫날밤에 소박
당했다가 다시 그 능력 덕분에 남편과 시댁에게 인정받는다는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며느리>형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설화는 비범한 능력에 대한 인간의 소망, 그것의 적절한 활용
에 대한 경계, 성공에 대한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그가 신화적 세계처럼 자연계와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
서 이 설화는 자연계를 비롯하여 주변 세계에 관심을 갖고 상호소
통하는 신화적 인간관을 환기시킨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가 새의 말을 알아 듣고 새에게도 설교
하는 것이 바로 자연계를 포함한 주변 세계에 관심과 사랑을 가지
고 상호소통하는 신화적 인간관의 표현이었음을 이제사 이해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羅語: Sanctus Franciscus Assisiensis,
伊語: San Francesco d'Assisi, 1181 또는 1182 ~ 1226. 10. 3)는
이탈리아의 로마 가톨릭교회 수사이자 저명한 기독교 설교가입
니다. 또한, 프란치스코회의 창설자이기도 하며, 프란치스코 사
후 프란치스코회는 작은형제회와 카푸친 작은형제회,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의 1회 수도회, 2회 클라라회, 3회 재속회로 나뉘었
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생전에 사제 서품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역사적으 로 유명한 종교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프란치스코의 부친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매우 번영한 상인이었던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였습니다. 혈기왕성한 부유층 자제로 태
어나 자란 그는 군인으로서 전투에 참여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
만 1204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가던 길에 환시를 체험하고 아시
시로 돌아간 프란치스코는 세속적 생활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로마로 순례를 떠난 그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구걸하는 걸인들을 보고 깊은 연민을 느껴 이후로 평생 가난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시로 돌아간 그는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그의 삶에 감동을 받아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
겨났습니다. 프란치스코는 1210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인가를
받아 남자수도회인 프란치스코회를 설립하고 그 다음에 여자수도회
인 클라라회와 제3회를 설립하였습니다.
1226년 10월 3일 시편 142(141)편을 읊으며 선종하였습니다.
1228년 7월 16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습
니다. 그는 동물과 자연환경, 상인 뿐만 아니라 시에나의 가타리나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