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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나라

정덕기 0 990
문화와 나라

정 덕기

  약 30년 전 쯤 나는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었다. 공부도 힘들고 문화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토요일마다 열리는 중고시장 정도였으리라. 매주 토요일마다 어느 대형마트 옆, 길에서 열리는 중고시장에 갔다. 참으로 독일 사람들은 검소하여서 그런지, 우리 같으면 벌써 아궁이에 몇 번이고 들어갔을 그런 별별 물건들을 꺼내놓고 팔았다. 그 중에 잊지 못하는 물건은 1930∼40년대의 지구본이다. 외국에 가면 모두 다 애국자가 된다고 했든가, 그 지구본을 보는 순간 한국이 그 속에 어디쯤 있을까 궁금해져서 나도 모르게 지구본을 돌려보았다. 그 후에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졌다. 왜냐하면 그 지구본에는 한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돌려보아도 한반도와 비슷하게 생긴 모양은 있어도 KOREA라고 쓴 글자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자세히 보다가 한반도와 일본열도같이 생긴 모양 전체 위에 큰 글씨로 드문드문 J-A-P-A-N 이라는 글자를 발견하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 그렇구나. 우리는 우리나라가 반만년 동안 쉼 없이 유유히 흘러온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때 세계인의 눈에는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이었구나. 대한민국은 이 지구상에 없었구나. 돌이켜보니 어디 그 때뿐이었겠는가. 고려시대 대몽항쟁이후에도, 조선시대 병자호란이후에도 세계인의 눈에는 대한민국이 없지 않았겠는가.   
  역사가 생긴 이래로 한국은 999회의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고 일본은 주장하고 있다. 그럼 그 많은 침입을 무엇으로 막아내고 21세기에 우뚝 솟아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것이 군사력이었겠는가. 정치력이었겠는가. 아니면 경제력이었겠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군사력 정치력 경제력으로만 우리나라가 있었다면 한국은 999회가 아니라 9번의 침입에도 이 지구상에서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세계인의 눈에는 있기도 없기도 하면서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그 힘은 무엇인가. 나는 감히 그 힘이 문화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본은 한일합방 이후 총칼로서 다스리는 무단정책을 계속하다가 기미년 3. 1운동이후 무단정책을 문화정책으로 바꾸었다. 총칼로 다스리는 것보다, 한국 고유의 문화를 없애는 것이 한결 쉽고 현명한 정책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 후 많은 애국자들이 그 문화정책에 속아 변절하였다. 그러니 이 또한 얼마나 간악한 속임수였던가. 그들은 총칼을 내려놓는 대신 우리문화를 말살하기 시작했다. 우리말과 글을 못 쓰게 하고 그 대신 모든 공교육에 일본의 말과 글을 쓰게 하였다. 우리 이름을 못 쓰게 하고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하게 하였다. 우리의 노래를 못 부르게 하고 일본 가요를 부르게 하였다. 해방이 된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열심히 부르고 있는 트로트가 그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수없는 조작, 30만권 이상의 역사서적을 불태웠다. 한국의 문화를 없애는 대신 그 속을 일본문화로 채워나갔다. 다시 말해 한국을 일본화 시키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다 없애고 한국국민의 뇌리에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사라지는 순간 한국은 일본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정말 그 전에 해방이 되었으니 망정이지 이 얼마나 아찔한 순간인가.
  지구상에는 참으로 많은 나라가 존재하였고 또한 많은 나라가 사라져갔다. 그 망한 나라는 결코 군사력 정치력 경제력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문화를 지키지 못하여 망하였다. 문화를 지키는 한, 내가 독일 중고시장에서 지구본에 나타난 모습을 보았던 것처럼 일시적인 침범은 허용할지 모르나 영구적으로 집어삼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청나라가 망한지 이제 100년이 조금 지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위에 청나라가 다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청나라 문화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문화가 없어져 청나라 사람임에도 정작 본인은 청나라 사람인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베트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10년 안에 독립할 것으로 믿고 있다. 왜냐하면 티베트는 청나라에 비해 턱없이 미약해 보이지만 중국의 지배 속에서도 고유의 문화를 잘 지키고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가 있는 나라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땅을 빼앗기고도 2천년이 지나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2천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도 결코 그들만의 고유문화를 잊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면 정치 국방 경제 등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문화이다.

  독일인에게 그들의 역사 속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나 베토벤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영국 사람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배웠다. 과연 그 질문을 우리에게 한다면 성웅 이순신 혹은 세종대왕이라고 대답하지, 박연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보니 독일에서는 어디를 가도 베토벤광장, 괴테하우스, 모차르트거리, 바그너거리, 슈만거리, 등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문화인을 기리는 명칭이 수도 없이 많다.
  몇 년 전 컴퓨터백신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과학자, 경영학자 겸 의사인 어떤 분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모든 일들을 멀리하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왜 그랬을까?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대통령이, 지금까지 해 왔던 그 무엇보다도 더 명예롭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은 아닐까?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 라이프치히에는 쿠르트 마주어라는 지휘자가 있었다. 그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있으면서 라이프치히 광장 ‘월요 시위’에 앞장서 동독 서기장 호네커를 몰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많은 동독인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기 위해 국회승인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대통령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국민들의 추대여론이 들끓자 ‘대통령은 실업자나 하는 것이다. 훌륭한 직업인 지휘자를 두고 할 일이 아니다. 호네커를 제거하는데 까지 만이 나의 역할이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뉴욕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직장을 옮겨버렸다. 나는 위 두 분을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위 두 분을 둘러싼 사회분위기를 비교하고 싶은 것이다. 독일에서는 지휘자가 대통령보다 결코 덜 명예로운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대통령이 되고자하는 그 어떤 분도 독일이었으면 하던 일을 계속하였을 수도 있고, 쿠르트 마주어도 한국인이었다면 지휘자를 버리고 대통령이 되고자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장례를 국장으로 치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통령뿐이다. 그 분의 업적과는 상관없이 대통령이면 가능하다. 그래서 누구나 다 가능하다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핀란드는 1957년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장례를 국장으로 하였다. 이처럼 누구나 다 나라를 위해 최고의 업적을 남겼다면 그 누구에게도 국장이 허락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어령 선생의 강연에서 들은 말이다. ‘장관, 국회의원,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꼭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를 대체할 사람은 너무도 많다. 그러나 운명 교향곡은 베토벤 말고는 그 누구도 그를 대신해 작곡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문화는 그 무엇도 누가 대신해서 할 수 없는 것이다.
  몇 해 전 나는 어느 리조트에 여러 연주자들과 함께 초청공연을 간 적이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그 곳 사장님과 대화하는 중 사장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요사이는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일류가 될 수 없어요. 조각물도 들여놓고, 좋은 그림도 걸고, 질 좋은 음악회도 자주 여는 등, 문화가 함께 따라주어야 일류의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불렀습니다. 우리 기업을 일류로 만드는데 일조해주어 고맙습니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경제력만 있는 나라를 선진국이라 하지 않는다. 경제력위에 문화를 갖추어야만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물건을 많이 수출하는 나라를 선진국이라 하지 않는다.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 다시 말하면 수출한 문화가 온 세계에 들어가 세계인들이 향유하게 될 때 그 나라를 선진국이라 하는 것이다. 만약 경제력으로 선진국을 따진다면 중동 산유국들은 다 선진국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중동국가들을 선진국이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화적으로 선진국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독일인들이 일본을 대할 때 우리가 돈 많은 강남 졸부 대하듯 하는 것을 보았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인들의 눈에 그렇게 비치지는 않는지 심히 우려가 된다.

  백범 김구선생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를 풍족하게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나의 소원] 중에서 문화강국론을 말씀하셨다. 정말 맞는 말이 아닌가 바로 이런 나라가 선진국인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비록 가난하였지만 영국 사람들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고 들었다. 그리고 김구선생의 문화강국론을 외우고 또 외었다. 그 정도로 문화에 힘을 실어 주었다. 초등학교 때에 우리는 동요를 즐겨 불렀고 중 고등학교 때에는 가곡을 수도 없이 불렀다. 그리고 수많은 소설가 시인 작곡가 화가들의 이름을 줄줄 꾀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김동진선생께서 돌아가셨을 때 작곡과 학생 이십여 명이 있는데서 김동진선생님을 아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작곡과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성함을 기억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초 중 고등학교시절 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 동안 살기는 많이 좋아졌는데 먹고 사는데 바빠 정작 우리의 문화를 가꾸는 데에는 너무 등한시 하였다. 이제라도 우리나라의 모든 틀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문화의 중요성과 우리들의 문화에 대한 바른 자세에 대해 말하였다. 이제 다른 문화 분야는 그 분야의 전문가에  맡기고, 그 틀을 바꾸기 위해 음악을 하는 문화인의 한사람으로, 음악에 국한하여 바라는 바를 말하고 싶다.
 
  첫째, 학교교육에서 음악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아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여기에는 음악시간을 늘이는 문제와 음악시간의 질을 정상적으로 돌려놓는 문제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21세기는 IQ시대가 아니라 EQ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는 황금만능주의가 되어 점차 음악수업을 없애고 그 대신 돈이 될 만한 수업만 늘이고 있다.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음악수업을 아예 폐지한 학교도 있다고 한다.
  요즘처럼 교육부의 존재가 미약한 적이 없다. 아니 없는 것보다 못할 때도 많다. 예를 들면 그저 먹고 사는 데만 혈안이 되어 정작 중요한 철학과를 비롯한 인문학계통, 음악을 비롯한 예술계통의 학과들이 대학 구조조정의 1순위로 부각될 때, 또한 중 고등학교에서 음악 미술 수업을 없애려고 할 때, 이것은 정말 인성교육에 중요한 학과와 과목이니 어떻게라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은 펴지 않고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이러한 분야를 없애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것이 교육부가 할 일인가? 세상에는 교육부가 없는 나라도 있다는데, 그런 교육부라면 이참에 없애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되어진다. 왜냐하면 교육부가 부추기지 않아도 하기 싫은 것은 대학과 중 고등학교에서 알아서 잘 정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음악수업의 질에 대한 문제다. 음악교과가 수능에 출제되지 않으니 소홀히 여기고 얼마 되지 않는 수업시간 마저 학생들의 입맛에만 맞는 음악으로 채우는 음악교사도 있다고 들었다.
  좋은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된다. 태교음악에도, 소를 키우는데도, 닭을 키우는데도, 식물을 키우는데도, 심지어 술을 발효시키는데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세상이 되었다. 그 반대로 나쁜 음악을 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소는 젖의 생산량이 현격히 줄고, 닭은 알껍데기가 얇아지고 그 나쁜 음악의 스트레스 때문에 알을 깨트리고, 술은 발효되는 것이 아니라 썩어버린다는 말을 하고 있다. 소와 닭, 식물 그리고 술에도 좋지 않은 음악이 사람에게는 좋겠는가.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학교에 다닐 적에 매년 합창대회, 시화전, 그림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생각난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들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취업이 힘들다면서 음악교사 미술교사 수를 줄이고 있다. 시골 어느 곳에는 수업시수 부족으로 한명의 음악교사가 3개의 학교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인격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지식을 전수하는 강사로 전략시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인간미 넘치는 인재양성위하여 학교는 각종 예능프로그램을 예전처럼 돌려 놓아야하고, 교육부는 예능교사의 수를 줄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음악 미술에 관한 단 한 문제라도 출제하기를 기대한다.
  지금 음악교육의 부재와 나쁜 음악교육이 장차 큰 대가로 나타날 것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둘째, 방송에서 좋은 음악을 많이 틀어야한다. 적어도 KBS 제1 TV방송만은 클래식을 틀어야한다. 타 방송은 시청률에 발목을 잡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인 만큼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범죄예방을 위해서 국민에게 좋은 것을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타 방송에서도 클래식도 하기 나름이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프로그램 개발에 힘썼으면 좋겠다. 클래식으로 시청률도 재미도 감동도 다 잡는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 않는가. 제발 방송에서 좋은 음악을 많이 틀기를 바란다.

  셋째, 물론 음악인들은 목숨을 바쳐 감동적이고 재미있고 지겹지 않는 좋은 곡들을 많이 만들고 부르고 연주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겨운 곡은 공공의 적이다. 왜냐하면 바쁜 현대인들을 불러 모았으면 무조건 감동을 주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따분하게 만든다면 바로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이다. 따분한 음악을 듣고 간 관중이 클래식음악공연에 다시는 오나봐라 벼루고 떠났다면 음악계로 봤을 때도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인맥과 혈맥을 동원하는 따분한 음악을 계속할 것인가. 예술은 감동이다. 감동이 없는 예술은 이미 죽은 것이다.

  넷째, 정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문화에 투자해 주기를 부탁한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시답잖은 오락과 아름다운 문화를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 분들이 일반인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으나 나라의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제발 문화에 적자생존의 원칙의 잣대를 대지 않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그렇게 하면 이 나라를 지키고 보존할 문화는 사라지고 대중오락만이 들끓을 것이다. 유럽 선진국의 오페라단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한번 보라. 교향악단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한번 보라. 문화는 보존의 대상이지 돈벌이의 대상이 아니다. 각종 문화단체, 문화관련 출판사들이 얼마나 귀한 것들인가. 국민의 세금을 엉뚱한데 쓸 것이 아니라 병아리 오줌만큼이라도 지원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각종 기념관도 세우고 여러 가지 상도 제정하기를 희망한다. 연말이면 각 방송사에서 밤을 세워가며 모종의 시상식을 하지 않는가? 올림픽과 월드컵도 개최하고 G10정상의 우리나라가 이제라도 품위 있게 발전하여야 할 것 아닌가. 제발 문화를 정치 외교 경제 국방의 들러리로 세울 것이 아니라 문화를 제대로 대접하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안시에 문화에 대한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할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독일 중남부지역에 약 10만 명 정도 되는 한 때 축구로 유명했던 카이저스라우테튼 이라는 도시가 있다. 규모가 작은 시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예술단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 오페라단도 있는데 오페라단에는 오케스트라, 합창단, 솔리스트, 무용단, 안무자 등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교대로 운영한다. A팀이 도시 중심의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하면, B팀은 도시외곽지역을 돌며 공연을 하고, C팀은 다음 공연을 위한 연습을 한다. 그리고 C팀이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하면, A팀은 도시외곽지역으로, 그리고 B팀은 연습을 하며 일 년 내내 그렇게 돌아간다. 그래서 시민들은 일 년 열두 달 어느 때라도 오페라하우스에만 가면 정말 저렴한 가격(실내청소비 정도)으로 각종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고, 도시외곽지역의 사람들도 년 5∼6회 정도는 볼 수 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복지국가이다. 태국만 하더라도 누구나 2월(집단 휴가)을 제외하고 매주 2회(금요일, 토요일) 방콕국립극장에 가면 태국왕실국립교향악단이 연주하는 관현악곡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이 문화가 시민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의 실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우리 천안시가 예술단을 어떻게 운영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있다. 우리 시립예술단을 매일은 아니더라도 한번이라도 더 시민들 앞에 노출시켜야 한다. 그것이 예술단이 시민들을 위해 있는 목적일 것이다. 그래야 실력도 는다. 연습을 통해 실력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실전을 통해야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몇 주 전 우리 교향악단의 연주를 듣기위해 예술의 전당에 갔다. 그 날 연주는 매우 훌륭하였지만 홍보 부족인지 관객이 너무 적었다. 우리 교향악단도 매주 금요일마다 예술의 전당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엑스트라 출연 비용, 프로그램 포스터 전단 티켓 인쇄비용, 홍보비용, 등 돈이 많이 들어 시의 예산이 부족하여 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복지다. 복지예산에서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예산을 그렇게 많이 들일 필요도 없다. 년 간 몇 회의 큰 규모의 연주회를 제외하고는, 엑스트라 출연이 필요 없는 작은 규모의 연주회를 하면 될 것이고, 인쇄비도 없으면 A4용지로 간단히 프린트하면 될 것이다. 더구나 홍보비는 매주 그 시간 그 자리에 가면 연주회를 볼 수 있으니, 거의 들이지 않고 자리가 점점 차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소문이 나면 서울이고 대전이고 타 지역에서도 관람하려는 애호가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 천안도 부천보다 더 멋진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다.

  21세기에서도 김구선생의 문화강국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

정 덕기: 작곡가, 천안시문화재단이사, 백석대학교 음악대학원장, 한국작곡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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